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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법조문이라면 법을 전공한 사람도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특히 그게 국제법이라면 더욱 그렇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만나다>는 그런 편견을 깨뜨린다. 딱딱하고 어려운 법조문을 각 조항마다 그림을 통해 쉽게 이해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권리'라 해서 아동을 위한 책이 아니다. '어른'이 반드시 읽어야 할 어른을 위한 책이다. 권리 주체인 아동과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지켜줘야 할 어른들 말이다.

저자 밥장은 협약의 40개 조항 모두를 한국 현실에 비춰가며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독자를 계도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저자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아동인권에 대해 무지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어른들에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책무를 함께 하자고 책머리에서 권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유엔아동권리협약 조항들이 깊이 뿌리박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아이들에게 꼭 맞는 세상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꼭 맞는 세상입니다. 아이들에게 꼭 맞는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입니다."

세월호,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만 지켰어도

밥장이 그리고 쓰다. 한울림 출판
▲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만나다 밥장이 그리고 쓰다. 한울림 출판
ⓒ 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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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아동이 급식 바우처를 사용하려면 아이들 스스로 급식 대상임을 드러내야 한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아동의 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하지 않을 때 아이들에게는 폭력이 되는 뼈아픈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가슴 아픈 교훈을 남겼다고 저자는 말한다. 세월호 미수습자 5명에 대한 발인이 지난 20일 있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아동의 이익을 가장 먼저 고려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 3조 1항은 "공공, 민간 사회복지기관, 법원, 행정당국, 입법기관 등은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서 아동에게 최상이 이익이 무엇인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저자의 확언처럼 이 조항이 세월호 참사에서 적용되었다면 시스템이나 행정을 따지기 전 어떻게든 아이들부터 구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진실이 밝혀질수록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틀에 갇혀 아이들이 희생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 모두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를 악물어야 합니다. 돈, 효율, 경쟁, 비리, 권력보다 중요한 건 아동입니다. '아이들에게 맞는 세상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맞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33쪽

헌법이 보장한 국제법도 안 지키는 법무부

유엔아동권리협약은 1989년 11월 20일 유엔에서 비준되었다. 우리나라도 1991년 11월 20일에 비준했다. 2016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 196개국이 비준하고 있다. 이 협약은 만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에게 적용된다.

국제법도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6조 1항에 따라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그런데도 미등록이주아동을 대하는 법무부 출입국 담당자들의 자세는 헌법을 공부한 사람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협약 제9조는 "국가는 아동이 자신의 의사와 다르게 부모에게서 분리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모가 별거나 이혼을 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동이 어느 한쪽 부모와 떨어져 살 수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아동은 양쪽 부모와 관계를 유지하고 언제든지 만날 권리가 있다고 협약은 강조한다.

현실은 다르다. 잠비아 국적의 윌리마는 미국 유학 중에 한국인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아내의 성화를 못 견디고 한국에 왔던 그는 지난 8월 강제 출국됐다. 체류자격 연장 신청 기간을 놓친 게 원인이었다. 강제 출국되기 전 두 아이의 아빠였던 그는 이혼하면서 헤어진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재판을 청구했다. 법원은 매주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권을 허락했다. 

몇 차례의 법정 출두 끝에 면접교섭권을 얻어내고는 아이처럼 활짝 웃었던 그였다. 외국인보호소 담당자는 국비 출국을 했기 때문에 10년 후에나 재입국이 가능하다고 했다. 강제출국당한 그는 아이들과 통화를 하기 원했고, 이메일을 주고받기 원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모든 나라는 협약에서 명시한 대로 '가족은 다시 만나야 한다. 다시 만날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항상 아동에게 가장 이익이 되도록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 65쪽

자국 국민뿐 아니라 난민, 이주노동자는 물론 무국적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가족결합권은 국제법으로 보호받는다. 이런 권리를 안다면 법무부 출입국은 윌리마의 두 딸이 아빠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긍정적이며 인도적인 방법으로 신속하게' 모든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윌리마를 강제 출국시켰으니 법무부 출입국이 아이들의 권리에 무지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양쪽 부모 모두를 만나며 관계를 유지할 아동의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만약 출입국 담당자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준수할 의지가 있었다면 윌리마의 체류 자격을 논하기에 앞서 아동의 이익이 무엇인지부터 따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윌리마가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의 도움을 얻어 아이들과 연락하고 있지만,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함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법무부 출입국에게 빼앗긴 셈이다.

미등록이주아동 차별 금지 권고 수용 미루는 서울시

서울시 인권기본조례 제2조 2항에 의하면 "'시민'이라 함은 시에 주소 또는 거소를 둔 사람, 체류하고 있는 사람, 시에 소재하는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돼 있다. 해당 조례에서 서울시는 국적에 따라 시민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체류 자격에 따른 구별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외국인 아동이라고 해서 무상보육을 배제하는 것은 서울시 조례에 어긋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하지만 현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은 지금까지 무상보육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차별 행위에 대해 서울시민인권배심회의는 2014년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던 12월 19일에 의미 있는 평결을 내렸다.

"서울특별시장은 '대한민국 헌법'과 '영유아보육법' 등 각종 법령 및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국제법, '서울시 어린이·청소년 인권조례' 등 서울시의 각종 조례에 따라 ...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도 영유아 및 가정의 복지증진에 이바지하려는 목적으로 지급되는 보육료와 양육수당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서울시민인권배심원제는 서울시 인권센터에 접수된 인권침해 사건 중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건들을 대상으로 한다. 2014년 서울시민인권배심회의 평결 결과는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을 촉구한 세계시민 선언이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조는 아동은 어떤 경우라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협약 당사국은 아동이나 부모, 법정후견인의 인종과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이념, 재산, 장애 여부, 태생이나 신분 등에 관계없이, 그리고 차별 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모든 아동에게 이를 보장해야 한다."

'모든 아동'이라고 하고 있지, 미등록 이주노동은 빼라고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제28조는 교육받을 권리는 소득, 국적, 인종, 불법 이주와 관계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 아동에 대한 보육료 미지급이 사회복지서비스와 관련하여 대한민국 헌법,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에서 금지한 합리적 이유 없이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임을 시민인권배심회의는 분명히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평결이 내려진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시장은 권고 수용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만나다>는 잠시 짬을 내면 읽을 수 있다. 서울시장이 법을 잘 아는 줄 알지만,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아동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국제구호단체 후원 광고는 빈곤포르노

국제구호 기구의 모금 광고는 빈곤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다. 가난하게 살고 있는 아이들과 동정심을 자극하는 문구 하나하나는 우리에게 선입견을 준다. 광고에 나오는 아이들은 빈곤, 질병, 전쟁과 자연재해, 외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각인된다. 혹자는 이러한 광고를 '빈곤 포르노'라고도 말한다.

어디 국제구호 기구들뿐일까? 연말이면 불우아동을 돕는다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사진을 찍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현수막까지 아이들에게 직접 들게 하고 활짝 웃을 것을 강요까지 한다. 그런 면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6조 사생활 보호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아동은 사생활과 가족, 가정, 통신에 대해 자의적이거나 위법적인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되며, 명예나 명성에 대해 위법적인 공격을 받아서도 안 된다. 2. 아동은 이러한 간섭이나 공격으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도움 받는 아이들의 개인정보는 철저히 보호하고, 부득이하게 사진 찍을 때도 반드시 모자이크 처리하도록 하고, 아동의 멘토가 되려면 후원금 외에 최소 18시간 이상 교육을 받도록 하는 등의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동은 누군가의 자기만족을 위한 행사소품이 아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만나다>에서 제시하는 사례들을 보며 얼굴이 뜨뜻해질 어른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 아동의 당연한 권리를 마치 호혜인 것처럼 여겼다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금세 읽을 수 있지만, 여운은 길게 남을 것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만나다 -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키는 40개의 소중한 약속

밥장 글.그림, 한울림(2017)


태그:#유엔아동권리협약, #차별금지, #권리,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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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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