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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한 손에 드라이버를 들고, 다른 손엔 펜치를 들고, 타이어와 씨름 중이었다. 자동차 철재 휠에서 고무 타이어를 벗겨내는 것이 목표. 익숙한 어른이 아니면 자전거 타이어도 벗기기 쉽지 않은데, 아무래도 무리 같았다. 그러나 끝내 소년은 타이어를 벗겨 가슴에 안았다. 소년에게 작업을 허락한 아버지도 깜짝 놀랐다. 키네틱 아트 조병철 조각가의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다. 지난 5월 20일 <2018 국제조각페스타> 폐막일 날, 예술의 전당 전시실에서 그를 만났다.


 뒤로 그의 작품 <2018 Swirl>과 앞쪽 <2017 Waterfall>이 보인다. 조병철 작가는 "작품의 움직임보다는 수집된 재활용 오브제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데 관심을 집중"한다고 말한다.
▲ 제8회 2018 국제조각페스타에서. 뒤로 그의 작품 <2018 Swirl>과 앞쪽 <2017 Waterfall>이 보인다. 조병철 작가는 "작품의 움직임보다는 수집된 재활용 오브제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데 관심을 집중"한다고 말한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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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였던 아버지와 예술꿈 포기했던 어머니

소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작업장 겸 공장에서 소년은 자랐다. 아버지는 주호민의 웹툰 <무한동력>에 나오는 그러한 동력기계를 꿈꾸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젊을 적 보았던 놀라운 광경을 자주 얘기하곤 했다. "연료가 다 소진됐는데, 공랭식 엔진이 계속 돌았어!" 그게 꿈이었는지, 무슨 환상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공기로 가는 차'를 집요하게 추구했다. 곤궁한 삶, 때로 '사기'로 고소당하는 일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공구들, 쇠와 나무 같은 재료들 그리고 작업 일체는 작가에게 일상이 되었다.

조병철 작가의 형제들은 모두 예술의 영역 안에서 산다. 큰형은 영화를 만들고, 작은형은 음악을 하고, 여동생은 뮤지컬 무대미술에 종사했었다. 형제와 남매를 으쌰으쌰 과하게 응원하는 일은 없는 것 같았는데, 그것 역시 그의 일상이어서 그럴 것이다.

자식들에게 유전자를 함께 물려준 엄마도 미술을 꿈꾸었다. 가난한 집안에, 장녀로 태어났다는 흔한 이유가 그 길을 결정적으로 막았다. 대신 엄마는 아들의 작업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조 작가를 만난 5월 20일 그날도 어머니는 전시장에 출석해 사람들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작가는 또 덧붙인다.

"아내는 오르간 연주를 해요. 제 작품의 움직임에는 음악성이 있는데,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요."

조병철은 키네틱 아트 작가다. 움직이는 미술품을 만든다. 거기서 그는 '생명의 복원'을 꿈꾼다. 그가 사숙(私淑)한, 그러니까 직접 배우지는 못했으나 사모해서 스스로 배우고자 한 스승은 테오 얀센. "그분이 60세까지 물리학자로 사시다가 은퇴 후, 20년 넘게 작업을 지속하셨어요." 3~4년 만에 한 작품씩 만들어진 테오 얀센의 작품들은 바람을 받아 움직이는 메카닉이다. 인위적인 그 어떤 힘도, 화석연료도 전기도 쓰지 않은 채, 얀센이 만든 거대하고 놀라운 골격체들은 걷고 뛴다.  

▲ 테오 얀센과 그의 새 생명체들. 21세기 다빈치라는 별명을 가진 테오 얀센은 그가 새로운 생명체들을 창조하고, 새로운 바퀴를 발명했다고 말한다.
ⓒ 테오 얀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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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생애와 현대사의 아픔들 함께 담고 싶었다

조병철의 작품은 전시장, 갤러리에 설치된다. 바람이 있을 수는 없는 공간. 그래도 그는 최소한의 동력만을 사용하려 한다.

"지렛대를 사용하거나, 도르레를 사용하면 작은 힘으로 큰 물건을 움직일 수 있지요. 자전거에서도 기어비를 잘 쓰면, 작은 힘으로도 고바위를 오를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일단 움직임이 시작하면 재료 자체가 가진 무게도 힘으로 이용해요. 그럼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작품을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그는 지난 2017년 중국 호베이성 이스트 레이크 생태비엔날레에서 1등상을 받았다. 횡으로 잘려 종으로 채 썰려 누운, 버려진 200년 된 살구나무로 작품을 만들었다. 나무 향이 전시장에 은은히 퍼지는데, 그의 작품은 복원되어, 살구나무의 생애와 함께 우리나라의 주요사건의 연대와 함께 천천히 회전했다. 자연의 나무 상태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던 굴곡을 만들다가, 나무는 딱 한번 맞춰지고, 다시 비정형의 움직임을 계속한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온 나무를 너무 쉽게 베고 처분하잖아요. 그게 야만적이고 이기적이라 슬펐어요."

그의 작품 'ROOT OF HUMAN'은 호베이성 국립미술관에 소장됐다. 2016년 광명시 레지던시 작업을 하던 때, 그가 선택한 재료는 와인병이었다. 광명시 와인동굴을 통해 얻은 폐기물들을 활용한 것. 그는 죽어간(혹은 폐기된) 재료로 새롭게 복원해, 움직임을 낳는다.

 그는 작품을 남기고 돌아올 때, 큰 아쉬움이 남았다고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2017 조병철 작. 그는 작품을 남기고 돌아올 때, 큰 아쉬움이 남았다고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 조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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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삶을 나누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치열함

2018년 국제조각페스타에서 그는 플라스틱 병들을 모았다. 작품은 마치 애벌레처럼 움직였다. 혹은 생명체의 정보를 담고 있는 DNA 이중나선처럼 돌기도 했다.

"제가 무슨 재활용을 하자 그러는 건 아니에요. 작가가 모아야 얼마나 모아 다시 쓰겠어요. 다만 저는 이 사태를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바다에 버려지면 햇빛과 파도에 부스러져 물고기를 전염시키고, 태우면 다이옥신으로 돌아오고, 매립해도 떠나지 않는 저 '쓰레기'에 대해 그는 같이 느끼고자 하였다. 그의 마음은 작품 이전과 작품과 그리고 그 이후에 계속 머문다. 그에게 작품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재경험이고, 자연계의 순환과 운동에 대한 오마주적 흉내인지 모른다. 

기자가 조병철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8년 3월 코엑스서 열린 '뚝딱뚝딱 수제박람회'에서였다. 수제 맥주, 수제소시지, 수제악세사리(와 같은 상업적 수제)와 악세사리와 뜨개질, 교육용 제품 등 일상의 공예(실용적인 측면을 한껏 선전하는)들 안에 그의 부스가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직접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요. 먼저 손으로 만들고 있다보면 어느새 문제도 풀려가죠. 문을 열어보기 전에는 몰라요. 열어보면 거기 고마운 게 있죠."

예술가의 고단함과 곤궁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물었을 때, 그가 대답했다. 조병철 작가는 용인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도 그의 세 아이들이 드나든다. 할아버지를 닮은 아버지의 뒷모습과 작품들과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아이들을 둘러쌀 것이다. "아버지 노릇을 안 할 수는 없죠." 예술을 삶과 나누지 않는 그 자연스러움이 보기에 좋았다.

살구나무가 향을 내듯이 그의 말에서 인간과 작품에 대한 치열함이 스며 나왔다. 그의 삶과 그의 손이 합작해 만들어낸 작품들은 그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chobc74에서 볼 수 있다.


태그:#조병철, #2018국제조각페스타, #2018 SWIRL, #키네틱아트, #테오 얀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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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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