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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나는 뮤지컬과 희곡 대본을 쓰는 일을 했다. 무명에 가까운 작가이지만 예술 언저리에서 글을 써서 밥 먹고 살았었다. 그러다 결혼, 출산, 육아로 진입하면서 작가보다 세 아이의 엄마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육아는 그 어떤 일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중요한 일이지만, 육아 때문에 나를 만들어 가던 일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런 고민 속에 마을의 작은 도서관을 만났고,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로 이어지는 새로운 흐름을 알게 되었다.

작은 도서관을 터전 삼아 마을극단을 만들어 나와 아이들을 위한 작은 공연을 만들어 마을과 나누며 몇 년을 보냈다. 그렇게 도서관과 마을을 드나들며 많은 이웃을 만났다. 바느질, 수채화, 드로잉, 그림책, 꽃차, 가족합창단, 난타 등 다양한 동아리들이 마을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냥 얼굴만 알던 이웃의 동아리 활동 모습을 보자 여고 시절 CA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일상의 한 조각은 지켜만 봐도 같이 행복했다.

마을극단에서 아이도 내 꿈도 키웠다.
▲ 외로운 육아의 해방구 마을극단에서 아이도 내 꿈도 키웠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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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아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

여고 시절 나는 연극동아리를 3년 동안 했고, 이는 대학 전공으로 이어져 마흔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직업이자 취미인 셈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며 마을의 동아리들을 보니 잊고 있던 어릴 적 꿈들이 생각났다. 밥벌이의 긴장감을 내려놓고 '그냥 좋아서' 하는 것들이 하고 싶어졌다. 

막내가 어린이집에 가는 다섯 살만 되면 가벼워진 두 손으로 그림을 그려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디 수채화뿐이랴, 우쿨렐레, 자수, 사진, 피아노, 판소리 등등 하고 싶은 건 많고도 많았다.

하모니카도 불고 내 일상도 나누고
▲ 취향공동체 하모니카도 불고 내 일상도 나누고
ⓒ 생활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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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의 취향 공동체, 생활문화 동아리

올봄, 드디어 막내가 어린이집에 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무엇을 먼저 배울까 두리번거렸다. 마을공동체 속 동아리 뿐만 아니라 주민센터, 공공도서관, 평생학습관에 다양한 강좌들이 개설되어 있었다. 강습에 그치지 않고 일상을 함께 나누는 관심공동체에서 취향 공동체로 성장한 건강한 생활문화 동아리들이 물리적인 마을을 넘어 또 하나의 마을을 이루어 가는 움직임이 보였다.

많은 꿈 중에 가장 하고 싶었던 '여행수채화'를 손가락에 꼽았다. 마을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는 미술작가와 뜻을 모아 월요일 오전 여행수채화반을 열었다. 처음엔 아이들 그림물감을 들고 만났지만, 자신만의 화구를 챙겨 들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경을 그리는 오전 11시의 로망을 이뤄가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한동네에 살고,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끈끈한 울타리가 생겨났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취미공동체구나 싶다. 요 몇 년 사이 새로운 바람으로 불고 있는 '생활문화예술'이 이런 거구나 체감했다.

축제 메인 포스터
▲ 2017 두근두근 내 안의 예술 축제 메인 포스터
ⓒ 생활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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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영역으로서의 생활문화

올해 처음 '생활문화진흥원'을 알게 되었는데 벌써 4회째 '전국생활문화축제'가 열리고, 서울문화재단에도 생활문화지원단이 출범했다. 전문예술가들의 영역과는 다른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누리는 생활문화.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은 '자발적 예술(Voluntary Arts)', '비공식 예술(Informal Arts), 미국은 '참여예술(Participattory Arts), 독일은 '사회문화(Soziokultur)라는 개념으로 정리되어 있다. 한국의 기존 개념으론 '시민문화(예술)', '아마추어 예술', '커뮤니티아츠', '생활문화(예술)'로 혼재되어 통용되다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으로 "지역주민 스스로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만드는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생활문화'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점점 커져만 가는 현대 사회의 불확실성과 개인의 욕망을 조율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관심공동체인 생활문화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공적 영역으로 생활문화가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의 외로운 육아에 지쳐 산후우울증을 겪던 내가 마을극단 활동을 하며 일상과 육아의 즐거움을 찾았고, 아이 때문에 접었던 일을 아이와 함께 키워나가게 되었다. 지역의 크고 작은 동아리들 대부분이 자신의 필요와 열망에 따라 생활문화를 매개로 관계공동체를 재구성해 나가고 있다.

값비싼 사교육으로 접하는 예체능보다 동네에서 만나는 피아노 이모, 사진 이모, 미술 이모, 공연 삼촌을 친구로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막연한 꿈이 이렇게 이뤄지는 중이다. 나의 여행수채화처럼 아이들에게도 전문적인 예술을 익히기보다 자신이 자라는 마을의 문화를 누리며, 자신의 삶으로 다시 마을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전체 프로그램
▲ 2017 생활문화축제 전체 프로그램
ⓒ 생활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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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생활문화축제 '두근두근 내 안의 예술'

사교육 대신 아이의 유년과 미래를 풍성하게 해줄 생활문화가 새 정부의 지역문화정책국 신설로도 확장되어 반갑던 차 이번 주말 열리는 시민이 주인공인 축제가 있어 소개할까 한다.

'삶을 예술로, 마을을 문화로' 가꾸어 가는 전국의 생활문화 동아리들이 모여 4년째 이어오고 있는 '전국생활문화축제'가 오는 7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진행된다. 본 개막(9일)에 앞서 오는 8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전야제를 개최한다. 2017 생활문화축제는 보여주기식 행사, 전문 기획자 중심의 프로그램 중심 행사라는 시행착오를 겪고 "시민들이 스스로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축제를 이끌어가"며 "시민들이 함께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한마당이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한다.

9월8일부터 10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서 펼쳐지는 시민들의 축제
▲ 축제 안내도 9월8일부터 10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곳곳에서 펼쳐지는 시민들의 축제
ⓒ 생활문화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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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스스로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축제

8일 금요일 전야제에서는 초청공연 및 권역별 생활문화동호회 콜라보 공연이 진행된다. 초청 공연 '까치와 도깨비'는 배우 정인기와 화가 이상선이 본업인 예술 장르가 아닌 기타를 연주하는 무대로 전문예술인의 생활문화 활동으로 의미가 있다. 또 다른 초청공연인 11명의 연극인들이 모인 '연극인밴드'도 이와 같다. 싱어송라이터 가수 조동희와 통기타 생활문화동호회 연합의 합동 공연은 새로운 문화생태계를 그려볼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 

권역별 생활문화동호회 콜라보 공연으로는 부평의 '기쁜딴때 통기타'와 '열우물 하모니카'가 연합하여 공연을 펼친다. 40~50대 주부들로 이루어진 '평창여성초아밴드'와 5인조로 이루어진 직장인 밴드 '쥬크박스'의 무대도 진행된다.

이 밖에도 기획 전시 및 체험, 생활문화 영상제, 청년 버스킹, 생활문화 연극제, 생활문화 방담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8일부터 10일까지 펼쳐진다. 전야제는 8일 20시, 개막식은 9일 14시, 폐막식은 10일 17시에 마로니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다.

덧붙이는 글 | 9월 8일 전 게시 부탁드립니다.



태그:#생활문화진흥원, #두근두근 내 안의 예술, #생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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