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회사들의 갑질 문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왔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땅콩회항이다. 땅콩을 까지 않고, 봉지에 동봉되어 받았다는 이유로 비행기를 돌려버린 사건이다. 최근엔 부하직원이나 운전기사를 향한 유명기업 회장님들의 폭언이나 폭행은 뉴스에 너무 자주 나온 나머지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이젠 무감각해졌다.
2013년엔 B의류업체 회장이 용역직원을 신문지로 폭행했고, 2015년엔 M식품 전 명예회장, 작년엔 D산업 부회장이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M피자, J의약품 제조업체 회장들도 아래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굳이 경험하지 않더라도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이렇게 모욕적인 일을 당하면 누구라도 그만두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퇴사는 생각보다 대단히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청년실업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이기에 청년들은 퇴사를 망설이고, 같은 이유로 아버지, 어머니들도 망설인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갑질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야한 옷을 입히고 장기자랑이라는 명목 하에 야한 춤을 추도록 강요한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간호사 갑질' 사건이다. 이 사건이 보도 된 뒤에 병원 측에서 언론에 제보한 간호사들을 색출했다는 것이 추가적으로 밝혀지면서 2차 논란을 야기했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으며, 간호하면서 알게 된 개인이나 가족의 사정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간호사가 되기 전에 간호학과 학생들이 하는 나이팅게일 선서이다. 간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간호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다고 다짐한 간호사에게 야한 춤이라니. 자괴감이 든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도 넘은 회사의 갑질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 그저 참으며 다음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출근하던지, 용기를 내어 고발하고 색출당하는 것. 이 두 가지 방법 외엔 없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찌를 수 있었겠지만 회사라는 현대판 골리앗 앞에 우리 같은 일개 직장인은 그저 개미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연대하는 것이다.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떼 지어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연대하는 방법 중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조에 가입하는 것을 꺼려한다. 꺼려하는 것을 넘어 노조를 빨갱이로 생각하며, 노조 가입은 사회 불만 세력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어느 정당은 노골적으로 노조를 비판하기도 한다.
갑질 문화의 역사는 길다. 전태일 열사가 온몸을 불사른 이유도 회사의 갑질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전쟁 이후 보릿고개를 넘는 일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과제였다. 그러기 위해 회사는 더 열심히 직원들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같은 작은 갑질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고, 이 작은 갑질이 오늘날 비행기를 되돌릴 만큼 커진 것이다.
그 당시 회사의 성장이 곧 국가의 성장이었고 이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를 가로막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색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을로서 갑의 횡포를 그냥 겪어 내거나, 함께 연대하는 갈림길 중 어디로 갈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정부는 사회안전망이라는 보호막을 만들어야 한다. 직원들이 회사의 갑질이 너무 부당하다고 느낀다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그 개인이, 혹은 가족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도록 말이다. 정부는 노조 가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에 취직한 직장인들을 위해 산별노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함으로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부모가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아이를 부담 없이 키울 수 있도록, 색출당하더라도 국가가 국민을 책임질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노조 가입으로 회사 내 '갑질'문화가 완전히 뿌리 뽑히진 않을 것이다. 노조처럼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이 늘어남과 동시에 갑질문화를 없애기 위해선 우리 사회 전체의 동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갑질은 회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이는 어른에게 말대꾸 하지 않는다.', '학생은 선생님한테 대들지 않는다.', '부인은 남편의 뜻을 따른다'처럼 말이다. 이들을 달리 해석하면 약자는 강자로부터 부당한 일을 겪어도 저항해선 안 된다는 말과 같다.
장유유서는 어른과 어린이 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차례와 질서가 있음을 뜻한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문화는 좋다. 그러나 서로가 지켜야 할 차례와 질서에 부당함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 장유유서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어디까지나 서로가 지켜야 할 차례와 질서를 유지한 상태에서 공경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아래 사람을 향한 갑의 무조건적인 압박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야 한다.
미래엔 또 어떤 기이한 갑질사건이 터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미래엔 어제 맞은 그 치욕을 꾹꾹 마음에 눌러 담은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음날 출근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