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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6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EPA/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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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직접 생방송을 통해 '대 이란 신정책'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이란 핵 합의 준수 여부에 대한 재인증(recertify) 판단을 '불인증'하고 이 사안을 미 의회에 넘겨 의회가 60일 내에 대 이란 제재를 재개할지, 새로운 국내법 개정안을 만들지, 기존 협정을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는 전임 오바마 정부와 이란을 포함한 유럽의 여러 나라가 참여한 다자 합의를 사실상 일방적으로 파기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 핵 협정'(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은 2015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의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이란은 물론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 유럽연합(EU)이 합의한 문서를 말한다. 당시 협정의 당사국들은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 등이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국제사회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 미국

트럼프의 발표가 있자 직접적 당사국인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의 대통령 한 명이 마음대로 다자 국제협약을 무효로 할 순 없다"며 "핵 합의를 존중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같은 날 유럽의 또 다른 당사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핵 합의 준수는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한다"며 "이란 핵 협정을 완전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데리코 모게리니 유럽연합 외교담당 집행위원 역시 "이란 핵 협정은 국내 문제가 아니며 한 국가에 속한 것도 아니다. 트럼프가 힘은 세겠지만 협정을 바꿀 힘은 없다"라며 트럼프의 결정을 비난했다.

러시아는 외무부 성명을 통해 협정 준수를 다짐했으며 중국은 논평조차 하지 않으며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언론 역시 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비난 일색이다. 독일 공영방송 이체벨레는 "트럼프의 결정은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모욕이며 미국은 고립을 무릅쓰고 있다"고 보도했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책임있는 세계 리더의 역할을 포기했다"고 논평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정부가 이란 핵 협정 불인증의 이유로 들고 있는 것들은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하기 전 백악관이 낸 사전 설명자료에는 이란 정권이 핵 협정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이란 군부 지도자들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거부를 공개적으로 말해왔으며 군기지의 핵시설들을 은폐해 핵 협정을 위배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정작 이란 핵 협정의 준수감독기관인 IAEA의 아마노 유키아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고 "이란이 핵 관련 약속들을 이행하고 있다"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핵 검증체제를 따르고 있다"며 백악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불인증 결정은 근거 없는 '바보 짓'

트럼프가 이같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란 핵 협정에 대한 불인증 조치를 취한 것은 국내의 지지층에게 자신은 충분히 강하며 오바마의 유산을 되돌릴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행동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정치적 허영심이 만든 지정학적 바보 짓"이라고 쏘아붙였다.

트럼프 정부의 이란 핵 협정 불인증 조치가 우려스러운 것은 트럼프 본인은 물론 미 정부의 주요 당국자들이 이번 조치를 북핵과 연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란 핵 협정을 불인정하며 "이란과 북이 거래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며 철저히 분석하라고 정보기관들에 지시할 것"이라며 이란을 북한과 연관시켰다.

이어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북이 이 결정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미국이 북한과 매우 까다로운 합의를 기대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언급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란 핵 협정을 검토하는 모든 이유는 북한 때문"이라며 이란 핵 협정 불인증 조치가 북한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란 핵 협정 불인증은 북핵 문제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 미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2일 설립 70주년을 맞은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했다고 13일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2일 설립 70주년을 맞은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했다고 13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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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트럼프 정부의 결정은 미국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주장하기에 좋은 소재일 뿐이다.

이미 북한은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가 부시 정부가 들어서며 일거에 무산된 사안이나 2005년 9·19공동성명이 미국이 들고나온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으로 휴지조각이 된 사안을 들어 미국을 비난해 왔다. 특히 이번 사안은 국제사회에서 형성된 다자간 합의조차 미국이 일방적으로 깰 수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협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 사례를 통해 북한에게 더 높은 수준의 핵 불능화 협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이란 사례를 들며 더 많은 보장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등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들 역시 적극적 중재에 나서기 어려워졌다. 트럼프 정부가 존재하는 한 북한에게 '믿을 수 없는 정부'와 협상하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트럼프의 이란 핵 협정 불인중 결정을 넘겨받은 미 의회가 이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정부는 급속한 레임덕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미 의회가 트럼프의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은 국제사회의 보다 큰 반대와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요한 반대국 중에는 미국의 주요한 동맹국들이 포함될 것이며 이는 '강력한 군사력'과 '동맹'을 두 축으로 하는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의 한 축의 중대한 훼손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신뢰를 저버린 미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어디까지 망가질지 두고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주간 뉴스레터 'Watch M' 제113호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태그:#이란 핵협정 , #북핵 문제 , #트럼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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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제언'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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