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준비가 되었습니까?'

'Ready Player One'. 90년대 아케이드 게임을 많이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문구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Ready Player One'은 '플레이어1'이 게임을 할 준비를 마쳤다는 뜻 정도로 볼 수 있다. 요즘은 어떤 게임을 하더라도 플레이어의 ID 혹은 닉네임을 본인이 직접 정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옛날 게임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플레이어에게는 오직 숫자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오락기 앞에 놓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동전을 넣으며, 내가 준비되었음을 이 가상세계에 알린다. 'Ready Player One'. 가상세계가 화답하고, 이제 우리는 그들이 준비해 놓은 가상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Ready Player One'. 플레이어 원이 현실을 떠나기 전 보게 되는 마지막 메시지. 어떤 플레이어는 곧 들어갈 가상 세계를 상상하며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가상 세계가 플레이어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이 현실을 떠날 준비가 됐냐고 물어보는 최후의 통첩인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제목에서부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준비가 되었습니까."

현실 떠난 영혼의 세계

게임이 시작되면, 우리의 몸은 현실에 남아있지만, 영혼은 조이스틱을 통하여 게임 속 현실로 접속하게 된다. 현실의 내가 조이스틱을 오른쪽으로 옮기자, 가상의 내가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왼쪽으로 조이스틱을 옮기면 나의 아바타가 왼쪽으로 움직인다. 여기서 현실과 게임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조이스틱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항상 너무 늦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이르지도 않은,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신작을 발표하며, 우리에게 생각할만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오피니언 리더이다. 그의 2018년 새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곧 다가올, 혹은 이미 시작된 VR 시대와(가상 세계), 아직 그것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현실)을 이어주는 조이스틱과 같은 영화이다. 'joy-stick'. 즉 '즐거움을 주는 막대기'. 가상 세계가 인류에게 궁극적으로 즐거운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게임(혹은 영화)의 본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뒤인 2045년. 미국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시의 빈민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상현실 '오아시스'를 즐기고 있다. 신기한건, 분명 연도를 알리는 자막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이 현재(2018년)와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 느낌을 가장 극대화시켜주는 장치가 바로 조이스틱이다. 2045년의 조이스틱과 현재 발명된 가상현실의 조이스틱이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일명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 head mounted display)'로 약 30년이 지났지만 조이스틱의 형태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2045년의 현대인들은 가상현실인 오아시스에 빠져 살 수 밖에 없다. 현실에 발 디딜 곳 없는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위로 폐건물을 쌓아 올려 위태위태한 상태이고, 그 현실을 잊으려 신기루를 볼 수 있는 오아시스를 찾는다. 사람들이 오아시스에 빠져있는 이유는, 오아시스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것보다 그곳에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이다. 오아시스의 창조주 제임스 할리데이가 유언으로 남긴 한마디. "오아시스에 열쇠를 숨겨놓았다. 그것을 찾는 자에게 '오아시스'의 지분을 넘기겠다." 이 한 마디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을 제쳐 둔 채 오아시스에 올인하게 만든 것이다.

오아시스의 지분이 의미하는 것은 곧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 돈이면 굳이 거추장스럽게 HMD를 끼지 않더라도 현실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즉 현실이 오아시스가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인생 역전. 이 시대 사람들에게 오아시스는 '탈출구'이자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곳인 것이다. 가상 세계를 통해 인생을 바꿔보려는 사람들. 열쇠를 찾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들은 코인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있고, 역시 이 시대에도 대기업은 막대한 자본력을 투입하여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최후통첩

코인. 이 영화가 제시하는 미래가 현재와 비슷하게 보이는 두 번째 소재이다. 앞에 언급했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언제나 시의적절한 감독이다' 라고 했던 것을 떠올린다면, 감독이 이 영화를 지금 이 시점에 세상에 선보인 이유가 보다 선명해진다. 'VR', 그리고 '코인'의 시대. 감독이 다시 한 번 묻는다. "당신들은 정말로 이 시대를 즐길 준비가 되었습니까."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내려야 할까.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스톱워치를 27년 뒤로 설정했지만, 많은 경우 현실은 영화의 시간을 앞지르고야 만다. 뿐만 아니라 가상화폐는 이미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근래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주 쓰이고 있는 농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둘째, '즐기는 자가 노력하는 자를 이긴다.' 너무 많이 쓰여 이제는 거의 속담처럼 통용되기까지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적당히 즐기면서 넘어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게임이 게임 속에만 머물러 있을까. 이제 더 이상 준비하지 않은 채 즐기며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Ready Player One.' 이 최후통첩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철홍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anwu.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레디플레이어원 스티븐스필버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