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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노란 리본 모양을 형상화한 촛불
 세월호 노란 리본 모양을 형상화한 촛불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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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평화를 향한 열망이 가득하다. 정치적, 군사적으로 다가오는 평화를 이때처럼 실감했던 적이 있었던가. 문재인 대통령의 한 걸음 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는 따뜻한 4월이건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전쟁 중인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쌀 한톨의 무게' 노래를 부른 전남 해남의 서정초등학교 학생들
 '쌀 한톨의 무게' 노래를 부른 전남 해남의 서정초등학교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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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저녁 6시 반 무렵이었다. '5·18 민주항쟁 사적지'이기도 한 해남군민광장을 찾았다. '적폐청산의 출발은 세월호 진상규명부터' 라고 쓰인 피켓이 보였다. 가설무대에서 서정초등학교 학생들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 (중략)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생명과 평화를 사랑한 홍순관 씨가 작사·작곡한 '쌀 한 톨의 무게'라는 노래였다. 낭랑한 아이들의 목소리에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쌀 한 톨의 무게는 가시적으로 판단했을 때, 얼마나 가벼운가. 하지만 우리가 쌀 한 톨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은, 지난한 세월에 비 맞으며 농부의 거듭되는 손길이 더해져 마침내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수고와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 이유로 노래는 '우주의 무게'라면서 끝난다.     

'평화 한 톨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싸워야 하는 것일까'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저몄다. 4월은 그래서 더 잔인하기만 했다. 생명의 가치가 무너졌던 4년 전, 우리는 '나라가 무엇이냐' 되물었다. 이제 그런 이야기가 상투적이고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해남 군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 말이 더 진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지난 17일 목포 신항에서는 동수 아빠인 정성욱 (4.16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씨가 삭발과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이유는 특조위 조사 활동을 방해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2기 특조위)' 황전원 위원과 선체조사위 이동곤 위원의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덧붙여 항적실험을 은폐한 이동곤, 김영모, 김철승, 공길영 위원 역시 선체조사 보고서 작성에 '더 이상 관여하지 마라'는 요구사항도 있었다.

초에 불을 붙이는 아이
 초에 불을 붙이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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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명의 해남 군민들이 모였다. 어느 집에서는 아이 돌 떡을 가지고 오고, 또 어느 집에서는 주먹밥을 내왔다. 허기를 달랜 사람들의 손에는 노란색 우산이 하나씩 있었다. 행사가 끝날 무렵에 사람들은 저 우산을 펼치고, 해남 터미널까지 가두행진을 할 예정이었다.

사회를 맡은 리멤버 0416 회원 최은숙 씨
 사회를 맡은 리멤버 0416 회원 최은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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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과, 마이크 등 음향 시스템 점검이 이어지고 본격적인 세월호 추모 행사가 진행됐다. 사회는 리멤버 0416 회원인 최은숙 씨가 맡았다.

"안산은 못 갔지만, 4월 15일 목포 신항 행사에 참여 했습니다. 그 자리에 왔던 예은이 아빠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씨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합동연결식에서 분향소를 정리하고 보면 이후로 사람들이 잊어버릴까 걱정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 자리는 끝까지 함께하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약속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매주 목요일 날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안 보인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국어과 교사이기도 한 최 씨의 말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멋모르고 광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리본 형상을 본 뜬 촛불을 넘나드는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은 조마조마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의 엄중한 분위기를 지켰다. 그런데 어쩐지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과 어른들의 엄숙한 분위기는 본래 하나의 몸체 인 듯 자연스러웠다. 성인들의 슬픔이 깃든 의식 속에서 지키고 싶었던 모습이 바로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아니었겠는가. 아이들이니까 뛰어 노는 것은 당연했고, 어른이니까 그 아이들이 뛰어놀 환경에 견고한 울타리를 쳐주는 것 또한 당연했다. 

중고생 아이들도 학교를 파하고 삼삼오오 광장에 둘러 앉았다. 아이들은 동갑이 된 언니들과 마주했다. 그 언니들과 악수와 포옹은 하지 못하더라도 가만히 앉아 행사 장면을 가만히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그 또래끼리 카톡에 보내기도 하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세월호 언니와 오빠를 만난다고 표현한 이 아이들의 굳은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윤영신 해남군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소장의 시 낭송
 윤영신 해남군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소장의 시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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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신 해남군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소장의 시 낭송이 있었다. 안상학 시인의 <엄마 아빠 노란 리본을 달고 계세요>의 시였다. 이 시는 2014년 한겨례신문에 한국작가회의 애도 시 연속 기고 기획으로 발표된 시이다.

"우리에겐 더 이상
차가운 천장도 바닥도 없어요
250자락 바람을 타고
250개의 낮과 밤을 지나
한반도로 돌아올 거예요
그때는 우리
단 한 개의 거대한 비구름이 될 거예요
그날은
크나큰 리본을 닮은 우리 한반도가
온통 노란색이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 가슴에 단
노란 리본이 물들인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떨리는 음성으로 시를 낭송하는 윤소장이었다. 울음이 가득 베인 목소리에서 떠난 아이들의 위로가 느껴졌다. 그래도 괜찮을까? 잊지 못할 단원고 250 꽃들은 말이 없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기 때문에, 잊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해마다 모인 사람들의 모습은 기록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오늘만 조금 괜찮아지기로 했다.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 노래를 부르는 해남 민예총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 노래를 부르는 해남 민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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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투쟁 속에 형제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이병채 해남 민예총 지부장을 선두로 땅끝에서 안산으로, 안산에서 판문점 너머로 평화와 안전을 기원하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가 불러졌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을 내어 놓으며 입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진지한 눈빛으로 내뱉는 한 마디의 가사마다 절절한 의지가 엿보였다.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더 크게 목청을 돋우기도 했다.

촛불 리본 안에 들어와 행사를 관람하는 어린이
 촛불 리본 안에 들어와 행사를 관람하는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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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유경근 씨가 국민들에게 보내는 영상을 함께 공유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영상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대법원 판결 장면부터 시작됐다. 대체 왜? 전원 구조라는 오보 속에 왜 책임을 지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왜 구조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은데,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영상에는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였다.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영상은 그 알고 싶은 것이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할 알권리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리멤버 0416 김미옥 씨의 자유발언
 리멤버 0416 김미옥 씨의 자유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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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리멤버 0416 회원인 김미옥 씨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특별한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혼자 있으면 울컥울컥 했었다. 나와서 0416 리멤버 회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뜻을 같이 했다. 굉장히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엄마들이 삭발하고, 유민 아빠 단식 장면 등이 생각난다. 투쟁을 하며 함께 먹은 짜장밥 등 소소한 것들 모두가 감동이었다. 분향소를 가면 아이들을 잘 못 본다. 다 살아 있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딸이 둘 있는 엄마로서, 그중 '김빛나라'는 이름을 봤다. 아이 엄마가 아이의 이름을 지었을 때 느꼈을 감정을 생각나니 더욱 슬펐다. 도와주는 개념이 아닌 함께한다는 느낌으로 우리는 갔다. 행복했고 감사하다."



하늘에 마음을 담아 띄우는 땅끝문학회 회원들
 하늘에 마음을 담아 띄우는 땅끝문학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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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더 울어야 이 땅은 변할까. '0416(공사일육)'이라는 사음절 속에 얼마나 더 많은 한이 서려야 이 땅에 봄은 오는 것일까. 사람들은 접었던 노란 우산을 펼쳤다. 터미널까지 15분 거리, 다시 돌아오는 데 15분. 걸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보다 낮은 촛불의 불빛이 그들의 얼굴에 어른거렸다. 불빛의 광도(光度)는 낮았지만, 다시 도움닫기 하는 그들의 자세는 부러질 수 없는 죽창과도 같았다. 잘 알고 있었다. 목소리 내지 않는 삶에서는 평화도 안전도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들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들
 아이들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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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났다. 사람들이 돌아갈 일상의 하늘 위로 아이들에게 보내는 마음이 둥실 떴다. 저것이 천개의 바람이 된 아이들에게 닿을지, 아니면 이미 아이들이 등에 업고 어딘가를 비행하고 있을지 알 수는 없다. 소원이 있다. 지상에 사는 사람들의 저마다의 마음이 좀 더 빼곡하게 하늘의 별빛을 만들어주기를 말이다. 홀로 밝은 저 달이 외롭지 않도록. 해남군 북일면에 사는 초등학생 최영홍 군이 대중 앞에 호소력 짙게 부른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귓가에 맴돌지 않도록. 

'천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를 부른 최영홍군
 '천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를 부른 최영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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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0416,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해남 세월호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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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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