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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책방은 금요일 부산 어딘가에서 열립니다.
▲ 금요일엔 이내책방 이내책방은 금요일 부산 어딘가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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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님이 이후북스에서 인턴을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난 매일 그녀의 책을 팔고 있고 매일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부산과 서울의 거리로 매일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아쉬움이었으니까.

하지만 책방에 인턴이라니, 이후북스는 인턴을 둘 처지가 아니다. 최소 최저임금도 지불하지 못 할뿐더러 무언가 배울 만한 게 없으니까. 그녀도 가벼운 마음으로 이후북스 놀러 가는 거지, 라고 생각했길 바랐다. 다만 그녀는 까다로운 것과는 결이 다른, 어떤 현상을 관통하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서 책방의 바닥이 드러나는 것이 좀 걱정스러웠다. 책방의 바닥은 나의 바닥이기도 하니까.

 <3집 되고 싶은 노래>로 활동하며 전국의 작은 책방과 카페에서 공연을 한다.
▲ 길위의 음악가 이내 <3집 되고 싶은 노래>로 활동하며 전국의 작은 책방과 카페에서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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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멋대로 운영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책방이 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멋대로 살았지만 좀 잘 살고 싶었던 것처럼. 좋은 책을 읽으면 좀 더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책방지기가 되었나? 현저히 책을 읽지 못하고 있지만.

평소 힘 빼고 책방을 운영했는데, 그녀가 인턴으로 온다니 나도 모르게 어깨에, 머리카락에, 손끝과 발가락 사이사이에 힘이 들어갔다. 힘을 안 주던 곳까지 힘을 주니 평소보다 더 빨리 피로가 찾아왔다. 그랬던 것 같다. 아닐 수도 있다. 책방에 혼자 있을 땐 종종 낮잠을 잤는데 못 자서 일지도 모른다. 난 잠이 부족하면 정말 피곤해지는 타입이다.

 이후북스에서 열흘간 인턴으로 머물며 고양이 로르카와 노래를 하고 있다
▲ 이후북스 인턴 생활 중 이후북스에서 열흘간 인턴으로 머물며 고양이 로르카와 노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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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인턴에 대해서 말을 해야지. 그녀와 어떻게 친해지게 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정말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지?' 나도 매번 생각해본다. 그건 미바 때문이다. 미바는 <다시 봄 그리고 벤>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든 창작자이자 어디선가 우리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기에 어미새로 불린다.

미바가 그녀에게 이후북스를 소개해줬다. 누군가의 얘기를 흘려듣지 못하는 그녀는 이내 이후북스에 오게 되었고 난 책과 음반을 팔게 되었다. 그리고 1주년 때 공연을 하게 되었다. 난 그녀의 노래가 겨울에 덮는 이불처럼 감싸주는 느낌이 무척 좋았고, 그녀의 책이 봄볕처럼 따스해서 무척 좋았고, 그녀의 공연이 정말로 목욕탕 같아서 무척 좋았다. 이 과정을 구구절절 얘기하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나는 '그냥 다 좋았어요'라고 말한다.

진짜로, 인턴에 대해 말을 해야지.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먹는 인턴에 대해서. 나보다 밥을 더 많이 먹고 빨리 먹는 인턴. 하지만 밥도 많이 먹고 빨리 먹으면서 말도 많이 하는 인턴. 그 세 가지를 동시에 하는 인턴을 보니 부러워졌다. 난 말을 많이 하면 덜 먹게 될까 두려운 거지근성이 있는데 인턴을 보면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는 수요일에 지방 공연을 하고 왔다. 와서는 잔뜩 풀이 죽어있었다. 자신의 노래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들과 관객의 입장에 눈을 뜰 준비가 되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았던 공연을 생각하며, 잊을 만하면 한숨을 쉬었다. "맺지 못한 작은 점들이 떠오른다. 한 번에 하나씩, 한 숨에 한 걸음. 한 번에 하나씩, 두 숨에 두 걸음" 본인이 지은 노래 <만년필>의 가사처럼. 자신의 노래를 그런 식으로 들려주는 건 이미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턴은 요즘 매일 일기를 쓴다. 의자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들고 다리를 쭉 뻗어, 나 보란 듯이 긴 다리를 자랑하며. 또는 소파에 드러누워 내 에코백에 다리를 올리고서는 역시 핸드폰을 이용해서 뚝딱뚝딱 생각을 적어 내려간다. 일기를 다 쓰면 내게 말해준다. 난 인턴이 쓴 일기를 제일 먼저 읽고는 생각한다. '이런 사기 캐릭터!'

그녀는 내가 오른쪽 코닦지를 다 파고 이제 막 왼쪽 코닦지를 파려고 하는 그 짧은 순간에, 대단히 좋은 사유들을 문장으로 쏟아낸다(난 이 일기를 쓰는데 적어도 하루는 걸릴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좋은 글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쓰냐고 묻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한 번에 한 숨을 내뱉을 때 이미 한 문장씩 쓰고 있다는 걸 안다.

 이후북스에 마련된 이내책방. 친구들의 책을 팔고 있다.
▲ 이내책방 이후북스에 마련된 이내책방. 친구들의 책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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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내책방은 어디에서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이다.
▲ 금요일엔이내책방 이내책방은 어디에서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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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금요일엔이내책방>이라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책방을 금요일마다 꾸리고 있다. 주 거처인 부산에 있었고 최근엔 인턴 생활로 이후북스에 있었다. 그녀의 책과 친구들이 만든 책을 팔고 있다. 그녀가 책방이니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책방이다. 이후북스라는 공간에 묶여있는 나는 <금요일엔이내책방>이 참으로 부럽다.

공간 없이도 공간이 되고 책 없이도 책을 전달해주는 건 손에 무언가를 쥐어야만 가졌다는 느낌이 드는 마음 반대편에 있다. 일찍이 주먹을 펴야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와호장룡에서 리무바이 사부가 말하였는데 그 실천이 아니겠는가. 나도 주먹에 힘을 빼고 싶다. (주먹에 쥔 것도 없지만) 어쨌거나 계속, 인턴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다.

에세이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3집 <되고 싶은 노래> 이후북스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이내 에세이와 3집 앨범 에세이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3집 <되고 싶은 노래> 이후북스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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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계속 공연을 한다. 오늘(18일)도 공릉동에 있는 독립책방 지구불시착 사장님의 부름을 받고 공릉도서관으로 갔다. 길 위의 음악가, 어디서나 동네가수, 할머니 포크가수가 되길 바라며 최근엔 스스로가 책방이라고 말하는 그녀.

욕심이 없는 듯 많고, 많은 듯 없는, 이후북스 인턴이자 전속 가수가 '마음을 다해 대충' 노래를 부르고 왔으면 좋겠다. 요즘 우리는 뭐든 마음을 다해 대충 하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 철학이 실로 큰 영향을 미쳤다.

"저는 뭔가를 깊이 생각해서 쓰고, 그리고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면 '대충 한다'고 바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대충 한 게 더 나은 사람도 있답니다."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121p.

하지만 안자이 미즈마루는 현시점에서 최고의 완성도를 찾아버리는 사람이지, 시간이 없어서 대충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음 주문은 이거다.

"내가 외울 수 있는 유일한 주문, 지금 여기,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주문, 우리, 함께" - 이내 3집 <되고 싶은 노래> '지금, 여기' 중에서

나는 책방이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건 내가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다시 채우려 든다. 지금, 여기 빈 서가에 책을 꽂듯이. 그게 꼭 나는 아니겠지만 그게 꼭 내가 아니라는 법 또한 없으니까. 하지만 비우는 것이 먼저다. 언제나 빈 서가가 있어야 한다. 난 서가 한켠을 비워두는 사람이고 그게 이후북스의 유일한 영업비밀이다. 이건 인턴에게 하는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녀의 인턴 기간이 끝나간다. 벌써 그립구나. 그리운 건 마음을 다해 그리워해야지.

덧붙이는 글 | 길 위의 가수 이내님은 8월 9일부터 19일까지 열흘간 이후북스에서 인턴생활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가셨다. 하지만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그녀를 만날 수 있다.



태그:#이내책방, #이후북스, #인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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