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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년 만에 밟은 한국 땅의 교육은 너무나도 낯설었습니다. 혁신학교, 자유학기제, 전국 학업 성취도 평가 등등 큰 변화들이 보이면서도 대학을 가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거는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더랬지요. 교육과정도 그동안 여러 번 바뀌었다고요. 필자가 학교를 다녔던 9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경쟁은 여전하고 - 아니 더하다는 게 맞겠지요 - 학생들은 더 불행하게 보입니다.

미국에서 교사 생활을 한 지 3년 반, 이제는 제가 경험한 것을 나눠 써도 될 것 같습니다. 사실 3년 반이라고 하지만 여름학기는 평상시의 1학년을 빠르게 압축하여 지내는 것이므로 4번 반의 학년 주기를 보낸 셈이지요. 미국에서 3년 지나면 교사들은 어느 정도 가르치는 데 안정이 되고 5년이 되면 교직에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는 게 정리가 된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교사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생물교육과로 진학을 했으나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생물과 저는 거리가 멀더군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돌아보면 생물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암기 위주로 가르쳤던 대학 강의들이 저를 생물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것이더라고요.

어려서부터 하고 싶던 교사의 꿈을 접고 멀리 멀리 돌았습니다.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축제도 기획하고 세계무용축제를 통해 들어온 잘 알려진 쿠바의 현대 무용단과 만나 살사 워크숍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문화예술계와 금융, 과학 쪽에서 통번역도 했습니다. 저명한 살사 음악인들의 공연이 들어오면 마케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변화를 거쳐 나이 40이 다 되어갈 때 미국에서 수학교사가 되는 길을 걷게 되었지요. 어려서 집을 떠나 긴긴 여행을 거쳐 나이가 좀 들어 다시 집에 돌아왔다고 할까요.

그렇게 시작한 미국 고등학교에서의 수학 교사의 삶, 처음엔 다른 관습과 문화 차이로 좌충우돌하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신참이긴 더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기 전에 걸어온 길을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이 앞으로 비슷한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 같아 연재를 시작합니다.

먼저, 미국은 땅덩어리가 엄청 큰 나라지요. 교육은 연방정부가 아닌 주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답니다. 그래서 사실 미국에선 저기 시골 구석진 곳의 학교랑, 번화가의 도심에 있는 학교랑, 약간 교외로 나간 곳의 학교랑 다 수준이 달라요. 또 배우는 내용 또한 약간씩 다르고, 심지어 과목 이름도 다르기 때문에 주를 넘어서 전학을 가려면 상황이 복잡해지지요.

앞에서 배운 걸 모르면 다음 걸 배우기 힘든 수학의 특성상, 옆 카운티로 전학을 가도 그리 수월하지 않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커먼코어 과정이에요. 처음에 50개 주 중 45개 주가 채택했고, 텍사스, 알라스카, 미네소타, 버지니아, 네브라스카가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채택했다가 지금은 안 하고 있는 주들이 인디아나, 오클라호마, 사우스 캐롤라이나이고요.

제가 있는 버지니아는 커먼 코어를 채택하지 않은 주 중 하나입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버지니아가 가지고 있는 교육과정이 커먼코어와 말만 다를 뿐 비슷하기 때문에 버지니아의 교육과정을 유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버지니아는 8명의 대통령을 냈고 남북전쟁 때 남부의 중심지로서 Lee 장군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고요. "Virginia Way"란 말이 있을 정도지요.

이런 버지니아에서 교사가 되려고 방법을 찾아보니 몇 가지 있더라고요. 보통 교사가 되려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후 과정을 1년 정도 하면 교사 자격증이 나옵니다. 요즘은 대학 때 한꺼번에 할 수 있는 통합과정들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그 다음으로는 타주에서 교사를 하던 사람들이 교사 자격증을 변환하는 방법이 있고 -몇 가지 간단한 훈련과정을 추가로 거쳐야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는 대졸자 중 직업 경력이 5년 이상인 사람들이 거치게 되는 '커리어 스위처'가 있어요. 제가 한 건 바로 이 세 번째 과정이랍니다.

한국에서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한 경력과 미국에서 피아노 교사로 일한 경력을 합치니 5년이 넘어서 과정 입학 자격이 되더라고요. 입학을 위한 교사 시험은 프락시스 2 전공과목과 VCLA 라는, 프락시스 1에 해당하는 시험이 따로 있어요 (네, 버지니아엔 따로 있답니다!) 이걸 치고 시험 성적서를 제출하고 추천서를 받고 나면 과정에 입학할 수 있어요.

이 과정은 현재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4개월간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한 달에 한 번씩 하루 종일 모여서 교육받았어요. 온라인 교육을 받을 때는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책의 일부나 아티클 같은 것을 주고 에세이를 쓰도록 요구받았어요. 매주 3개의 에세이를 쓴 뒤에는 각 주제별로 세 학생의 에세이를 읽고 (총 9명의 에세이를 읽는 거예요) 답글을 달아주는 것을 해야 합니다.

매주 글을 읽고 분석해 자기의 의견을 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읽고 토론하는 것까지 학습 요구량은 많았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 공부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왜냐하면 그냥 '읽지' 않고 '글쓰기'를 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 오프라인 모임 때 설명을 해 주기도 하더라고요. 글쓰기를 하게 되면, 읽은 내용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고 여러가지를 종합한 뒤에 새로운 작업물인 에세이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고, 남의 의견을 읽고 토론을 함으로써 차후 교사 간의 협업에 도움이 될 거라고요.

그렇게 8주간 3과목, 그다음 8주간 또 3과목을 들은 뒤에 마지막엔 수료식이 있었어요. 수료식 전까지 60시간의 교생실습을 해야 하는데, 원하는 학교를 찾아서 교사의 지도를 받아 수업을 하고 수업을 동영상으로 녹화해 동기 중에 한 명과 바꾸어 보고 피드백을 줘야 했고요. 수료식 날에는 강사들 앞에서 모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요. 서너 명이 팀을 만들어 팀별로 주제를 정해 프로젝트 발표도 했고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오프라인 모임 때는 버지니아 전역의 교실들을 영상으로 연결했어요. 마치 뉴스에서 XX 기자 나오세요, 하면 영상이 넘어가는 것처럼요. 제가 했던 과정에서 강사샘들은 절대로 '강의'를 하지 않았어요.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고 활기 넘치는 활동으로 끌어나갔답니다. 생각해 보면 8시간이나 되는데 누군가 강의를 했다면 아마 다 잠들었을 거예요. 질문도 굉장히 많이 했고, 조별 토의도 많이 진행시켰고요. 삼각형의 합이 180도인 걸 구하는 걸 직접 삼각형 그리고 잘라가며 했고요(참고로 중고등 통합 과정이었어요). 교실의 네 구석에 붙어 있는 정보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네 장소에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수료식을 하고 나면, 1년간 유효한 'provisional license'가 나온답니다. 조건부 자격증인 거죠. 조건은 1년간 멘터의 지도와 함께 교사생활을 무사히 마치는 거예요. 제 멘터는 형식적으로 저를 한번 방문했을 뿐 조언을 준 것이 없어서 좀 황당하기는 했어요. 어쨌든 1년이 지나면 5년짜리 자격증이 나와요. 미국은 변호사고 의사고 교사고 전부 기한이 정해진 자격증이에요. 기한이 다하기 전에 조건에 맞는 교육을 받으면 갱신이 되는 거고요.

교사들은 보통 5년 유효하고요, professional development 라고 연수를 180 포인트를 만들어야 해요. 대학교 강의 3학점이 보통 90 포인트고요, 얼마 전까진 석사 학위가 없는 사람은 꼭 대학교 강의를 하나 들어야 했으나 이제는 그게 바뀌어서 그냥 포인트만 채우면 되게 되었답니다. 대부분 학기 직전이나 학기 중에 카운티나 학교에서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이 있어서 포인트 채우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아요. 무료로 하는 대학교 프로그램도 꽤 있고요. 버지니아엔 수학 교사들을 대상으로 거의 전액이 지원되는 석사 과정 프로그램도 있어요.

이렇게 자격증이 나오면 바로 취직이 되느냐 하면, 절대 아니지요. 미국 학교들은 한국의 기업들하고 채용과정이 비슷해요. 원하는 학교에 원서를 넣으면 교장이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옵니다. 네, 비서가 아니라 교장이 직접 전화가 오거나 이메일을 보내요. 면접을 본 뒤 카운티 교육청에 채용하고 싶다고 알리면 교육청에서 채용 과정을 마치지요.

저는 구체적으로 그리고 실생활과 연결시켜 중학교 수학을 가르치고 싶었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진학 준비를 하는 게 부담이 되었었고요. 그런데 중학교는 서너 군데 원서도 넣고 면접도 봤는데 채용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중학교를 포기를 하고 고등학교를 두 군데 넣었어요. 넣자마자 서로 다른 카운티에서 연이어 면접이 잡혔는데, 두 학교 모두 면접하고 나와서 운전하고 가는 길에 채용 제의 전화가 왔었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수학을 내용을 알고 가르칠 만한 사람을 찾는 게 미국에서는 어려운 편이라 하더라고요. 대신 중학교 수학은 쉬우니까 가르칠 사람을 찾기도 쉽더라고요. 또 학교 측에서도 가장 다루기 힘든 나이대의 아이들을 다뤄줄 교사를 찾는 걸 우선으로 하고 있고요. 생각보다 고등학교에서 진학 준비를 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업무는 상담 선생님들이 하시고 - 저희 학교는 상담 선생님이 4명, 교감이 4명이에요 - 저는 추천서 써 주는 게 전부였거든요. 추천서도 기존의 예를 찾아서 변형해서 덧붙이면 돼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고요.

하여, 운 좋게도 두 카운티의 학교를 비교하면서 골라갈 수 있었고, 제 수학 교사의 생활이 시작이 되었지요. 제가 했던 커리어 스위처와 일반 교사양성 과정을 비교해 보면, 대학에서의 과정은 시간이 있으니 좀 더 깊이 있고 다양하게 수학과 교수법을 다룹니다. 교생도 4개월 정도로 한 학기 정도를 하게 된답니다. 첫 두 주 정도는 적응기간을 거치고 나머지 기간 동안 일반 교사처럼 수업을 하기 때문에 교사 생활을 제대로 경험하는 거지요.

졸업하기 전이나 후로 프락시스 2 전공시험하고 VCLA 시험을 치게 되고요. VCLA 는 사실 수학이 없이 영어만을 측정하는 시험이라서 외국인에게는 부담스럽고 미국인에게는 유리한 시험이긴 해요. 두 시험 다 일정 점수만 넘으면 되는 시험이고요. 프락시스 2 수학 전공 시험은 사실 한국 고등학교 이과 수학에 통계만 좀 더 추가하면 되는 정도로 쉬운 시험이었어요.

제가 시험을 봤을 때 갑자기 집으로 날아온 상장(?) 같은 게 있었는데 과거 이 시험을 본 전체 응시자 중에서 상위 15%에 속한다는 문서였거든요. 그런데 이 시험은 수학교육을 졸업한 사람들조차도 여러 번 치거나 공부를 많이 하고 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유를 들으니 범위가 너무 넓어서 모든 걸 다 한꺼번에 시험을 치르려니 그랬다고요. 아마도 이런 지필고사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 문화 탓인 거 같더라고요.

참고로 시간 제한이 있어요. 아무리 내용을 알아도 시간 내에 못 풀면 점수를 못 내니까요. 대신 커리어 스위처를 통과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교사생활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있어요. 중도 하차하는 경우는 대부분 전공 지식이 부족하거나 개인적인 이유더라고요. 대신 남는 사람들은 대학 졸업생보다 인생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관계를 잘 다루고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학교 밖에서 5년 이상 개인 사업을 했든 회사에서 일했던 인간 관계의 실전 경험이 있어서겠지요. 또 다른 일을 한 다음에 교사를 선택했다는 것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

다음에는 한국 교실과 비교해서 미국 수학 교실을 좀 더 들여다보도록 할게요.


태그:#영어, #미국, #수학, #수학교사,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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