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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과 서울 사람들> 표지
 <근대문화유산과 서울 사람들> 표지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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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서울 사람들을 가장 괴롭힌 질병은 '치통'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내용은 최근 서울역사편찬원이 펴낸 <근대문화유산과 서울 사람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대한의원편>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서울의 하층민들은 치아질환(34.6%)에 가장 많이 시달렸고 이비인후질환(25.3%), 외과질환(17.3%), 소화기질환(14.0%) 순이었다.

당시 의료선교사들의 보고를 보면 원래 한국인들은 채식 중심의 전통적인 식사·조리법으로 치아 건강에 매우 유리했고, 특히 굵은 소금을 이용한 치아 관리가 살균효과와 치석방지에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치아질환 확산은이 개항 이후 설탕의 유입과 보급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경성제국대학편>에 따르면, 당시 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어와 수학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일본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모든 시험이 일본어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고희동 가옥편>을 보면, 근대 서울 화단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직업은 대한제국기 관료인 군수, 주사, 참서관 등이었다.

예를 들어 안중식은 양천군수, 김규진은 궁내부 참서관, 이도영은 관립공업전습소 기수, 고희동은 궁내부 주사이었으며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인 오세창도 관료였다고 나와있다. 이들보다 앞세대이며 조선시대 3대 화가로 불렸던 장승업도 1897년까지 도화서 화원이었다.

이 책은 이같은 사실이 한국근대화단의 관학파 중심 및 형식화 경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봤다.

또한 이 책은 1930년대 경성에도 수세식 변소가 많이 늘었지만 경성부 차원의 오수처리장이 없어 개별 건물에 정화조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서울에서 수세식 변소의 비율이 50% 이상이 된 것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1986년 이후였다고 나와있다.

<근대문화유산과 서울 사람들>은 약 300페이지 분량으로 서울시민청 서울책방에서 1만원에 구매할 수 있고, 서울시 각 도서관에는 무상 배포할 예정이다.



태그:#근대문화유산, #치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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