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의 유출이 강력하게 의심되나 기소할 정도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 검찰이 18대 대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 유출한 혐의를 받는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을 최종 무혐의 처리했다. 정황은 다수 있으나 시간이 오래 지나 혐의를 입증할 만한 물증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다. 논란 직후 진행된 과거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1부(부장검사 임현)는 9일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했으나 증거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불기소 처분했다"라고 밝혔다.
"5년 전 일이라 증거 확보 어려워" 사건은 지난 2012년 12월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선 닷새 전인 이날, 박근혜 후보 캠프 선거대책위 총괄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은 유세 현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가서 한 굴욕적인 발언을 대한민국 최초로 공개하겠다"며 손에 든 걸 읽었다. 국정원이 작성·보관한 대화록 원본과 토씨 하나까지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국정원 문건이 어떻게 정치권으로 유출돼 선거에 활용됐는지 수사가 진행됐지만, 검찰은 "찌라시에서 봤다"라는 김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최종 무혐의 처리했다. 이명박 정부가 의도적으로 유출했다는 의혹만 남긴 결과였다.
약 5년 후인 지난해 11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이 사건 재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관계자가 정치권에 대화록을 유출하고, <월간조선>에 보도되도록 누설했다고 밝혔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김 전 기획관에게 문건 사본을 전달했다는 국정원 직원의 진술을 확보해 피의자를 특정했다. 그가 보고 받은 문건과 <월간조선>이 공개한 문건이 배포처를 기재하지 않는 형식적 특징이 일치한다는 점도 피의자 특정 근거였다.
하지만 김 전 기획관은 검찰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청와대와 정치권 관계자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고, 김 전 기획관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지만 그의 진술을 반박할 유의미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청구한 김 전 기획관의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법원이 '제목만 보라'고 결정하면서 수사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공소시효 만료(13일)가 다가오자 검찰은 최종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기획관이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그걸 받아서 보도한 측에서도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누구에게 받았는지 밝히지 않았다"라면서 "그런 상황에서 기소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5년 전 일이라 통화 내역과 이메일 송수신 내용이 확인 안 되는 상태였다"면서 "실체를 밝히는 데 한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대화록 유출 사건은 최종 미제로 남았지만 김 전 기획관의 추가 혐의는 계속 수사한다. 검찰은 앞서 김 전 기획관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청와대 비밀 문건을 무단 유출해 보관한 점을 포착했다. 검찰 관계자는 "해당 문서 중에는 김 전 기획관이 청와대를 그만두고 나오기 직전 작성된 것도 있다"면서 "시효가 남아있는 사건은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