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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노아에게 거대한 방주를 만들게 하고 그 방주에 들짐승, 가축, 땅에 기고 하늘을 나는 모든 종류의 동물을 싣게 했다. 신의 계시에 따라 대홍수가 나기 전 수많은 동물을 살렸다는 성서 속 노아의 방주.

그런데 인류의 타락 앞에 동물을 구원하도록 명령을 받은 이 노아는, 오십 평생 반려동물 구원을 실천한 내 모습 딱 그대로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말 그대로 '동물농장'이었다. 키워보지 않은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 바로 그 자체였다.

엄마 비둘기로 빙의까지...

때는 1981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 간 나는 친구의 집에서 비둘기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실 이전까지는 기껏해야 강아지나 병아리 정도에 만족했던 나에게 반려조가 주는 기쁨이라는 것은 막연하고 모호했었다.

마술에서나 볼법한 하얀 비둘기가 '구구구' 소리를 내며 모이를 먹기 위해 난생 처음 내 곁에 다가오는 경험은 아주 따뜻했다. 그 자리에서 내 눈에 확 꽂힌 하얀 비둘기 한 쌍은 그렇게 나와 가족이 되었다.

약 한 달 정도 새 주인과의 적응을 위해 케이지 안에서만 생활했던 비둘기가 밖으로 나오던 날, 기쁜 마음에 한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우선 오랫동안 비둘기를 키워온 친구의 조언을 듣고 관련 서적을 읽고 기본 지식을 쌓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책에 나온 대로만 키운다면 '해피엔딩'이 일반적이라지만 비둘기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대홍수가 그치고 올리브를 물고 돌아온 비둘기로 인해 물이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돼,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는 전설은 현실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2년이 지나고 나니 한 쌍의 비둘기는 번식을 이어갔고, 다른 곳에서 날아온 비둘기까지 합세하여 어느새 비둘기 가족은 20여 마리로 불어났다. 무슨 근거로 전문가는 '다른 조류와 달리 끊임없이 관심을 쏟지 않아도 된다'고 썼는지 야속했다. 전문서적의 설명처럼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조용해서 키우기 쉽다고 적혀 있었지만, 집에는 온종일 '구루룩' 소리로 넘쳐났다. 새장을 치우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말도 다 거짓이었다. 집은 물론 골목은 충격 그 자체였다. 골목에 들어서면 비둘기 배설물과 깃털이 먼저 반겼고, 약속이나 한 듯 시도 때도 없이 구애 활동을 하며 내는 괴상한 소리는 이웃의 원성을 받을 만했다.

어느새 집은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비둘기집이 되고 있었다. 특히 부모님은 동네를 점령한 비둘기로 인해 악취와 소음을 호소하는 주민들로 인해 미안함과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었다. 그런데 비둘기와 동거도 모자라 아침저녁 두 번, 비둘기가 굶을까 걱정돼 부엌에 있는 쌀까지 몰래 퍼주다 걸렸으니 이젠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오히려 '인간'은 가장 감당하기 쉬운 대상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동물의 배설물을 치우는 일이 가장 걱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정작 배설물 치우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동물이 갑자기 아프거나 엄마를 잃었을 때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날, 알에서 부화한 지 일주일이 갓 넘은 새끼비둘기가 엄마를 잃었다. 알에서 깨어났을 때 처음 본 대상을 어미라고 생각하는 오리나 병아리와 달리 비둘기는 그렇지 않다. 대신에 평생 그 사람을 따르도록 만들어지는 시기가 있는데, 부화 후 대략 1주부터 3주까지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시기에 먹이를 물어다 줄 엄마를 잃은 것이다. 먹이를 직접 먹지 못하고 엄마 비둘기가 삼킨 후 반쯤 소화된 먹이를 먹어야 하는 시기인데, 그대로 두면 죽을 것이 분명하다. 굳이 엄마가 아니면 어떤가. '그래, 오늘부터 내가 직접 비둘기가 되는 거야!'라며 엄마 비둘기로 빙의를 시작했다.

사실, 전문지식은 전혀 없었다. 일단 쌀과 옥수수를 내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맛은 어땠냐고? 생옥수수 씹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시라. 구역질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게 곡식과 타액을 적절히 조합하여 어미 비둘기의 입에 보관된 반 소화 상태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다.

그렇게 만든 먹이를 새끼비둘기의 입에 가져다 대자, 배가 고팠던 아기는 본능적으로 내 입에 머리를 넣으며 쪼아댔다. 그리고는 무사히 잘 커서 첫 비행을 마치던 그 모습에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뇌리에 진하게 남아있다.

'게동이', '게순이' 지못미

어디 비둘기뿐이었을까? 이후 '노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나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오십 평생 수많은 동물이 나와 동고동락했다. 곤충, 파충류는 물론이고 열대어, 쉬리, 납자루, 거북이, 다람쥐, 토끼, 족제비까지….

그중 가장 슬펐던 기억들은 내 수족관을 거쳐 간 이들이었다.

섬진강은 늦가을 참게잡이의 명소였다. 참게들은 산란을 위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으로 지류를 따라 대장정에 나섰다. 어느 날 친구가 이 참게를 직접 잡았다며 속살이 고소한 참게탕이나 게장을 담가 먹으라고 몇 마리를 놓고 갔다.

아, 얄궂게도 이 토실토실한 참게는 집게발에 왜 이리도 복슬복슬한 귀여운 털을 달고 있단 말인가. 섬진강 자락에 꽃 중의 꽃이라면 '매화'요, 음식 중의 음식은 바로 '참게'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대다수 사람들은 참게가 단순히 매운탕감으로만 활용된다고 생각하지만, 집게발을 뻗은 이 아름다운 자태는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일단 수족관에 들어있는 열대어 분양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토종 참게들을 거실의 주인으로 들이는 데 성공했다. 과연, 섬진강에서 자생하는 이 참게는 열대어에 버금갈 정도로 멋진 자태를 뽐냈다.

이들에게는 '게동이'와 '게순이'라는 애칭을 하사했다. 수족관의 돌무더기와 조개류에서 어슬렁거리는 게동이는 온종일 주인이 주는 먹이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참게 가족들은 예상치 못한 손님에게 그만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으니….

어느 날 외출 전 참게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참게들의 먹이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마른 새우나 멸치는 필수적이었다. 이날도 마른멸치 부스러기를 하나씩 주고 집을 나섰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것을 지켜봤던 어린 아들은 자기도 참게에게 먹이를 준다며 멸치를 찾은 것이었다.

결국, 찾아낸 것은 마른 멸치가 아닌 냉장고에 있는 멸치볶음이었다. 아내가 밑반찬으로 고추장과 간장으로 맛있게 볶아놓은 멸치볶음은 이때부터 아들에 의해 하나씩 수족관으로 투하되었다. 결국, 반찬 용기 한 통 가득했던 멸치볶음은 모두 수족관 바닥에 쌓였고 수족관의 투명한 물은 검고 둔탁한 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렇게 게동이와 게순이는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노아'의 사명, 내가 실천하리라

한동안 잠잠하던 나의 덕질은 삭막한 회사에서 또 한 번 위력을 발휘하고 말았다.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에 강아지 한 마리를 들였다. 역시 내 예상대로 태어난 지 두 달째 돼 가는 이 새끼 진돗개는 극강 귀여움으로 단숨에 삭막했던 회사의 분위기를 압도하고야 말았다.


지난 2016년 회사가족들과 함께 한 미정이. 털갈이 시기가 되자 흡사 손오공 얼굴을 하고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회사가족들과 함께 한 미정이. 털갈이 시기가 되자 흡사 손오공 얼굴을 하고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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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차에, SNS에 "아직은 이름이 미정입니다"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이름을 '미정이'라고 하라는 친구의 귀띔에 귀가 솔깃해져, 바로 '미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미정이는 '극강 귀여움'으로 단숨에 회사의 분위기 메이커가 됐다. 목줄 봉인해제는 물론 직원들의 인기 덕분에 먹거리까지 호사를 누렸다. 미정이가 회사의 구성원들을 이렇게 가깝게 할 수 있는 좋은 통로일 줄 미처 몰랐다. 회사에서 업무 이외의 대화는 단절돼 버린 답답한 일상을 우연히 들어온 미정이가 잔잔한 위안을 준 것이다.

특히 평범한 진돗개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손오공' 얼굴의 극강 귀여움으로 직원들이 슬프고 우울할 때 활력소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미정이도 병마와의 싸움은 피하지 못했다. 어느 날 식음을 전폐한 미정이는 병원에 다녀온 후 곧바로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평소에 자신이 뛰어놀던 공터 후미진 곳에서 혼자서 싸늘하게 식은 채로 그렇게 우리와 이별했다.

지난 2016년 회사가족들과 함께 한 미정이. 극강 귀여움으로 단숨에 회사의 분위기를 사로 잡았다.
 지난 2016년 회사가족들과 함께 한 미정이. 극강 귀여움으로 단숨에 회사의 분위기를 사로 잡았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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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분위기를 압도했던 미정이를 하늘 나라로 떠나 보낸 빈자리. 이제는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데려왔다. 그런데 이 두 '아깽이'들도 역시나 극강 귀여움으로 회사의 분위기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사이드스텝'은 물론 '하악질'에 단숨에 '식빵'을 굽는다. 어쩜 이리도 '개냥이' 같은지 모르겠다.

그런데 미모 '포텐 터진' 이 아깽이들의 발바닥이 글쎄... 매력 가득한 '딸기젤리'가 아니겠는가. 미정이를 대신해 앞으로도 회사의 활력소로 직원들이 슬프고 우울할 때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


미정이를 대신해 회사에 들어온 고양이 남매.
 미정이를 대신해 회사에 들어온 고양이 남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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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깽이의 발바닥이 글쎄, 매력 가득한 '딸기젤리'가 아니겠는가.
 아깽이의 발바닥이 글쎄, 매력 가득한 '딸기젤리'가 아니겠는가.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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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동물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며, 또 불쌍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더 많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생명존중에 대한 인식은 물론 인간과 동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었던 고마운 반려동물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을 아무리 돌려준다 한들 부족하다.

그동안 내 삶에서 그토록 큰 기쁨을 가져다준 반려동물을 내가 보살필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그들이 나에게 준 모든 좋은 시간과 행복은 더욱 감사하다. 하지만 이별이 올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죽음의 현실은 힘들고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내가 실천하리라. 신이 동물을 구원하도록 명령을 내린 의로운 사람 '노아'처럼….


태그:#덕질, #반려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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