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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을 했다. 학생들에게 글쓰기라는 교육 전에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전적 정의로 글이란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을 일컫는다.

학교에서 수도 없이 배웠을 이 개념 정의에 대해,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글이란 A4용지 같다고 했다.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새 하얀 A4용지와 같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생은, 글이란 선풍기 같다고 했다. 무언가 내 안에 있는 것을 뱉어내면 시원해지기 때문이란다.

그 외에도 글에 대해 핸드크림, 공기, 감정, 고마움 등 학생들은 제각각의 정의를 내렸다. 글을 읽는 행위, 글을 쓰는 행위까지를 포함하여 넓은 의미에서 바라본 글에 대한 생각이었다. 처음에 글을 쓰라고 하면 질겁하던 어린 학생들이 0.5미리, 0.3미리 펜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생각해낸 개념이다.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엄밀한 의미에서 '글쓰기'에 대해 왜 두려워하는 것일까. 시중에 나온 여러 글쓰기 책 중에 중·고등학교 학생 또는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함께 읽을 만한 글쓰기 책을 찾았다. 글 따로, 공부하는 교과목 따로인 것이 아니라 온전히 글 쓰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삶을 가리키는 이정표 같은 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고, 도서관과 서점을 돌아다녔다.

윌리엄 진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
 윌리엄 진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
ⓒ 도서출판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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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여 년 간 작가, 기자, 글쓰기 교사로서 삶의 한 부분을 '글'로써 살아온 사람이 있었다. 글쓰기 교육의 달인 윌리엄 진서였다. 그가 쓴 <공부가 되는 글쓰기>는 이런 내 요구에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전체 449쪽으로 꽤 두껍다. 그렇지만 머리말 7페이지만을 읽어도 사실상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은 매일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쓰며 살아가는데 글을 쓸 때마다 괴로워하고,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이 모든 것이 불필요하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이 책은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를 두려워했던 내가 그것을 극복해 온 개인적인 여정을 담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일선 학교 및 대학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범교과적 글쓰기' Writing across the curriculum 수업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에서 출발했다. 그 이론에 따르면 글쓰기는 더 이상 국어 교사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교과목 교사들이 가르쳐야 하는 필수 요소다. 나는 이 생각을 적극 지지한다. '범교과적 글쓰기'는 글의 주제가 무엇이냐를 따지기에 앞서 모든 글쓰기가 사유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명확히 전제한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나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줌으로써 글쓰기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10쪽)


저자는 명료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것이지 우리 모두가 '작가'처럼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깨닫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독자에게 주지시켰다.

'범교과적 글쓰기'는 단순히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학생을 쓰도록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배우기를 겁내는 학생을 배우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했다. 글쓰기 자체에 목적을 둔다기보다는 글쓰기를 통해 모르는 것을 깨닫는 즐거움을 느끼게 도와주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쓰면서 배운다는 말이기도 했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1부의 4챕터인 '배움을 위한 글쓰기'였다. 국제경제경영학을 가르치는 쿨래오 맥로스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학생들이 왜 글을 못 쓰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심리학과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학생들은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 추론 능력이 부족한 거라고요. (중략) 내 목표는 추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었어요." (99쪽)


사유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관념적 추론이 아닌 직접적 추론을 하는 사람은 재능이 있어야만 하는가. 명료한 사고를 방해 하는 요인은 무엇일가. 직접적 추론을 할 수 있는 사고의 방식을 교육 할 수 있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읽기, 쓰기, 말하기 과정이 통합이다'고 입 바른 소리를 하지만, 그것이 타 교과에 얼마만큼 적용이 되고 있는가. 저자는 오랜 글쓰기 경력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글쓰기 교육에는 지름길도 쉬운 길도 없다. 글쓰기를 처음 가르칠 때만 해도, 학생들에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글쓰기의 금과옥조인 명료성, 단순성, 간결성을 강조하고, 가급적 능동형 동사, 짧은 단어, 짧은 문장을 쓸 것을 주문하고, 여행기나 스포츠 기사나 인터뷰 기사를 쓸 때 맞닥뜨릴 수 있는 어려운 점 따위를 설명해 주면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내가 얘기해 준 대로 쓰겠거니 했다."(104~105쪽)


원칙과 개념만을 강조한 글쓰기 수업의 결과는 참담했다. 머리로는 알았다고 하더라도 실제 글쓰기에서 이 원칙을 체화한 학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실 범교과적 글쓰기는 수학적 말하기와 역사적 말하기가 분리되었다고 가르치는 교육법이 아니었다.

사지선다형 내지 오지선다형 속에서 '개념적 답안'에만 동그라미 교육을 쳐야 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대안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이 선호하는 개개인의 취향에 맞추어 글쓰기 방식을 국어 교사뿐만 아니라 타 과목 교사들도 병행하여 가르치는 방법이다.

상황에 맞게, 실제적 현실과 삶에 자신의 생각을 써 놓는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을 듯하지만 쉽지 않다. 일례로 아이들의 자기소개서 쓰기를 일괄 받아 첨삭 지도를 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 나와야 할 이야기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시중에 나와 있는 자기 소개서 쓰기는 무슨 원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것만 익히면 괜찮은 자기 소개서가 나올 것이라고 떠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글이라는 원론으로 돌아가 보자. 글이란 무엇인가. 글은 왜 쓰는가.

왜 학교라는 제도에서, 왜 사회라는 관계에서 당신 보고 글 쓸 것을 주문하는가. 불확실한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글 쓰는 행위는 세상을 더듬으며 우리의 무딘 감각을 깨우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왜 실제적인 것. 나와 닿는 것에 관한 글쓰기를 하지 않는가. 무엇이 우리의 사유를 가로막았는가.

책에는 여러 사례가 나왔다. 그것을 꿰뚫어 보면, 공통적으로 교사들이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토론이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글에 대한 정의, 어떻게 하면 실제적 사유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글쓰기의 관점 등. 그 시간과 공간에 맞게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고 답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질문은 학생들 스스로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책을 덮고 소란스러운 글쓰기 교실의 풍경을 상상했다. 머리 숙여 연습장에 꾹꾹 눌러쓴 글씨가 아니라 괴발개발 휘갈긴 글씨 너머로 학생들의 환한 웃음이 먼저 보였다. 밑줄 긋고 개념을 달달 외우고,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 자체에 염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만큼, 내가 아는 만큼 세상을 이해하고 그 사고를 더 확장하는 글쓰기 수업의 재미를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 등이 조금 정리된 기분이었다. 당장 현장에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가 되는 글쓰기 - 쓰기는 배움의 도구다

윌리엄 진서 지음, 서대경 옮김, 유유(2017)


태그:#글쓰기 수업, #윌리엄 진서, #공부가 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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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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