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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호주의 해변 풍경
 전형적인 호주의 해변 풍경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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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그래프톤(Grafton)까지 찾아와 자카란다(Jacaranda) 꽃구경을 하길 잘했다. 보라색 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그래프톤에는 숙소가 만원이다. 페스티벌을 찾은 관광객이 많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가 있는 미니 워터(Minnie Water)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로 향한다. 이곳에서 40분 정도 운전해야 갈 수 있는 바닷가 작은 동네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워낙 작은 동네라 식당도 없다. 주위에 있는 식당을 찾아보니 울리(Wooli)라는 동네에 중국 식당이 있다.

울리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캐러밴 파크(Caravan Park)다. 캐러밴 파크에는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고 온 캐러밴이 즐비하다. 강을 따라 포장된 도로는 계속된다. 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가본다. 작은 공원을 만난다. 주차장에는 흙먼지를 뒤집어 쓴 사륜 구동차가 주차해 있다. 젊은 남녀가 바다와 강이 만나는 주위를 걷고 있다. 호주 오지를 여행하는 연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럽다.

강을 따라 잠깐 걷는다. 강이 기역으로 급격히 꺾이는 곳에는 작은 산이 풍파에 잘려나가 절벽을 이루고 있다. 절벽과 돌덩이들이 엉킨 바위틈에서는 작은 나무들이 힘겨운 삶을 지탱하고 있다. 조금 더 바다 쪽으로 걸으니 밀려오는 바다와 강이 만나며 물살을 일으키고 있다.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바다에는 큼지막한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다. 강태공이 한가하게 세월을 낚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세월보다는 고기를 잡아 올리느라 무척 바쁠 것이다.

바닷바람에 몸을 잠시 맡긴 후 식당으로 향한다. 호주 노인들이 많이 즐기는 잔디 볼링(Lawn Bowling) 클럽 안에 있는 중국 식당이다. 작은 동네임에도 식당은 손님으로 붐빈다. 메뉴를 보니 호주의 중국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이 나열되어 있다.

남편은 주방에서 조리하느라 바쁘고 아내는 주문받느라 바쁘다. 중학교 학생쯤 된 아들도 일을 거들고 있다. 주민이라고 해야 30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동네에서 서양 사람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는 중국 사람이 대단하게 보인다.

푸짐한 식사를 끝내고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가 있는 미니 워터라는 동네는 울리보다 훨씬 더 작은 동네다. 호주에서 가장 많은 지역을 커버한다는 텔스트라(Telstra)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다. 이런 오지에 사는 사람은 무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호기심과 함께 부러움도 생긴다. 넉넉한 마음을 가진 주민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경쟁을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종용한 시골 숙소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았다. 해안까지 걸어본다. 멀리까지 펼쳐진 백사장과 파도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바위들이 정겹다.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여자 혼자서 개와 함께 백사장을 산책하고 있다. 젊은 남자가 땀에 젖은 몸으로 우리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산책길을 뛰고 있다. 산책길은 해안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하루 정도 더 지내며 산책로를 끝까지 걷고 싶은 생각이 스친다.

숙소를 떠나 집으로 향한다. 한 시간 정도 가면 콥스하버(Coffs Harbour)라는 큰 도시가 있다. 여행하면서 자주 지나치던 도시다. 이번에는 해변도 돌아보며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도시에 가까워지면서 나오는 해변 이름들이 유별나다.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 보석 이름이 붙여진 해변이 서너 개 된다.

동네 길로 천천히 운전하며 보석 이름을 가진 해변들을 기웃거린다. 일요일이라 사람은 많은 편이나 주차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어느 해변에는 말들이 시원한 물가에서 한가히 지내고 있다. 말을 타고 천천히 모래사장을 거니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해변에는 개들이 물장난을 치며 마음껏 뛰놀고 있다. 호주에 사는 동물은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래사장에서 젊은 남녀가 몸을 태우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 즐기는 부모의 모습도 보인다. 큼지막한 서프보드를 들고 큰 파도를 찾아 바다로 걸어가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전형적인 호주 해변의 모습이다.

보석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해변들을 뒤로하고 시내 입구에 들어서는데 전망대라는 팻말이 보인다. 이곳에 전망대가 있는 것을 알긴 했지만 6km나 들어가야 하기에 들려본 적은 없다. 코로라 전망대(Korora Lookout)라는 곳이다. 오늘은 전망대를 향해 오른쪽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슬쩍하고픈 마음을 유발하는 주인 없는 가게

전망대에서 바라본 콥스 하버(Coffs Harbour) 풍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콥스 하버(Coffs Harbour) 풍경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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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은 돼 있으나 가파르고 좁은 도로다. 좌우로는 이 동네의 상징이기도 한 바나나 농장이 계속된다. 도로변에 있는 무인 판매대에서는 바나나를 팔고 있다. 가파른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니 규모가 큰 전망대가 나온다. 넓은 주차장에는 제법 많은 자동차가 주차해 있으며 전망대에도 사람이 많다. 현수교를 반 토막 낸 모양의 전망대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기도 한다.

전망대에 올라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눈 아래로 콥스 하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울창한 숲과 태평양의 푸른 바다가 멋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숲이 울창한 곳에 자리 잡은 도시의 모습도 보기에 좋다. 길게 뻗어 있는 방파제 근처에서는 장난감처럼 보이는 두어 척의 배가 하얀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장난감 같이 보이는 자동차들도 도로를 달리고 있다.

전망대를 떠나 올라왔던 가파른 길을 되돌아간다. 가는 길에 도로 주변에 있는 무인 판매대에서 바나나를 집어 들고 자그마한 상자에 동전을 넣는다. '슬쩍'하고픈 마음을 유발하는 정겨운 무인 판매점이다. 호주 오지를 여행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 없는 가게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어깨와 어깨를 부딪치며 사는 도시에서는 무인 판매대를 본 적이 없다.

점심도 먹고 바다 구경도 할 겸 콥스 하버 항구에 들린다. 수많은 어선과 고급 요트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생선 가게와 음식점이 있는 곳에는 사람으로 붐빈다. 가격에 비교해 푸짐하게 주는 싱싱한 생선튀김으로 한 끼 때우고 방파제 옆에 임시로 만든 산책로를 걷는다. 방파제는 지난번에 몰아친 파도에 일부가 파손되었기 때문이다. 바다에는 제법 큰 고기들이 바위 주위를 맴돌고 있다.

조금 걸어 머톤버드(Muttonbird)라는 섬에 도착했다. 섬이라고 하지만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어 걸어서 갈 수 있는 섬이다. 섬 주위에서는 물안경을 끼고 바닷속을 구경하며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짧은 1박 2일 여행에서 다양한 삶을 보았다. 평소에 좋아하는 톨스토이의 질문이 무심코 떠오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의 단편집을 한 번 더 읽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NSW, #COFFS HARB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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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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