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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문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서울공항에 도착, 귀국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미국 방문을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후 서울공항에 도착, 귀국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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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국가 정상 간의 외교를 '총성 없는 전쟁'에 비교한다. 자국 이익을 놓고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이 맞붙는 협상 테이블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뿐 전쟁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두고도 '전쟁 같다'는 말을 한다. 치열한 삶의 일선에서 땀 흘리는 모든 사람이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같은 의미에서 기자들의 현장도 전쟁이다. 기자 한 명에게는 그가 속한 매체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그래서 재벌 회장의 출석 장면이나 유력 대선 후보의 유세 장면을 취재할 때면 거친 몸싸움도 벌어진다. 카메라와 펜으로 하는 전쟁이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이 삶의 일선에서 땀 흘리는 치열함과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오후(현지시각)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 D.C.를 떠나 서울로 향했다. 문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취재했던 80여 명의 기자단도 함께 전용기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외교 일전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얻었다. 기자들 역시 3박 5일의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방미 일정 내내 기자들은 긴장 속에 있었다. 13시간에 달하는 시차를 극복하고 낯선 취재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이라는 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 등으로 한반도 긴장 상황이 고조되는 시점에 두 정상이 만났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중대함이 주는 압박감도 상당했다.

정상회담을 마치고 출국을 앞둔 이날은 그래도 기자들이 긴장과 압박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순방 일정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바로 첫 단독정상회담을 앞두고 백악관 취재 과정에서 한국기자들이 과도한 경쟁으로 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스탠드 해프닝이 한국 기자들 탓? 풀기자단은 경쟁할 이유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오전(현지사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에서 취재를 위해 들어오던 한-미 취재진에 의해 바로 옆 램프가 넘어질 뻔 하자 취재진을 향해 "진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옆의 경호원이 램프를 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30일 오전(현지사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에서 취재를 위해 들어오던 한-미 취재진에 의해 바로 옆 램프가 넘어질 뻔 하자 취재진을 향해 "진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옆의 경호원이 램프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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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란은 백악관을 출입하는 스티브 허먼이라는 VOA(보이스오브아메리카) 기자의 트윗에서 시작됐다. VOA는 미 국무부 소속의 관영언론이다. 허먼 기자는 "한국 미디어 풀 기자들에 의해 백악관에 혼란이 일어났다"라며 "이례적으로 많은 한국 미디어를 포함해 풀 기자단은 평소보다 매우 많았다"라고 말했다.

이 글은 단독정상회담이 시작될 때 트럼프 대통령 옆 테이블 위에 있던 스탠드가 쓰러질 뻔한 영상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허먼 기자는 "한국 기자들이 뛰어들어가는 것을 보안요원이 제지했다"라며 "한국 미디어 기자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한국 기자들이 유난하게 행동해 트럼프 대통령 옆 스탠드가 넘어질 뻔했고, 혼란스러웠다는 주장이다.

이를 두고 한 미국 매체는 "트럼프가 혼란을 일으킨 한국 미디어에게 호통쳤다"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들 사이에 소란이 계속되자 수차례 "진정하라"고 말했으며, 문 대통령을 향해서는 "평소에는 매우 친절한 기자들이다. 신경쓰지 마라. 물론 테이블은 망가졌지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일부 언론들도 당시 상황을 허먼 기자의 설명을 빌려 보도했다.

그러나 이 같은 허먼 기자의 주장은 현장 상황을 일방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한국 기자들이 느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한국 기자단의 규모는 전혀 크지 않았다. 백악관 같이 제한된 공간에서는 보통 풀(POOL) 취재가 이뤄진다. 조건과 환경에 맞게 출입할 기자단을 정하고 그 취재 내용을 다른 매체도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날 백악관에는 3개 방송 매체 영상기자(촬영기자와 스태프까지 5명)와 사진 기자 4명, 취재기자 2명 등 총 11명이 들어갔다. 한국 풀기자단은 모든 매체와 공유하는 '공동 취재'를 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할 이유가 없다. 사전에 서로 어느 쪽에서 어떤 그림을 잡을 것인지 미리 상의도 한다. 역할을 나눠 취재에 들어가는 것이다.

또 취재기자들은 사진이나 영상기자들과 함께 서지 않는다. 해당 장면의 방송 화면을 확인해본 결과 한국의 취재기자는 사진, 영상 기자들과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취재 중이었다. 그러니 미국 기자들과 부딪쳤던 것은 (마이크나 조명을 드는) 방송 스태프를 포함해 영상과 사진 취재를 했던 인원 9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인원은 한국 기자단 의지로 구성한 것도 아니다. 청와대와 백악관 측이 사전에 논의해 적정 인원으로 구성한 것이다. 미 의회 지도부 간담회와 백악관에서 진행된 정상 상견례 및 만찬 등의 일정은 이렇게 양측이 사전 조율을 통해 취재 인원을 배치했다.

또 좋은 자리를 맡으려고 움직였던 것은 한국 기자들만이 아니다. 영상을 봐도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뛰어 들어오는 것은 미국 기자들이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인 건 미국 기자들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미국과 외신 기자들은 스태프를 포함해 20~30명으로 한국 기자들보다 인원이 훨씬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혼란이 단지 한국 기자들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언론을 향해서 했다는 말도 그 대상을 단정할 수 없다. 현장에는 한국 기자들보다 더 많은 미국과 외신 기자들이 있었고 이들의 경쟁도 치열했다. 문 대통령을 향해서 한 말이라고 해서 한국 언론을 지칭했다고 하는 건 무리다.

결론적으로 미국 기자들이 찍은 영상과 사진을 한국 미디어에 제공하지 않는 한 한국 기자들도 그들과 경쟁해 좋은 장면을 담을 수밖에 없다. 자기가 밀려 안 좋은 각도에 서게 됐을 때 그냥 '여기 서서 대충 찍자'라고 생각할 기자는 없다.

그 과정에서 다소 서로 밀치는 상황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스탠드가 넘어질 뻔한)해프닝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을 한국 기자단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건 현지 기자의 텃새에 불과하다.

하원 간담회 혼란도 미국 기자들의 약속 파기 때문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링컨 룸에서 열린 미 하원 지도부 간담회에서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원내대표들과 간담회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링컨 룸에서 열린 미 하원 지도부 간담회에서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원내대표들과 간담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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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서 일어난 일처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난 6월 29일 문 대통령의 미 상·하원 지도부 간담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관련기사: 문 대통령 미 의회 방문에 한-미 취재진 '자리싸움')

기본적으로 한국의 풀기자단은 미국 기자들보다 1~2시간 일찍 현장에서 대기한다. 국회나 백악관에 들어가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고, 대부분 처음 가보는 장소이기 때문에 미리 현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한국 풀기자단은 백악관과 의회에서 모두 신원 확인 절차 때문에 30분 이상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한국 기자들은 미국 기자들보다 먼저 하원 간담회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미 의회 쪽 관계자는 장소가 좁으니 순서대로 차근차근 들어가라고 요구했다. 한국 풀기자단은 그에 협조해 줄을 섰다.

이후 미국 기자들이 왔고, 들어가는 순서를 놓고 말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한국 기자단은 긴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문 대통령의 맞은 편 쪽으로, 미국 기자단은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의 맞은 편 쪽으로 나눠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회동 장소에 문이 열리자 미국 기자들은 서로 몸싸움을 벌이며 일제히 밀고 들어갔다. 그런 상황이 되면 사전 협의에 따르려고 했던 한국 풀기자단도 어쩔 수 없다. 진을 치고 있는 미국 기자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결국 큰 혼란이 일어났다. 폴 라이언 의장의 모두 발언이 끝나고 문 대통령 차례가 돼서도 계속 혼란이 이어졌다. 당시 취재를 갔던 기자들은 상당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날 현장에 풀기자단으로 들어갔던 한 사진기자는 "문이 열리는 순간 미국 기자들이 서 있던 줄을 무시하고 밀고 들어갔다"라며 "또 사전 약속했던 것과는 다르게 테이블 좌우를 다 차지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기자들은 예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폴 라이언 의장의 머리나 어께 위로 카메라를 올리지 않았는데, 미국 기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문 대통령 머리 위로 카메라를 들이밀더라. 우리 정상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상원 지도부 간담회에서는 취재가 극도로 제한됐다. 문 대통령과 지도부가 기념 촬영하듯 한 쪽 벽에 서있는 장면만 취재가 가능했다.

게다가 미 의회 측은 앞서 하원 지도부 간담회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이유로 미국 기자단과 한국 풀기자단을 따로 입장시켰다. 먼저 입장한 것은 미국 기자단이었다. 한국 풀기자단은 미국 기자단의 촬영이 끝난 후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단 14초 만에 종료됐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에 미국 측이 한국 기자단을 조금 더 배려했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의 텃세는 예상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걸 공론화시키는 방식에 있다.

허먼 기자가 "한국 미디어 기자들이 너무, 너무, 너무, 많았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한국 기자가 그렇게 많이 들어올 필요가 없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한국 기자들은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방문한 자국 정상을 취재하려고 간 것이다. 그 인원이 많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절대, 절대, 절대 많지도 않았다.

허먼 기자가 말한 일들은 어느 취재 현장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 기자들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정상 간의 회담을 취재하는 상대 국가 기자단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이례적이라면 이례적인 일이다. 


태그:#문재인, #백악관, #한국기자, #한미정상회담,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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