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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기만 할까?'

이 한탄 섞인 물음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내뱉어지던 서민들의 울음이다. 특히 최근처럼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상승할 때면 더욱 자주 들려온다. 17년 하반기부터 새해 벽두에 이르기까지 서울과 수도권 등지의 집값은 '폭등'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지방 역시 부산, 대구 등 주요 광역시들의 경우 이전에 비해 더 큰 폭의 가격 상승률을 자랑했다.

사실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 증가율과 꾸준하게 늘어가는(새로 지어지는) 집들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은 이제 곧 내 집도 생기겠지, 집값도 안정화 되겠지 하고 기대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집값은 물가 상승률은 물론 주요 재테크 수단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폭으로 올라왔고, 여전히 그러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집값 상승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정치인들이 정책을 잘못 집행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시장의 원리일까. 투기꾼들과 담합자들이 문제는 아닐까. 그리고 해결 방안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땅과 집값의 경제학>은 이 모든 물음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찾을 수 있는 책이다. 본 저서가 다루고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영국의 사례이다. 하지만 부동산의 문제는 경제 선진국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역사와 정치, 그리고 경제 등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며 실증적 분석에 기반한 의견을 개진하는 저자들의 모습은 지금 당장 시급한 국가 과제로서 부동산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한국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배워 볼 수 있는 것이다.

<땅과 집값의 경제학>, 토비 로이드 外
 <땅과 집값의 경제학>, 토비 로이드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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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금융의 경제학

저자들이 다루는 다양한 내용들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금융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이 책에 따르면, 영국에서 부동산이 주요 사회 문제로 부상한 것은 대처 총리가 집권한 당시로부터 30여 년 동안이다. 그때 유독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게 된 이유는 금융 규제의 완화와 조세 제도의 개혁이라는 두 축에 기초한다.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며 금융 시스템에 대한 고삐를 해방시킨 결과, 은행들은 대형화되며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면서 그들에 눈에 들어온 것이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이전까지 은행들의 주 수입원은 기업가들에 대한 대출이었지만, 주택담보대출은 훨씬 더 안전하면서('땅'이 담보물이기에 그렇다) 훨씬 더 높은 수익률을 안겨다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존재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주택담보대출이 더 높은 수익률을 안겨다 줄 수 있던 이유 역시 금융완화 때문이다. 서민들이 대출을 받기가 쉬워지며 손쉽게 집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며 많은 사람들이 은행을 통해 집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수요가 폭증하며 집값 전체가 증가했던 것이다. 집을 구매할 경우 부과하던 각종 세금을 정부에서 면제하거나 철폐하며 더욱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 뒤로 전개된 흐름은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집값이 계속 오르자 '주거지'로서의 주택 개념은 점차 흐려졌고 대신 '투기 상품'으로서의 부동산 개념만이 남게 되었다고. 이에 따라 일반 서민들은 물론이고 부유층 역시 레버리지를 통해 계속 부동산에 투자했고, 해외 자본들 역시 영국 내의 부동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들은 이렇게 형성된 투기적 '피드백 순환'이 오랜 세월 유지되며 영국 부동산이 유례없는 지속적 상승을 거듭했음을 보여준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당시 큰 폭의 조정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본질적 변화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경기침체를 버텨나가고자 집을 담보로 소비를 위한 대출을 받는 서민들이 늘어나며, '부의 원천'으로서 집의 역할이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고 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땅과 집은, 그렇게 어느덧 '금융화'의 과정을 거쳐 국민 전체의 경제력을 결정짓는 중심적인 자산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부동산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의 문제

그렇다면 과연 땅과 집의 가격이 '안정화'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이에 대한 답이 중요한 것은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곧 사회 전체의 경제 불평등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불평등'에 대한 담론은 꾸준히 존재해 왔지만, 몇 년 전 토마 피게티가 <21세기 자본>을 발표하며 광범위한 학술적, 정치적 문제로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땅과 집값의 경제학>에 따르면 피게티발(發) 불평등 담론은 '땅'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치 못하다. 피게티는 자본소득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게 되며 있는 자가 더 부유해지는 불평등 사회가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본 소득에 대해 국제적 과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본 저서의 저자들이 실증 분석을 해 본 결과, 실제로 자본소득에서의 격차는 근 수십년간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물론 차이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집값의 차이'에 있었다. 주식, 채권, 광물 등 여타 투자자산들에 비해 영국 내 주요 부지에서의 부동산 가격은 어마어마한 가격 상승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땅과 집값의 경제학> 中
 <땅과 집값의 경제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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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집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집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도심, 개발 중심지에 가진 사람과 지방 낙후된 지역에 가진 사람 사이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금전적 차이를 안겨다 주었다. 자본소득 격차를 발생시킨 주범이 바로 부동산인 셈이다.

게다가 좋은 부동산을 보유한 이들은 해당 집과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추가적인 부동산 투자가 가능했기에, 시간이 흐르며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렇기에 상위 1% 자산가 내에서도 1할과 9할 집단 사이에서도 두 배 이상의 소득 격차가 생겨나게 되었을 정도로 '불평등'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저자들이 제기하는 해결책은 주택 보유형태의 다양화부터 금융 시스템의 대출 방식 개혁, 그리고 공적 부동산 개발 재활성화까지 다양하다. 이 중 다수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시행된 경험이 있거나, 시행되고 있는 정책들로서 일정한 효과를 드러낸 바 있다.

다만 부동산 문제에 얽힌 이해당사자가 굉장히 많고,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함에도 여태까지 그것에 성공한 적이 거의 없기에 확실한 해결책의 마련과 집행 모두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부동산 문제에 관심을 드러낸 지는 10여 년도 더 지났지만, 매 상황 정책과 기조가 바뀌며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였다.

영국의 사례를 기반으로 드러나는 부동산의 불평등 경제학은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집값 안정화 대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잘 드러내 보인다. 그것이 실패할 경우 도래할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문제가 얼마나 뿌리깊고 해결하기 어려운지도 알 수 있다.


땅과 집값의 경제학 - 우리 삶의 불평등, 그 시작은 땅과 집에서 비롯되었다

조시 라이언-콜린스.토비 로이드.로리 맥팔렌 지음, 김아영 옮김, 사이(2017)


태그:#서평, #북리뷰,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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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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