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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하킴파라 로힝야 난민캠프의전경
▲ 로힝야 난민캠프 방글라데시 하킴파라 로힝야 난민캠프의전경
ⓒ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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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캠프의 개수만 20개가 넘는다. 캠프 지역을 구글 위성지도에서 검색하면 삼림지역 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현장에서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작년 8월 25일 이후 67만 명에 달하는 로힝야 무슬림 난민들의 거주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삼림보존구역 (Teknaf Wildlife Sanctuary)의 일부를 깎아 대대적으로 평지를 '제조'해 내었다.

숲의 토양은 '금덩이'라는 말을 예전에 한 농업 전문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수년간의 침전물이 켜켜이 쌓인 숲의 토양은 그 자체로 생명력이 넘친다고 한다. 이러한 숲이 파괴되는 데는 한 달이 걸렸고, 지금은 대나무로 엮은 천막집이 울창하게 자리 잡은 회색빛 모래언덕이 되었다. 동시에 수만 명의 난민들은 임시로 거주할 장소를 얻었다.

하킴파라 지역으로 이주해 온 난민들

하킴파라 캠프지역도 작년 9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였다. 캠프 입구 근처에 사는 지역주민 이브라힘 (Ibrahim, 31)씨는 미얀마에서 대거 로힝야 난민들이 마을로 들어오던 작년 9월을 기억한다.

"당시에는 200-300가구가 오밀조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죠. 당시에는 지금처럼 도로도 나있지 않았고 주변에 상점도 없었어요."

아디활동가로서 나는 총 6주라는 시간동안 금요일 (방글라데시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하킴파라 캠프를 찾았다. 콕스바자르 (Cox's Bazar) 시내에서 하킴파라 캠프까지는 교통이 막히지 않을 때에는 버스로 1시간 반, 막힐 때에는 3시간 까지 걸린다. 6월 중순 즈음에 시작하는 몬순 대비를 위해 구호단체들은 (몬순대비용) 대나무를 캠프 안으로 실어 나르기에 바빴고 이로 인해 시가지로부터 캠프까지 유일하게 뻗은 고속도로 위로 빈틈없이 차들이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일이 몇 주간 계속되었다.

난민캠프를 머릿속에 그려볼 때 보통 난민들만 떠올린다. 예컨대 고립된 땅에 홀로 서 있는 이들의 이미지가 우리의 머릿속을 지나간다. 물론 우선적으로 캠프에는 난민들이 있다.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 캠프에는 여러 번에 걸쳐 미얀마로부터 탈출한 난민들이 함께 산다. 이들이 국경을 넘은 굵직한 시기들을 되짚어 보자면 1978년 첫 번째 토벌작전 이후, 8888항쟁 이후 강화된 군부의 두 번째 토벌작전 (1992년) 이후, 2012년 이후 극우 불교도들이 앞장서 확산된 무슬림혐오운동 이후, 2016년 무슬림-불교도 간 폭력사태 이후, 그리고 지난 8월 군부의 대량학살을 초래한 세 번째 토벌작전 이후 도착한 로힝야 모두가 '난민'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미얀마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 캠프에서 태어난 2세대 로힝야도 역시 여기에 속한다.

하킴파라 난민캠프에서 식수를 기다리고 있는 물통들
▲ 로힝야난민캠프 식수통 하킴파라 난민캠프에서 식수를 기다리고 있는 물통들
ⓒ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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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민이 난민촌을 이루는 전부는 아니다. 약 90만 명의 난민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글라데시 원주민들이 있다. 난민들 중에는 벵갈주민의 토지 중 캠프구역으로 지정된 곳에 정착한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벵갈 주민들 중에는 로힝야 난민들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을 땔감, 대나무, 토지 등과같이 제한된 자원과 일자리로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벵갈 주민보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로힝야 사람들로 인해 하루에 500tk (6천원) 이던 일당이 2017년 로힝야 사람들이 캠프에 자리잡은 이후 300tk(3600원)로 떨어졌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사회 내에서도 빈곤한 계층에 속하는 벵갈 주민들의 겪는 일상의 어려움은 국적을 떠난 문제이며 난민들의 것만큼이나 절실하고 절박하다. 난민촌에서 난민과 주변의 토착민들의 경계는 흐릿하다.

캠프에는 로힝야 난민과 캠프의 인근에 거주하는 벵갈주민 이외에도 휴일을 제외 하고는 캠프의 문지방이 닳도록 입구를 들락날락 하는 각종 국제 및 국내구호단체들, 방글라데시 군인, 방글라데시 국경경비대(BGB)가 있다. 각 단체의 활동분야에 대한 기본 정보를 보유하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일은 현장관리감독관 (site manager)과 Camp in Charge라고 하는 캠프서기의 역할이다.

아디의 심리지원프로그램 중 하나인 묘목제공 프로그램, 묘목이 캠프 주변에서 자라고 있다.
▲ 난민캠프에 심어진 묘목들 아디의 심리지원프로그램 중 하나인 묘목제공 프로그램, 묘목이 캠프 주변에서 자라고 있다.
ⓒ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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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방문객 중에는 아디와 같은 활동가들도 있다. 다큐멘터리 촬영, 인터뷰, 인권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기자나 인권활동가들도 캠프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외국인들은 일반적으로는 방글라데시 국경경비대의 삼엄한 감시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캠프와 콕스바자르 (인근도시) 사이에는 캠프의 탈출을 시도하는 로힝야 난민을 잡아내기 위한 방글라데시 군인들의 감시초소가 작년 2017년 이후로 크게 늘어났고 현재는 그 숫자가 24개도 넘는다. 외국인들은 특별단속기간이 아니면 신분증 검사대상으로부터 제외되는 편이다. 6주간 매일 출근 하였던 내가 신분증을 요구받은 적은 단 하루뿐이었다. 내어 준 여권의 겉표지의 응시와 몇 번의 곁눈질로 나는 그들의 승인을 받았다.

로힝야 사람들의 인권 이슈가 최근 들어 이토록 국제구호단체들과 매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이유는 2017년 8월 말 미얀마 정부와 군부가 자행한 대량학살 사건 때문이다.

미얀마 정부는 2015년 로힝야 시민의 투표권을 박탈하는데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정책적으로 지속되어왔던 미얀마 정부의 미얀마 내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지역적으로 방글라데시의 국경과 접해있는 라카인 주에 거주하는 로힝야는 미얀마 내 무슬림 중에서 가장 인구비율이 높은 소수민족이며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어와 유사한 언어를 사용함으로 미얀마 정부 및 군부가 타자화 및 범죄화 하기에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2016년 10월 로힝야 무장단체의 초소공격이 발단이 되어 이듬해에는 군부가 테러소탕작전을 발표하였지만 이는 로힝야 시민학살을 위한 - 인종청소라고도 불리는 - 구실일 뿐이었다. 로힝야 사람들은 폭력, 살인, 구금, 방화, 강간 등을 포함하는 끔찍한 일들을 겪었고 이 작전은 로힝야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국적 없는 국제미아그룹으로 만들었다.

로힝야 난민캠프의 현실은 국제사회가 동의한 인권의 개념과 사회적 정의의 보편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상투적 개념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주었다. 어느 로힝야 사람은 내게 캠프를 '열린 감옥'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열린 감옥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누구인가. 페이스북 창시자인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무슬림 혐오조장발언을 확산하였고 결과적으로 로힝야 대량학살에 기여했다고 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자 폭력 및 혐오 콘텐츠 추적을 더 강화하고 확산방지에 신속 대응할 것이라고 하였다.

실리콘 밸리의 내로라하는 엘리트 엔지니어들이 고안했다는 페북의 정보필터시스템은 제 3세계의 스마트폰 이용자들에게 값싼 온라인 정보창고로서 인터넷 대체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들은 자극적인 정보를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빠르게 퍼뜨리는 데 있어서는 효율성을 달성했을지 모르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들 속에 인권사각지대가 학살현장이 되는 것을 방조하였다는 것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건축사업의 가장 큰 피해자가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어버린 로힝야 사람들이라면 반대로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인가. 인구 130만이 몰려있는 열린감옥산업을 운영 중인 방글라데시 정부는 2017년 8월 25일 이후 외교부를 통해 국내 태스크포스 (National Task Force)를 편성하여 로힝야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재난대응 및 지원부 (MoDMR)를 통해서는 몬순대비를 지원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방글라데시 정부는 정부간 조직, 정부단위 및 NGO단체들로부터 막대한 원조지원금을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단체의 지원금의 25%를 방글라데시 지역사회에 투자할 것에 대한 권고를 명시함으로써 방글라데시의 빈곤문제의 완화와 시장경제 활성화 등 다중효과도 꾀하고 있다.

2017년 8월 이후 새로이 깎인 삼림의 면적이 5000 에이커 (2천 2십만 제곱km) 에 달하는 캠프는 우키야 (Ukhiya)와 콕스바자르 등 인근에 사는 벵갈 주민들에게는 새 직장의 터이기도 하다. 인구밀도가 높고 부정부패가 심해 내부 연줄 없이 취직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인, 오랫동안 청년실직이 고착화된 방글라데시 지역사회에 국제 및 국내 비영리단체들이 비집고 들어왔고 이들의 막대한 지원금은 캠프 주변 지역사회 곳곳에 활기를 몰고 왔다. 현지스태프 고용이 늘어나며 벵갈 청년들은 마른 땅에 기적처럼 샘솟아 나고 있는 취직의 기회에 한창 열을 올리는 중이다.

무슬림의 '라마단'이 준 경험

현장에 발을 디디는 순간 이러한 다각적 현실은 입체감을 띄고 시공간의 색채에는 명암이 짙어진다.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맞닥뜨릴 때면 물고기가 어항의 물로부터 높이 튀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온 몸을 돌기도 한다. 내가 현장에서 적응하며 활동한 지 3주째로 접어들었을 때, 방글라데시에서는 무슬림의 신성한 의식인 라마단(ramadan)이 시작되었다. 라마단의 경험은 방글라데시 현장에서 내가 예기치 못한 상황들 중 하나였다.

일 년 중 가장 신성한 달이라고 하는 라마단 (30일) 동안 무슬림은 금식과 기도를 행한다. 무슬림은 신의 유일무이함, 신이 메신저로서 보낸 예언자, 신의 계시가 담긴 경전인 코란, 이 세 가지를 믿는다. 라마단에는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해가 질 때까지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몬순 직전 태양이 더욱 뜨겁게 내리쬐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30일 간의 금식은 무슬림들에게는 기도 (Taraweeh Namaz)의 기간이자 성찰의 시간이다. 코란의 낭독은 기도하는 이의 내면으로부터 타인을 향한 용서, 자비, 성찰, 포용, 사랑의 기운을 일깨워 준다고 한다.

아랍어로 되어있는 코란을 대부분의 로힝야 사람들은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외운다. "기도문의 의미를 모르더라도 낭독을 하면 굉장한 안정감이 느껴져요"라고 할리마가 이야기 해준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나 캠프에서 자라난 2세 로힝야 여성이자 아디의 통역가였던 할리마는 올해 21살이다. 벵갈어와 영어가 둘 다 유창하기 때문에 시내로 나오는데 딱히 어려움이 없지만 할리마는 아직 콕스바자르 해변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할리마는 여기에서 적응하며 살고 싶어 하지 않을까?' 내심 궁금해진 나는 방글라데시 시민권과 미얀마 시민권 중 어느 것을 더 원하는지 물었다.

'갈 수만 있다면 미얀마에서 살고 싶어요. 저와 같은 모국어를 할 줄 아는 로힝야 사람들은
여전히 미얀마에 있습니다. 미얀마어는 정착하고 나서 배워도 된다고 생각해요. 고국에
가서 나의 사람들과 지내고 싶어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곳을 고국이라 부르는 할리마에게 나는 콕스바자르 해변을 같이 거닐자고 했다. 우리는 나의 캠프 활동 마지막 날 함께 시내로 나올 것을 약속 했지만 결국 내가 당일 시간을 못냈고 우리의 계획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할리마의 '갈 수만 있다면'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 남는다. 다음에는 할리마와 함께 해변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기를 바래본다.

캠프를 바라볼 신의 표정은 어떨까

로힝야 난민여성과 함께한 아디의 로힝야심리사회지원 프로그램
▲ 아디의 로힝야심리사회지원프로그램 로힝야 난민여성과 함께한 아디의 로힝야심리사회지원 프로그램
ⓒ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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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동정의 대상으로 시각화 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난민촌을 머릿속으로 그릴 때 조금 더 통합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난민'은 박해받는 민족의 현재 상태를 일컫는 말일 뿐이며 그들의 정체성을 대변하지 않는다. 난민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시각과 태도에 연루되어 존재한다. 이는 우리가 자연을 아무리 정복의 대상으로 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자연에 연루된 일부로서 살아간다는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늘 생태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우리는 인간이 종(種)으로서도 홀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지 오래이지만 생태계의 이웃들은 인간의 존재를 고통스럽게 감지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캠프가 되기 전의 삼림보존지역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마카크 원숭이와 아시안코끼리가 서식하고 있었다. 늘 다니던 길로만 이동하는 아시안 코끼리는 몇 백년 동안 축척된 종의 습성을 어느 날 갑자기 인간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우리와 타협해 준다거나 우리의 방식대로 길들여주지 않는다. 길 위에 비닐로 덮인 집들을 세우고서는 자신을 향해 돌을 던져대는 인간들이 얼마나 괴이해 보일까. 인간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 하지는 않겠지만 동의도 구하지 않고 서식처를 파괴해버린 인간의 매우 비인간적인 행태에 노여움에 찬 자연의 다른 존재들도 상상해 본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 캠프를 바라보고 있는 이슬람의 신 - 알라(Allah) - 의 존재가 이 그림 어딘가에 있다면 신의 표정은 어떨까 나는 의문이다.

덧붙이는 글 | 아디는 2017년부터 로힝야 난민들과 함께 인권실태조사와 심리사회지원프로그램을 수행중이다. 로힝야 난민과 함께하는 아디의 활동이 계속 지속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후원이 필요합니다. [후원하기]신한, 100-031-396381, 아디



태그:#아디, #로힝야,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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