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획기사는 환경정의 먹거리정의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마을부엌에서 함께 나누고 더불어 성장하기’사업에서 발굴한 마을부엌의 다양한 사례를 알리기 위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먹거리정의센터는 보다 많은 마을부엌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먹거리 체계를 만드는데 함께하고, 변화하는 먹거리 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말] |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 말 서울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 중복을 맞아 마을삼계탕잔치' 준비가 한창인 관리동 앞으로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오늘 잔치의 주최자는 1년 전 이 아파트 관리동에 새롭게 문을 연 '마을부엌'. 이 모임의 조리회원 30여명과 인근 복지관에서 지원 나온 봉사자 10여명이 아파트 주민 500여명에 대접할 삼계탕을 끓이는 중이다. 십여 개의 대형 가스버너 위에선 맛있는 삼계탕이 끓고, 관리동 주변 접이식 테이블들 위엔 수박과 참외, 김치와 나물, 그리고 담근 인삼주와 음료수들이 식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예정된 식사시간이 30분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인사와 담소를 나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정겨운 풍경이다.
마을부엌이 있는 한 아파트 단지의 풍경을 상상해봤다. 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요리도 배우고, 끼니와 간식도 함께 하며, 서로를 돌보는 공간이라면 이런 이름의 현판이 어울리지 않을까?
사실 나이든 기성세대에 이런 풍광은 그리 낯설지 않다. 농사지으며 모여 살던 과거엔 동네마다 흔했던 일상이다. 요즘처럼 기계의 힘을 빌어 '혼농'(혼자 농사짓기)하지 않고, 사람의 힘을 모아 '함농'(함께 농사짓기 ; 두레, 품앗이, 울력)했던 시절엔 끼니도 늘 '함밥'(함께 먹는 밥)이었다.
하지만 탈농 도시화 핵가족화를 거쳐 '1인 가구' 혹은 '혼족'이 대세가 된 지금, 이런 전통을 온전히 되살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의 혈관엔 여전히 나를 '우리'라 부르고, 함께 할 때 더 행복한 '공동체적 유전자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21세기 낯선 도시에서 이 유전자를 되살려 새로운 '주거공동체'를 가꾸는 최선의 길은 뭘까? '함께 밥 먹는 일'이야 말로 그 가능성을 높일 가장 현명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에게 있어 밥은 삶의 근간이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핵심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밥으로 인사를 나누고 '식사는 하셨어요?' 밥으로 안부를 묻는다 '밥은 먹고 다니니?' 그뿐인가? 함께 밥 먹는 이를 가족이라 부르고(食口) 밥 먹는 일 자체를 삶과 동일 시 하기 도 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마을부엌 운동 공동체성을 지지해줄 가장 유용한 수단그런 면에서 최근 '혼밥', '혼술'과 같은 '나 홀로 밥상'의 증가는 그 자체로서 우리사회의 위기적 단면을 드러내 준다. 곧 고립과 차별, 외로움과 우울증이 늘고 있다는 사회병리학적 증거요, 세계 최하위 행복지수와 자살률 1위라는 비극적 현실을 방증하는 바닥지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밥'은 우리사회 공동체성의 바로메타다. '밥은 먹었냐?'는 인사말이 여전히 유효한 이상 '마을부엌' 운동이야말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공동체성을 지지해줄 가장 유용한 수단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엔 어떤 유형의 마을부엌이 가능할까?
다양한 마을부엌이 필요하다!
마을부엌의 핵심은 '자치성'에 있다. 자율과 참여의 폭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 당연히 공공부문의 개입은 계기와 자원을 제공하는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 이를 '육성(育成)'하겠다고 나서거나 무리하게 실적 화하려 든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낼 수 있다. 모름지기 공동체성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게 아닌, 내부 구성원들이 가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원이 부족하고 스스로 동력을 만들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대상인 경우는 예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개입을 최소화하고 가급적 대상자들이 주체가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우리사회에 필요한 마을부엌은 커뮤니티의 성격, 외부의 지원정도 등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중 '자치성'에 기초한 협력(치)형이 표준모델이 될 것이다.
시간은행과 접목한 푸드뱅크의 마을부엌 마을부엌을 사회적 결식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 NGO인 푸드뱅크에 접목한다면 어떤 모델이 가능할까? 이 경우 적합한 모델은 지원형과 보조형 두 가지다. 하지만 이 두 유형은 돕는 쪽과 도움 받는 쪽이 양분 돼 있어 자칫 마을부엌이 자치공간이 아닌 일방적 지원을 위한 조리센터가 될 공산이 크다. 이를 극복할 묘안은 없을까?
이 경우 시간은행과의 접목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시간은행 시스템을 도입하면 이용자들은 자신이 봉사한 시간을 화폐로 적립, 이를 타인의 봉사나 서비스, 물품을 구입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지자체는 공간 및 시설, 초기 운영비를 지원하고, 푸드뱅크는 커뮤니티 지원을 위한 각종 물품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푸드뱅크가 확보한 물품을 가공/조리/지원하는 활동을 근간으로 하되, 여기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파생시켜 커뮤니티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게 한다. 이 방법의 강점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 단순한 마을부엌의 기능을 넘어 마을텃밭, 공부방, 쿠킹교실, 마을가꾸기 모임 등으로 그 외연을 넓힐 수 있다는 점 등이다.
덧붙이는 글 | 김한승은 성공회 신부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국내에 푸드뱅크사업을 처음 소개한 후 20년간 결식계층 지원사업의 외길을 걸어왔다. 2008년에는 독서대학르네21을 설립, 빈곤청소년의 그룹독서를 위한 '다독다독인문학' 사업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