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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 혹은 국가의 발전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기준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으로는 GDP가 있을 것이다. 지니계수 등으로 표현되는, 부(富)의 분배정도를 생각해볼 수도 있고, 그 사회의 중산층 인구의 비율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의 기준들은 모두 '수치'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치화가 가능한 기준들만 가지고는 한 사회를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계량할 수 없으나, 구성원의 '윤리의식'이나 '공동체의식'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있다. 바로 '권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정도'이다. 이 신뢰가 강할수록, 사회구성원들은 심리적 안정을 느끼게 될 것이고, 각종 '가짜뉴스'나 '찌라시' 등에 현혹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사회의 상황은 어떨까.

권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깨지는 결정적 순간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바로 그 사건이었다. '언론은 진실을 보도할 것'이라는 신뢰가 깨졌고, '정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명구조에 전력할 것'이라는 신뢰가 깨졌다. 국민들은 언론도, 정부의 발표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었다. 청소년들은, 이 사건 이후로 '기성세대는 우리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청소년들은, 선장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해경의 지시를 순순히 따를 수 있을까?

진도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또 하나의 굳건한 신뢰가 깨진 순간이 있었다. '군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킬 것'이라는, 너무나도 마땅한 이 신뢰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군대는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와 정권을 위해 복무하는 조직이며, 때에 따라서는 국민에게도 발포할 수 있다는 불신이 사람들 사이에 생겨났다. 끔찍한 비극이다.

신뢰란 것은, 깨기는 쉽지만 회복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군은 항상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고 정치의 전면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는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희미하게나마 회복되었다. 이 또한 군이 스스로 회복한 것이 아니라, 김영삼 대통령이 당시 군 장성들의 저항을 뚫고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며 군내 최대파벌 '하나회'를 정리한 결과였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정부'로 헌정 사상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일어난 때에도, 지난 해 1700만 촛불 탄핵정국 때에도, 우리가 군의 쿠데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 군의 쿠데타를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쿠데타 없는 대한민국?

군인권센터는 지난 8일, "'박근혜 퇴진 촛불혁명' 당시 군이 무력 진압을 모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하여 시위가 격화되면 이에 대응하여 군 병력을 투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친위쿠데타 모의'다. 모골이 송연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광화문광장에 군인들을 보내려고 했던 것인가. 

군 병력 투입의 근거가 '위수령'이었는데 당시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의 위수령 폐지 의견에 반대하였다고 하니, 군인권센터의 의혹 제기가 더욱 신빙성을 갖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제, 국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군의 쿠데타'를 다시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렵게 회복했던 신뢰가 다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국민이 군을 못 믿으면, 그것이 과연 나라인가.

정부와 군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국민 앞에 모든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 사회의 최소한의 신뢰조차도 깨버리려 했던 자들, 국민을 적으로 보는 자들,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버리려 했던 자들이 실제로 있었는지, 그들이 누구인지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또 다시 깨져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첫걸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라는 플랫폼에도 게시할 예정입니다.



태그:#쿠데타, #촛불, #탄핵, #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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