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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

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
 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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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시인이자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시를 처음 접하는 이탈리아 섬 청년이 바다를 앞에 두고 맺는 아름답고도 쓸쓸한 우정. 나에게 영화 <일 포스티노>는 이제 막 따뜻해지려고 하는 시기, 으슬으슬한 학교 건물의 어두컴컴함이며 동시에 따뜻한 햇살, 그 안에서 발견한 푸르른 바다다. 또 시·언어·말로 차마 닿지 못하는 세계에 닿기 위해 한 줄기 빛을 따라 애쓰던 청춘의 더듬거림이다.

1994년 개봉돼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되는 이 명작은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원전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과 다르게 칠레가 아닌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의 작은 허구의 섬 '칼라 디소토'를 배경으로 한다. 실존하던 칠레의 유명 시인과 허구인 이탈리아의 작은 섬이 어우러진 영화는 '미지를 향한 동경과 삶의 쓸쓸함'을 적절하게 표현해낸다.

또 하나, 순진한 시골 섬 청년을 연기한 마시모 트로이시가 영화를 촬영한 뒤 12시간도 안 돼서 심장병으로 사망했다는 것, 영화 촬영 내내 병으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였던 그가 촬영을 끝까지 마친 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마음을 더 먹먹하게 한다.

마시모 트로이시는 본래 연출과 연기를 같이 하던 배우 겸 감독으로, 당시 이탈리아 영화계의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일 포스티노> 또한 각본과 연출, 주연까지 맡았으나 병으로 여력이 채 안 돼 연출은 다른 이에게 맡겼다. 아무튼 파블로 네루다, 더 나아가 시를 향한 헌정인 이 아름다운 영화는 글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보는 편이 여러모로 낫겠다.

"시는 말로 설명하자면 진부해져버리고는 하네."

파블로 네루다의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 마리오는 어촌 마을 작은 섬, 수도도 없어 한 달에 한 번 물 탱크가 배로 들어오는 곳에서 어부인 아버지와 함께 산다.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이다. 이 청년이 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순전히 파블로 네루다 때문이다. 마리오는 마을의 작은 영화관에서 흑백 뉴스로 세계적인 시인이자 공산주의자인 파블로 네루다가 정치 상황 때문에 자신이 사는 섬으로 망명 온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변변찮은 직업이 없던 그는 마을 우체국에서 임시 우편배달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된다. 

삶을 담아놓은 시, 그들이 다시 만난 세계

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
 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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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 디 소토 섬에 편지와 우편물을 배달하는 일이야."
"다행이네요, 저도 그 근처에 살아요."
"수취인은 단 한 명이야."
"한 명이요?"


단 한 명의 수취인은 바로 파블로 네루다. 마리오는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편지를 그에게 전하게 된 것이다. 말로만 듣던 유명인사를 직접 만난다는 사실에 마리오는 전에 없이 들뜬다. 처음 네루다는 그를 한낱 우편 배달부로 대할 뿐이었다. 그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마리오는 네루다와 친해지고 싶고, 사람들에게 그와의 친분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순진한 청년이다. 그에게 파블로 네루다는 '위대한 민중 시인'이 아닌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특히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시인이다.

시가 뭐길래 여자들은 네루다를 그렇게 사랑하는 것일까? 마리오는 네루다와 시에 대한 궁금증으로 난생 처음 시집을,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사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서서히 시에 빠지게 된다. 언제나처럼 편지를 배달하러간 마리오. 편지를 전달하고 멀뚱히 서 있는 그를 보고 네루다가 말을 꺼낸다.

"왜 그렇게 기둥처럼 우두커니 서 있나."
"깊이 꽂힌 창처럼요?"
"아니 장기판 말처럼."
"도자기 인형보다 조용했죠."
"내 책 중에 '근본에 관한 노래' 보다 나은 것도 많은데 거기 나온 직유와 은유로만 날 시험해 보는 건 창피한 일 아닌가?"


"... 뭐라고 하셨죠?"
"은유"
"은...유?"
"은유란 뭔가를 말하기 위해 다른 것에 비유를 하는 거야."
"그것이 시를 쓸 때 사용하는 건가요?"
"그렇지."
"예를 들면요?"
"예를 들어 '하늘이 운다'고 하면 그게 무슨 뜻이지?"
"비가 오는 거죠."


세계적인 시인과 세계적인 시인을 통해 시를 처음 접하게 된 청년, 마치 세상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새로운 세계,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되는 그 놀라운 순간을 이 영화는 포착해낸다. 마리오는 아무 것도 모르기에 오히려 진실한 시의 심장을, 정수를 말한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었어요. '인간으로 사는 것에 지친다.' 저도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표현을 못 했거든요."

마리오가 말하는 이것, 마음속에 이미 있는데 표현하지 못하는 것. 결국 시, 문학이란 언어로는 닿지 못하고 담지 못할 마음과 세계에 닿기 위해, 그것을 포착해 내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문장을 찾아내는 작업이 아닌가.

"여기 섬에는 바다,
매 순간 얼마나 많은 바다가 솟아나는지.
그렇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다시 아니라고 한다.
푸르름과 포말과 질주 속에서 다시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며 가만히 있지 못한다.
'내 이름은 바다야' 하고 계속 말하며 바위에 들러붙지만 소용이 없네.
그러면 일곱 초록 호랑이 일곱마리 초록 개, 일곱 개 초록 바다의 일곱 개 초록 혀로 그 위를 훑고 입 맞추고 적시고 가슴을 두드리며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네."


태어나 매일 같이 보던 풍경, 그래서 마리오는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던 바다를 앞에 두고 네루다가 시를 읊는다. 매일 보던 풍경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다.

"어떠나?"
"이상해요, 시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말씀하실 때 이상한 느낌이 왔어요. 단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어요."
"바다처럼?"
"네, 바다처럼."
"그게 운율이야."
"뱃멀미가 났어요. 배가 단어들 사이에서 퉁퉁 튕겨지는 느낌이었어요."
"배가 단어들로 튕겨진다고? 방금 자네가 한 말이 뭔지 아나? 그게 은유야."
"설마... 아니에요."
"맞아."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이 다른 것의 은유란 말씀인가요?"


시를 처음 접하고 알아가는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신선함을 느끼고 이내 둘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마리오에게 첫 눈에 반한, 불에 덴 듯한 사랑이 찾아온다. 시를 알게 되어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어 시가 더욱 애달파졌다.

"저 사랑에 빠졌어요."
"잘됐군, 치료 약도 없어."
"아니요! 치료 약은 안 돼요. 낫고 싶지 않으니까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친구들에게 음성 편지를 녹음하는 네루다. 옆에 있던 마리오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이 섬의 아름다움을 말해보라고 하자 그는 녹음기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베아트리체 루소."

마리오가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이다. 그렇게 사랑을 하며 시인이 된 마리오는 "당신의 미소는 나비의 날개처럼 얼굴 위에 펼쳐진다"는 등의 말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당신의 미소는 장미, 서슬 퍼런 검, 솟아오르는 물줄기, 그대의 미소는 갑작스러운 은빛 파도.
당신이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좋아, 당신이 낯설어 보이니까."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모든 것을 남겨둔 그 섬

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
 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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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과 네루다의 주례로 결혼까지 하게 된 마리오.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지만 바로 그때 네루다가 떠난다. 칠레에서 체포 영장이 기각되며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 못내 아쉬운 마리오는 돌아가서도 편지를 보내달라고, 둘의 우정을 약속하지만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시인으로,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는 네루다는 이내 마리오를 잊은 듯하다.

여전히 네루다를 향한 사랑과 존경을 품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잊은 데 대한 애증을 느끼는 마리오. 그럼에도 위대한 시인이 자신과 친구라는 자랑스러움으로 삶을 살아가는 마리오. 몇 년간 시 한 편을 제대로 쓰지 못한 그지만 네루다를 향한 헌정시를 써 공산당원들의 궐기대회에서 읽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시를 읽는 영광스러운 환희의 순간 바로 직전에 목숨을 잃는다.

5년 후 다시 섬을 찾은 파블로 네루다, 하지만 이미 그의 친구 마리오는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편지 한 통 쓰지 못했다는 회한도 소용없다. 마리오는 자신의 친구 네루다를 향한 음성 녹음을 남겨 놓았다.

"당신이 떠나면서 나의 모든 좋은 것들을 가져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당신은 아름다운 것들을 이곳에 남겨 두었어요. 언젠가 이 섬의 아름다움을 친구들에게 소개하라고 했죠. 그 때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가 녹음한 것은 칼라 디 소토의 작은 파도, 큰 파도, 절벽의 바람, 덤불에 이는 바람,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고통의 성모 교회의 종소리와 신부님, 별 빛이 반짝이는 섬의 밤하늘, 그리고 그의 아내가 임신한 자신의 아들, 네루다의 이름을 딴 파블리토의 심장 소리였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향해 녹음기를 치켜드는 마리오의 모습은 영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언제까지나 빛날 것이다.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구절을.
예컨대 이렇게 쓴다. "밤은 산산이 부서지고 푸른 별들은 멀리서 떨고 있다."
밤바람은 공중에서 선회하며 노래한다.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때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이런 밤이면 나는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나는 연거푸 그녀와 키스했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때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다.
누가 그녀의 그 크고 조용한 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나한데 이제 그녀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에 잠겨.

-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파블로 네루다

토마토해산물파스타
 토마토해산물파스타
ⓒ 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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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밥상] 해산물 토마토 링귀니 (LINGUINE AI FRUTTI DI MARE)

이 영화에서 특정 음식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지나가는 장면으로 네루다가 직접 파스타 면을 반죽하는 듯한 모습, 그리고 마리오가 신선한 토마토와 마늘을 손질하는 모습이 나온다. 마리오가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이라고 표현한 그물로 어부들은 바다에서 해산물을 잡는다. 그래서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 실제로 프루디 디 마레, 그러니까 해산물 파스타는 나폴리에서 즐겨 먹는 파스타 중 하나이다.

사실 이 영화는 나에게 어두운 강의실의 김밥 냄새로 기억된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교양 과목에서 이 영화를 틀어주었는데 강의실이라면 으레 그렇듯, 배를 채우려 김밥을 몰래 먹는 학생이 있었다. 그 후부터 이 푸르른 영화를 어두컴컴한 강의실과 김밥 냄새로 기억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 아름다운 영화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제는 나는 만들 수 있으니, 서글픈 그물로 잡아 올린 해산물 파스타를 만들 수 있으니, 만든다.

재료분량: 3~4인분
재료: 토마토소스 양파 1/2개, 마늘 2쪽, 앤쵸비 2마리, 홀토마토 1캔 (400g), 토마토페이스트 ⅔큰술, 생바질잎 3~4장, 레드페퍼플레이크·소금·후춧가루·올리브유 적당량씩
파스타 링귀니면 3~4인분 분량, 바지락이나 모시조개 혹은 홍합 400g, 새우 6마리, 오징어 1마리, 마늘 1쪽, 드라이화이트와인 1/2컵, 생바질·이탈리안파슬리·소금·후춧가루·올리브유 적당량씩

1. 조개류는 해감하고 새우와 오징어는 깨끗이 헹궈 손질한다. 절인 앤쵸비 필레는 잘게 자른다. 양파는 잘게 썰고 마늘은 곱게 다진다.
2. 팬에 올리브유와 다진양파, 마늘 다진 것을 넣고 약한 불에서 향이 날 때 까지 볶는다. 향이 올라오면 앤쵸비필레와 토마토페이스트를 넣고 볶다가 레드페퍼플레이크, 토마토홀, 생바질 다진 것을 약간 넣고 소금, 후춧가루로 간해 15분간 뭉근히 끓여 소스를 만든다.

3. 끓는 물에 소금을 넉넉히 넣고 링귀니를 알단테로 삶는다.
4. 팬에 올리브유, 마늘 다진 것을 넣고 약한 불에서 향이 날 때까지 볶다가 해감한 조개와 화이트와인을 붓고 뚜껑을 덮어 5분간 끓인다. 뚜껑을 열어 1분가량 더 끓인 뒤 토마토소스를 붓고 새우와 오징어를 넣어 끓인다. 소스가 되직한 농도가 나고 해산물이 익으면 익힌 링귀니를 넣어 재빨리 뒤적여 섞고 불을 끈다. 너무 되직하면 파스타 삶은 물을 한두 스푼 더해도 좋다. 생 바질과 이탈리안 파슬리를 뜯어 흩뿌려 접시에 담아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윤희는 음식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푸드라이터.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에세이부터 영화, 레시피 북까지 모든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다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실행.



태그:#일 포스티노, #파블로 네루다, #네루다, #이탈리아영화, #해산물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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