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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박정기님이 주신 것들
▲ 감옥에서 온 편지와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님이 주신 것들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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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 보답을 할까. 마음먹고 있어. 그것은 역시 핍박받고 사는 사람들이 원하고 고뇌하며 이루고저 하는 것. 바로 그것이야 말고 둥글고 길고 아름다운 자유, 민주, 이겠지... 정신이 한결같으면 이루기 마련이니 꼭 우리는 이루고 말 것이다. - 1991년 10월 8일

1991년 노태우 정부 시절 초로의 62세 아버지가 감옥에서 보내신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그때 무슨 일로 투옥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들을 잃고 4년째 되던 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님은 고척동 감옥에 계셨습니다.

아들 잃고, 민주화를 위해 감옥에 가다
▲ 감옥으로부터 편지 아들 잃고, 민주화를 위해 감옥에 가다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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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 어느 집회 때였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아빠엄마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집회하는 학생들과 시민들과 떨어진 한곳에서 서 계셨죠. 뒤에서 바라본 그 어깨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려서인지, 그때 아버지께 다가가서 인사하고 손잡아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켜보고 있던 저희 부모님이 아버지께 다가가 어렵게 말씀을 건넸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별말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박종철 오빠가 떠난 그 날처럼 그때도 별말씀이 없었습니다. 가슴에 품고 있던 사진 한 장, 아드님 정성껏 코팅을 한 박종철 열사의 영정사진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에게는 '종철이 오빠'가 되었고, '박정기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박종철 아버지와 이한열 어머니
▲ 십년전에 서울시청앞에서 박종철 아버지와 이한열 어머니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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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는 항상 아버지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뵐 수 있는 분. 어느 부당한 곳일지라도, 어디라도 저항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실 분이기에 막연히 그 날을 미뤄두었습니다. 10년 전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시청 앞 집회 현장에서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어느덧 어른이 된 저는 그제야 몇 가지 여쭤봤습니다.

"종철이 오빠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그런 말이 있던가? 자식 자랑은 온 미친갱이('미친놈'의 경상도 방언)고 마누라 자랑은 반 미친갱이라고? 하지만 우리 종철이는 정말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생전 싫은 소리 한번도 못해 본."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일본 유학을 준비하던 중 그런 변을 당했다는 박종철.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옳지 않은 것들을 바로 잡으려는 고집만은 유별났다고 말씀하시며 농도 짙은 눈물이 두 눈에 가득했습니다.

"박종철은 어떤 역사적 가치를 가질까요?"

"대한민국에 인권문제 발전 소지를 제공한 인물."

"자부심으로 종철이의 뜻을 이어왔다"

"왜 하필 내 아들이어야 했는가 하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세요?"

"절대 그럴 수 없지. 내가 이익을 보겠다고 죽음을 남에게 담보시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남에게 불이익을 주면서 나의 행복을 챙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난 종철이가 이루어낸 모든 것들에 자부심을 가지고 종철이의 뜻을 이어왔다."

그렇게 단호하시던 아버지. 옆에 항상 함께하시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나이가 들어가니까, 우리 둘 중 하나 먼저 죽을까 봐 겁이 나. 난 아버지 없으면 힘이 없어. 아버지도 그렇고. 어디를 가도 나 혼자 가면 종철이 아버지는 어딨느냐고 물어보고.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이고. 아버지 우리 오래오래 삽시다. 알았지요? 꼭 건강해야 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한약을 나눠 드셨는데, 지금 어떠실지 걱정됩니다.

내 생활은 민주화의 한 지름길로 생각하기에 그 나름에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이제 한여름도 고개 숙일 때가 된 것 같다. -1991년 8월 13일 (감옥에서의 편지 중에서)

아버지. 이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지긋한 여름도 지나가려나요. 그런데 올해 여름은 유난히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가득해요. 날씨만 뜨겁네요. 생전에 많이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종철이 오빠는 만났나요? 그 모습 그대로인가요? 맨 처음 어떤 말을 건네셨을까요. 자식 잃으시고 30년 동안 큰 절규나 통곡이 없이 속으로 누르시던 아버지 모습에 마음이 먹먹하고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 이생에서 함께 보낸 시간 감사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종철이 오빠와 친구들, 그리고 아이들, 그분들과 함께 고통 없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가끔. 아주 가끔 심심하실 때 우리 내려다 봐주시고 시원한 비 한 번 따뜻한 햇볕 한 번, 선선한 바람 한 번으로 들러주세요.

아버지. 벌써 그립습니다. 아버지를 처음 만난 그날, 종철이 오빠의 사진을 받은 그날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길을 잃었던 남은 생에 대해서 한번 더 깊이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을 보냅니다.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태그:#박종철, #박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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