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으로 여행지가 정해진 것은 여행 일주일 전이었다. 함께 여행을 가고자 했던 이의 아버지 댁이 있던 순천에서 급하게 통영으로 변경됐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즉흥적인 여행 메이트와 나의 성격이 한몫 했을 것이다.
통영으로 의견이 모아진 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2년 전부터 늘 가보고 싶었고, 하룻밤 묵고 싶었던 통영 '남해의 봄날' 책방과 봄날의 집 북스테이 '장인의 다락방'이었다. 통영보다는 장인의 다랑방과,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한 책에 꽂혔다. 섬 관광지에는 관심이 없었고, 봄날의 집에 숙박을 할 수 있는지가 나의 초점이었다.
7월 말 최대 여름 휴가철 성수기에, 어찌 그렇게 운도 좋았는지, 딱 한 공간, 장인의 다락방만 비어 있다고 하셨다. 신이 났던 나는, 당시 내 벌이로는 감당이 안 되는 금액을 지불하며 통영으로 향했다.
새벽 3시 30분, 내가 있던 경기도 푸른지대 (경기청년문화창작소) 작업실에서 나를 픽업해 함께 여행 가는 메이트의 자동차가 도착했다. 새벽을 가르고 간다면, 그 먼 통영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다는 생각에, 생각 없이 대중교통을 놓아두고 자가용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장장 네 시간도 넘는 운전은 피곤했으리라. 녹초가 된 여행 친구는 운전으로 인한 허리 아픔과 답답함을 참고 억누르는 것이 보였다. 운전석 옆 좌석에서 그저 통영과 남해의 봄날에 간다는 생각에 들뜨고 두근대고 설레던 나는 눈치는 좀 보았지만, 이미 마음은 통영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어둡던 하늘의 색깔이 변해갔다. 도착했을 때는 아침을 마주하고 있었다. 유명하다던 충무김밥을 먹고, 우리가 통영 관광지에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마을 어귀에 오래 되고 낡은 목욕탕에 들어가서 통영을 맞는 아침 채비를 곱게 하는 것이었다.
남해의 봄날 체크인은 늦은 오후라서 통영 이곳저곳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조금 후회됐던 것은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한 <통영예술기행> 같은 책을 읽고 왔으면, 통영이 가진 내음을 맡는 것이 더 수월했을 텐데... 급하게 순천에서 통영으로 변경된 여행지라 모든 것이 즉흥적이고 급했다.
우리는 통영에서 일분일초를 마음가는 대로 움직였다. 그래서 봄날의 집에 원래 체크인 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해서 남해의 봄날 책방에서 책을 여러 권 집고, 평소 사지 않던 책을 그곳에서 다 구매했다. 한 사람 당 서너 권 넘게 구매했으니 많이 산 것이다.
봄날지기가 우리를 안내해줬다. 마치 미술관 큐레이터인 듯, 집 구석구석을 설명해주고 안내해줬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의 작품을 보듯 봄날의 집을 구경할 수 있었고, 아낄 수 있었고, 소중하게 대할 수 있었다.
남해의 봄날에서 만든 지역지도, 문학지도, 예술가 지도 등 그들이 통영을 읽어가며 만들어낸 문화가, 새롭게 통영을 보게 만들고 읽히게 만드는데, 그 얼마나 세련되고 감동인지... 그날 우리가 묵은 장인의 다락방에서 설레서 잠이 안 오더란 말이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 보듯 감탄하던 중에, 봄날지기가 물으셨다. 바다에 요트를 타러 가는데, 다수의 인원이 타러 가면 인당 2만 원의 가격으로 통영 안에 또 다른 섬을 만나고 올 수 있다는 거였다.
봄날의 집 오기 전에 통영 마을 어귀에서 요트 관광족들을 보고 부러워하던 여행 메이트가 굉장히 반가워 한 소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남해의 봄날 직원 분들과 봄날의집 북스테이 숙박을 하는 손님들 12명은 한 요트를 타고, 바다 위에 머무르는 근사한 추억을 쌓게 되었다.
그 와중에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는데, 봄날 책방지기였던 닉네임 '고래'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온 청년이었다. 통영에는 아무 연고도 없는데, 단지 이 남해의 봄날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자진해서 섬 생활을 하며 봄날 책방지기를 하고 있었다.
낭만이 있는 책방지기 사연을 들으며 어둠은 더 깊어졌다. 어느새 장인의 다락방만이 가지고 있던 숨은 매력의 장소인, 2층 옥상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들이켰다. 여름 바람에 젖은 머리도 말리고 있었다.
조용한 마을 어귀에 자리한 봄날의 집 북스테이라서, 테라스에 앉아 마을을 바라보면, 아기 울음소리, 샤워기 물 튼 소리 등 동네의 소리가 온전히 전해졌다. 낮은 건물들 안에 있으니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시야도 없었다. 있는 것은 오로지, 오늘 통영을 만끽했던 이야기와 대화 그리고 봄날 북스테이가 주는 선물 같은 저녁 뿐이었다.
책방에서 산 <수박 수영장> 그림책을 펴서 잠이 오기 아까운 다락방에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강화도 시골 민박집에 오는 손님의 이야기와 드로잉을 엮은 구술화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포부가 있다. 그래서 그림책 구매를 즐겨 하고 있다.
그 그림책이 완성돼 독립출판물로 인쇄돼 나오는 날(아마도 빠르면 내년 5월의 봄날) 통영 이곳, 남해의 봄날 책방과 북스테이에 다시 올 거다. 이곳에 머무르며 내 그림책을 몰래 이곳 한켠 어딘가에 꽂아 놓고 오리라. 그런 작지만은 않은 꿈을 꾸며 이 소망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잠이 오지 않던 새벽녘에 겨우 눈을 붙이게 되었다.
떠나야 하는 아침을 맞이하고, 북스테이 주인장이자, 북스테이를 건축한 동네목수 선생님에게 우리의 통영 다음 여행지에 조언을 얻었다. 몽돌 해수욕장으로 출발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쉬웠다. 여행지를 떠나와 일상으로 돌아오고, 계절이 바뀌고, 오늘의 지루한 일상을 지키게 하는 나에게, 지금 모습 그대로 계속 남아 있어 주시라.
덧붙이는 글 | ‘책과 함께 머문 하루 북스테이 체험수기‘ 응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