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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완벽해 보인다. 미국 다우지수의 상승 흐름을 보노라면 아찔해질 정도이다. 수차례 언론에서 '급락'이라 표현할 정도의 하락 압력이 가해지고 있지만, 큰 흐름에서는 당장 2017년 연말과 비교해 보아도 매우 거대한 호황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스레 세계 증시도 최근 몇 분기 동안 활황세를 드러냈고, 한국의 주식 시장 역시 지난해 코스피 시장의 약진에 이어 올해 초부터 코스닥 시장까지도 최고점을 새로히 경신했다.   

10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금융위기의 망령은 이제 흔적을 지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히로세 다카시의 <금융부패 주모자들>은 지금의 시국에 더욱 적절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모든 사람이 안심할 때 찾아온다고 하지 않던가.

<금융부패 주모자들>은 우리가 이제 어느 정도는 해결했다고 믿는, 10년 내내 전 세계인을 고통스럽게 짓눌렀던 금융위기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다. 일본 탐사보도의 일인자인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이 책을 통해서 2007-2008년의 위기를 초래했던 사람과 제도, 그리고 시스템이 여전히 미국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음을 밝혀낸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의 부를 독점해 나가는지를 추적한다.

그들의 돈은 어떻게 성장했나

히로세 다카시 <금융부패 주모자들>
 히로세 다카시 <금융부패 주모자들>
ⓒ 프로메테우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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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세 다카시가 주목하는 것은 네트워크이다. 탐사보도를 통해 명성을 얻은 그 답게,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이 미국의 금융권력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할애된다.

가령, 한 지역의 주요 상업은행 정도에 불과했던 시티은행이 어떻게 미국 전역에 위세를 떨칠 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는가, JP모건이나 리먼브라더스는 어떤 방법으로 빠르고 지속적인 확장을 거듭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들이다.

그리고 그 답은 놀라움 반, 식상함 반이 느껴진다. 바로 인맥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20세기 초중반 처음 싹을 틔우기 시작한 이들 가문들은 비슷한 규모, 영역에서의 가문들과 혼인 관계를 통해 통합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탄생한 2세, 3세들은 일부는 더 거대해진 금융 기관을 물려받아 이끌었다. 그리고 나머지 후세들은 외부로 나서 다른 방법으로 가문을 돕게 되었다. 바로 법조계와 정치계로의 진출이다.

아무리 실력과 자금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일반 대중의 돈을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것과 유사한 행위가 반복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법적, 정치적 아군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카시는 실제로 시카고에서 60-70년대 내려진 시티그룹을 둘러싼 주요 판결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항상 상식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의문이 가는' 판결들에 동일한 인물, 즉 시티그룹의 경영진과 혈맥으로 이어진 판사가 존재했음을 찾아냈다.

오늘날처럼 전세대에 비해 훨씬 민주적인 사법 시스템이 구축된 상황에서도 국가와 정권을 막론하고 부유층의 편의를 봐주는 판결이 심심찮게 나타나는데, 수십 년 전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했을 터이다. 그렇게 금융 권력은 소수의 가문에게 집중되었고,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연이은 성장을 이어나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건강한 금융 시스템의 구축은 가능할까

그렇다면 과연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의 해결은 어떻게 가능할까. 만약 저자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마 방법론은 '선물시장'의 철폐 혹은 강력한 규제에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네트워킹을 통한 세력의 확장 이후, 금융 권력들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사용한 가장 두드러진 수단이 바로 선물시장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책의 설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선물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보장하는, 즉 높은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다. 다카시에 따르면, 그렇기에 선물시장으로 막대한 투기자금들이 유입되었고 이들이 현실의 빈곤을 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곡물시장과 원유시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2000년대 중후반 두 원자재의 가격이 폭등하였을 때, 이를 중국의 등장 및 발전에 따른 결과라고 여기고 중국에 자원 낭비에 신경 써 줄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 달랐다. 아무리 중국이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그에 따라 기름과 식량이 더 필요해졌을지라도, 그것이 두 원자재의 시세를 두 배 이상 폭등시킬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카시의 분석에 따르면, 이미 당시 국제적으로 생산되고 있던 곡물의 양은 중국의 늘어난 수요를 메꾸고도 훨씬 많이 남아도는 수준이었음에도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오르기만 하였다.

이 때문에 세계 각지의 모든 사람들이 훨씬 더 먹고 살기 힘든 시기를 견뎌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흐르자, 앞에서 말한 중국 등에 대한 비판점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아 보이는데도 순식간에 석유와 곡물 가격은 원상태로 복귀하였다.

저자는 이것이 모두 투기자금의 움직임 때문이라고 본다. 이미 현물과 주식 영역에서 거대한 버블을 불러 일으킨 금융 권력들은, 다음 타깃으로 급격한 변동성이 허용되는 선물시장에 진입해 두 원자재의 가격을 급등시켜 이익 확보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 즈음 금융위기가 심화되며 리스크가 커지자 이들은 자연스레 수익을 실현하며 시장에서 철수하였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선물시장을 통해 인위적으로 띄워버렸던 원자재 가격들도 원상복귀 된다.

이렇게 부동산, 주식을 넘어 인간의 생존에 훨씬 더 필수적인 에너지와 식량마저 소수 금융인들의 '숫자 게임'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격 급등과 급락은 단발성이 아닌, 지금까지도 여전히 (오히려 더 확대되어 운영되고 있는) 선물시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선물시장을 무조건 투기판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설립 초기의 목적처럼 주요 금융기관들이 거래의 리스크를 헷지(파생금융상품을 활용하여 높은 운용수익률을 얻고자 하는 펀드-네이버 지식백과 참조)하기 위한 용도로도 여전히 중요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세상에서의 거래를 보조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선물시장이, 이제는 현물시장보다도 더 거대한 규모가 되어버리고 꼬리(선물시장)가 몸통(현물시장)을 뒤흔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 심각한 문제이다.

결국 장점만 취하고 단점은 최대한 배제시켜 건강한 금융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하겠지만, 문제는 그것은 결국 '사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미국 정부는 부시, 클린턴, 그리고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권이 상기한 금융 권력자들의 네트워크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들에게 경제정책의 권한을 내어주었다. 개혁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바라고 있는 부패된 금융활동의 규제는 현재로서 요원하다. 결국 이런 상황을 개선해 나가는 것은 대중들이 금융권 내의 부패권력을 인식하고 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 나가야만 서서히 가능해질 것이다. 어려운 일임에도 꾸준히 히로세 다카시가 금융권력에 대한 탐사보도를 지속하고 그에 대한 결과물을 대중도서로 출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금융부패 주모자들 - 히로세 다카시 특강

히로세 다카시 지음, 허강 옮김, 프로메테우스(2017)


태그:#서평, #북리뷰, #금융, #금융도서,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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