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조상연

관련사진보기


회사 동료들과 차 한잔하며 우연히 아버지들 이야기가 나왔다. 주로 자기 아버지 흉보는 이야기였지만, 대부분 너희들이 믿기 어려운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밥 먹다 말고 돌을 씹었다며 밥상 발로 걷어찬 이야기.
벌어다 준 돈 뭐하고 찬이 이 모양이냐며 밥상을 마당에 패대기쳤다는 이야기.
기껏 술 잘 마시고 와서 어머니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이게 어디서 온 물건인데 이따위로 생긴 거야?"라며 막말을 해대는 아버지 이야기.
그중 압권은 어머니 앞에 소 판 돈 던져주었더니 고맙다는 절도 안 하고 돈만 냉큼 챙긴다고 발길질을 하며 기어코 절을 받았다는 아버지 이야기다.

더 웃기는 건 꼭 절을 받아야만 생활비를 주었던 아버지의 아들인데, 그 아들도 보고 배운 게 있는지라 월급을 갖다 주며 "돈 벌어다 줬으니 절하고 받아야지"라고 했단다. 그런데 웃긴 건 그 부인이 밥상을 내올 때마다 절 안 하면 수저도 못 들게 하더란다.
30년 전의 일이건만 부인이 화가 나면 지금도 '밥상 앞에서 절을 하라'고 닦달을 한다며 웃더구나.

쉬는 시간 경쟁이라도 하듯 아버지 흉을 보는데 너무 웃다가 아예 우는 사람도 있다.
허허! 아무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술주정하는 이유가 집안의 가장으로서 대접이 소홀하다는 것이다.

글쎄?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반찬 투정 하는 건 봤어도 할아버지나 너의 증조할아버지가 술주정하는 건 단 한 번도 못 보았다. 증조할아버지는 아무리 술을 많이 드셔도 취한 것처럼 안 보이셨다. 증조할머니는 주사가 좀 있었지만, 증조할아버지가 술상을 받는 날이면 아버지도 덩달아 신이 났다. 우선 안주가 특별했고 술 취한 증조할아버지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증조할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날이면 동네 아버지 또래의 아이들을 불러다 놓고 노래 한 자락에 깨강정 한 주먹씩 주셨고 할머니는 노래 잘 한다며 설빔 추석빔으로 치마저고리를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졌기에 할아버지가 거한 술상 받는 특별한 날은 동네 애들 잔칫날이 되기도 했단다.

집성촌인 동네서 제일 어른이고 한 집안의 가장이셨던 너희 증조할아버지는 그 어떤 위엄이나 권위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증조할아버지 말씀 한마디면 산천초목도 "예"하며 고개를 숙여 순종하였다. 밥상 걷어차고 억지로 절 받는다고 가장의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아버지 역시 반찬 투정을 해본 적이 없고 네 엄마와 단 한 차례 싸운 일이 없는데 증조할아버지의 영향이지 싶구나.

동료들과 모여 경쟁하듯이 아버지 흉을 보며 "내 딸들도 친구들과 아버지 흉을 보려나?" 생각하니 그저 웃음이 나온다만 아버지 생각은 이렇다.

자식들이 느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은 아버지 경험을 비추어봐도 아버지보다 엄마에게 더 기울기 마련이다. 더 기우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기울겠지? 주변을 돌아봐도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자식을 본 적이 없다. 세상 어떤 자식이 열 달 배 아파 자기를 낳아준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아버지를 존경하겠느냐?

그렇다고 아버지가 너희들에게 잘 보이려고 엄마에게 순종하는 건 아니다.
허허! 재미있는 시 한 편 감상하자꾸나.

-

내외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 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태그:#모이, #사랑하는딸에게, #아빠의편지, #아내사랑, #자식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