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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질문에 답하는 양정철 전 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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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무슨 고생이에요. 내가 뭐라고..."

17일, 오전 6시 50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한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취재나온 기자들에게 건넨 첫마디다. 언론들의 취재열기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에는 친절하고 자신있게 답변했다.  

- 이제 해외 생활을 끝낼 건가?
"책 출간 때문에 잠깐 들어왔고요. 저자로서 책을 사준 분들에게 도리를 하고. 책 때문에 잠시 들어와도 이렇게 관심이 많으신데 부담스러워서 오래 있기가...(웃음) 다른 계획은 없는데요, 다시 좀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날 양 전 비서관은 "지금으로선 지난번에 제가 한 선택이 바뀌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지난번에 제가 한 선택'이란 지난 2017년 5월 16일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문자를 남기며 퇴장을 선언한 것을 가리킨다. 여전히 복귀설에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 분위기다.

귀국에 앞서 <연합뉴스>와 <한겨레> <중앙선데이> 등과 한 인터뷰에서도 양 전 비서관은  "더 모질게 권력과 거리를 둘 것이다", "당분간은 정처없는 유랑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선을 긋고 싶다" 등 복귀설을 일축해왔다.

양정철 전 비서관 앞에 놓인 '세 갈래의 길'

양 전 비서관은 이날 귀국하기 전에 국내 언론과 세 차례 인터뷰했고, 귀국한 후에는 두 번의 북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지난 2017년 5월 스스로 '퇴장'을 선언한 뒤 해외 유랑길을 떠났고,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도 지나지 않았다는 등의 사실을 헤아리면 그가 언론 인터뷰와 북콘서트를 매개로 대중과 접촉하는 일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다. 그가 부각될수록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연달아 진행한 언론 인터뷰와 북콘서트도 단순한 출판 홍보로만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 전 비서관은 여전히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다. 당연히 문 대통령의 의중을 거스르는 일은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런 점에서 언론 인터뷰와 북콘서트는 최소한 문 대통령의 묵인 하에 진행되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런 상황은 정치적 해석을 낳게 마련이다. 실제로 언론 인터뷰와 북콘서트가 그의 '복귀'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외 유랑길 8개월 만에 세 차례 연속 언론과 인터뷰하거나 두 차례의 북콘서트를 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양 전 비서관에게는 대체로 '세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먼저 문 대통령 임기 동안 계속 해외에 머무는 길이다. 문 대통령과 여권에 미치는 부담이 가장 적은 선택이다. "패권, 친문, 문고리 얘기는 누구도 말할 수 없게" 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가장 괴로운 길이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언제까지 외국에 떠돌아야 하는지 가끔 회의도 든다", "자청한 일이지만 이제 힘들어지기도 하고" 등 괴로움을 토로한 바 있다.  

두 번째는 국내에 머물되 정치활동과는 완전히 담을 쌓는 길이다. 해외 유랑길로 인한 괴로움을 크게 덜 수야 있겠지만 '비선정치' 등의 뒷말들을 낳을 수 있다. 양 전 비서관은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몇 개 학교에서 교수 제의가 있었지만,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것 같아서 거절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세 번째는 공직에는 직접 나서지 않으면서 공개적으로 '적당한 역할'을 수행하는 길이다. '비선정치'라는 말은 나오지 않겠지만 야당에 '측근정치'라는 비난 프레임을 제공할 여지가 크다. 특히 양 전 비서관에게는 "나서면 '패권', 빠지면 '비선'"으로 공격받는 데 트라우마가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적당한 역할'이 무엇이냐도 문제로 남는다.     

여당 내부에서 떠오른 '양정철 역할론'

두 번째와 세 번째 길은 측근정치에 비판적인 한국 정치의 특성상 문 대통령과 여권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여전히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 안에서 그를 비롯한 핵심 측근들의 역할론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3철'(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전해철, 이호철, 양정철을 일컫는 말) 가운데 한 명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경기도당 위원장 사퇴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 측근이라고 하는 분들이 적어도 내각과 청와대에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것을 자제하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라며 "하지만 이외의 부분에서 양정철 전 비서관이나 이호철 전 수석이 일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미묘한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상당히 민감한 발언이었다. 양 전 비서관이 내각과 청와대에 들어가 일하는 것은 안되지만 "이외의 부분"에서 하는 활동은 허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외의 부분"이 뭐냐는 것이다. 이는 양 전 비서관을 비롯한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의 역할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선출직 공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방선거나 총선 출마설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그에게 선거 출마를 권유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친문인사'인 전해철 의원과 박남춘 의원이 각각 경기도지사와 인천시장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양 전 비서관과 함께 5년간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강병원 의원도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누구보다 진심으로 촛불에 앞장섰고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준비했던 인물이다"라며 "그런 양정철 선배와 함께할 수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썼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의 역할이 부재한 것에 진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다.

강 의원은 "촛불과 함께 권위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담을 그릇으로 문재인 정부가 선택됐는데 여전히 국민의 지지로 얻은 권력을 패권으로 몰아붙이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가신으로 폄훼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촛불 아래 함께 한 모든 국민과 양정철은 한 팀이다, 그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라고 말했다. 이는 '양 전 비서관에게 역할을 부여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지방선거 최종 후보는 도울 수 있다"에 담긴 뜻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17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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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 전 비서관은 지방선거나 총선 출마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7년 12월 말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2020년 총선도, 이번 지방선거도 안 나간다"라고 말했고, 이날 귀국하면서도 "단언컨대 이번 지방선거에 나가는 일은 없다"라고 거듭 출마설을 일축했다. "공직으로 가는 건 꿈꾸거나 계획하거나 기대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메시지다.   

다만 이날 귀국한 뒤 기자들과 나눈 얘기 중에는 흥미롭게 해석할 만한 대목이 있다. 기자들이 "전해철 의원이 경기도지사 나가는데 도울 생각이 있냐?"라고 묻자 "다른 분들 선거를 도울 일도 없을 것 같다"라면서도 이렇게 답변했다.

"제가 선수로 나가거나 전 단계(경선단계)에서 다른 분을 도울 처지는 아니지만 어떤 분이 우리 당의 최종 후보로 결정되면 부분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방선거에서의 역할'을 언급한 것으로 볼 만한 발언이다. 양 전 비서관은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후보 경선에 나설 인사들 가운데 박영선 의원, 전해철 의원 등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 본선에서 모종의 역할을 수행해 승리를 이끌어낸 뒤 그것을 바탕으로 결국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낙관적 분석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양 전 비서관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최근 <중앙선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대선 1년, 그리고 지방선거는 끝나고 나야 내 복귀설이나 역할론 같은 얘기가 없어지지 않겠나"라고 말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뒤집어 보면 이는 최소한 대선 1주년(5월)과 지방선거(6월)가 끝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활동을 재재하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선명성'의 상징과도 같았던 양 전 비서관이 '배려', '존중', '공존', '통합', '실용' 등의 용어를 쓴 것도 향후 정치적 보폭을 넓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양 전 비서관과 잘 아는 한 인사는 "출판사 쪽에서 강하게 요구해 일시 귀국하는 걸로 알고 있고, 지금은 변수가 너무 많아 (향후 행보를 생각하기엔) 너무 이르다"라며 "다만 지방선거가 끝나고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한편 양 전 비서관은 <세상을 바꾸는 언어>(메디치미디어) 출간 기념 두 번의 북콘서트(1월 30일, 2월 6일)를 연 뒤 설 명절까지 국내에 머물 계획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머무는 동안 문 대통령과 만날지도 관심거리인데 그는 이날 인천공항에서 "굳이 안 봐도 이심전심이다"라고만 말했다.


태그:#양정철, #문재인, #세상을 바꾸는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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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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