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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 거여동재개발지구 2018년 2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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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했더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오로지 자본의 이익과 잉여는 곧 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개발지구마다 갈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집'이라는 의미가 그냥 집일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이 투기의 대상이 되고, 힘껏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남겨줄 때 집은 더는 집이 아니기로 했던 것이다.

2018년 2월
▲ 거여동재개발지구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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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난 그곳의 집들은 맨 처음에 굳게 입을 다물어 군내 나는 것처럼 보였다. 개발을 앞두고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자 굳게 다물었던 입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 입을 열어 속내를 보여주자 신비감은 모두 사라지고 폐허의 아픔만 빈집에 쟁쟁거리고, 하릴없이 놀러 온 햇살만 머쓱하게 머물다 진다.

2018년 2월
▲ 거여동재개발지구 2018년 2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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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몇 구역은 철거가 되어 흙더미를 가장한 쓰레기더미로 쌓였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났듯이, 사람이 떠난 뒤 그곳의 주인 행세를 하던 길고양이들도 떠났다. 그러나 길고양이들은 멀리 떠나지 못하고 몇 블록만 옮겨, 아직 철거되지 않은 빈집을 거처 삼아 살아가고 있다. 그곳에 갈 길 잃은 생명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2018년 2월, 아직도 사람이 사는 흔적이 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2018년 2월, 아직도 사람이 사는 흔적이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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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를 위시하여, 좁은 골목길 보도블록 사이에서 피어나던 초록 생명이며, 화분에서 피어나던 생명과 쥐 같은 혐오감을 주는 것들도 이젠 다 떠나야만 한다. 초록 생명은 이미 입춘이 지났으니 올해에도 어찌 되었건 피어나겠지만, 제 수명을 기약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런 곳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반질거리도록 쇠 수세미가 할퀸 흔적을 간직한 양은 냄비와 버킷과 다 녹슬어버린 연탄 화덕, 그리고 방과 이어진 부엌을 파고든 햇살 한 줌. 차라리 꿈이었으면 마음이 덜 아플 수 있을 것 같았다.

2018년 2월
▲ 재개발지구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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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맨션 나무간판을 보고서야 '그런 이름의 맨션이 있었구나!' 실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그곳을 뻔질나게 지나다니면서도 알지 못했던 존재, 이제 사라질 때 즈음에야 내게는 각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라지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본다. 어쩌면 곧 사라지게 될 거여동재개발지구도 지금 내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나의 고향처럼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2018년 2월
▲ 거여동재개발지구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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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논리로는 개발이 과정에서 누구는 이익을 보고 누구는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왜 우리 인간의 삶에서 자본의 논리가 진리가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다. 찬성이나 반대, 그런 근원적인 고민보다는 오로지 '돈', 여기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것이 재개발지구를 바라보는 아픔이다.

2018년 2월
▲ 거여동재개발지구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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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재개발지구의 고양이들은 다 어디로 가야할까?
▲ 길고양이 2018년 2월, 재개발지구의 고양이들은 다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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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난 그곳엔 아직 길고양이들이 남아있다. 하나둘 철거를 마칠 때마다 그들은 또 다른 골목으로 피난을 갈 것이다. 그리고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은 길고양이 같은 존재들과 공존할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하는 건물을 지을 것이다.

2018년 2월
▲ 거여동재개발지구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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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막 사이로 겨울바람은 세차게 불고,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 이제 저 골목을 왁자지껄 웃음소리로 채웠던 일들은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처음 거여동재개발지구가 생겼을 때 그 골목길은 희망으로 웃음으로 채웠던 꼬맹이들은 이제 다들 중년을 넘어섰다. 그들은 다 잘살고 있을까?

2018년 2월
▲ 거여동재개발지구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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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랫동안 버티던 '새서울이발소'는 이제 간판과 이발소였다는 흔적만 남긴 채 떠났다. 떠난 그곳에 시멘트타일로 조악하게 만든 세면대와 쓰다남은 작은 비누 한 조각뿐이었다. '새 서울'로 거듭나는 일, 그것이 쉬운 일인가? 묻는 듯하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머지않아 아파트만 들어서면 너도나도 못 들어와서 안달할 최고의 '새 서울'이 될 것이니. 자본의 소리는 그렇게 외치며 스산한 골목길을 주인인 양 드나들고, 그곳의 주인이었던 사람과 길고양이는 떠날 곳을 찾고 있다.


태그:#거여동재개발지구, #길고양이,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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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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