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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핵을 전공한 젊은 한국인 과학자가 한국으로 귀국해 핵을 개발하려하자 한국이 핵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암살했다는 취지의 풍문을 들은 게 어렴풋 기억납니다. 그 과학자 이름이 이휘소였다는 것도 아름아름 떠오릅니다. 그가 암살만 당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도 이미 핵보유국가가 돼있을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하는 풍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싸한 풍문으로 돌았던 이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휘소라는 젊은 과학자가 있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핵물리학자가 아니라 소립자 물리학자였습니다. 소립자 물리학은 원자핵보다 작은 우주의 기본 입자들 간의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서 핵무기와는 거리가 먼 학문입니다.

그의 죽음 또한 풍문처럼 암살을 당한 게 아니라 자신이 차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로 명운을 달리한 불행한 죽음일 뿐입니다. 그가 아주 유능한 물리학자였다는 사실 외에는 허구로 가득한 풍문일 뿐입니다.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이휘소 평전> / 지은이 강주상 / 펴낸곳 ㈜사이언스북스 / 2017년 6월 12일 / 값 17,500원
 <이휘소 평전> / 지은이 강주상 / 펴낸곳 ㈜사이언스북스 / 2017년 6월 12일 / 값 17,500원
ⓒ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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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 평전>(지은이 강주상, 펴낸곳 ㈜사이언스북스)은 온갖 소문과 억측으로 얽힌 이휘소 박사의 삶과 죽음에 얽혀있는 실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1935년 1월, 서울 원효로에서 태어난 이휘소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 후 미국 오하이주 마이애미대학으로 편입합니다. 이어 피츠버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합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대학 물리학과 교수, 고등연구원 연구원 등으로 재직하며 연구에 종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지독스러울 만큼 연구에 정진하며 괄목할 만한 존재로 두각, 인용되고 또 인용되는 연구결과들을 발표합니다.

마흔두 살이 되던 1977년 6월, 가족과 함께 콜로라도로에서 열리는 페르미 연구소 연구 심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키와니 부근에서 교통사고로 절명합니다.

졸지에 절명하기까지, 이휘소가 살아 간 삶은 공부이고 연구입니다. 평전을 통해 읽을 수 있는 그의 일생은 일구월심 공부이고 자나 깨나 연구입니다

'연구원들 사이에서 이휘소는 '팬티가 썩은 사람'으로 통했다. 저녁 식사나 술자리 같은 사적 모임에 일절 참석하지 않고 밤낮없이 연구실에만 붙어 있어 생긴 별명이었다. 정말 팬티도 갈아입을 시간이 없을 만큼 이 무렵의 이휘소는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했다.' -<이휘소 평전> 137쪽-

이휘소가 공부를 잘했고, 열심히 연구했고, 소립자 물리학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에는 십분 수긍됩니다. 하지만 그의 삶이 과연 잘 산 것인지, 성공적인 삶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이휘소의 삶, 과연 성공적인 삶이었을까?

당신 자신에 대한 평가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휘소가 남긴 유산은 미국시민 벤자민 리로서 남긴 연구실적일뿐 그의 삶에서 읽을 수 있는 궤적은 별다른 감흥을 줄 만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고국에 대한 애국심이 절절했던 것도 아니고, 같이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한국인들과의 관계가 애틋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인으로서 위상을 드높일 대외적 활동에 적극적인 삶을 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이억만 리 타국, 아주 오랜만에 일부러 찾아온 친구에게, 이휘소는 한국말도 아닌 영어로 'Hi' 딱 한마디 인사말만 건넬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하니까요.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면서도 "Business first"를 외치며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가지 않고 용산 미군기지 옆 대사관 숙소로 향했다는 이휘소. 공적 업무를 마치고서야 어머니를 찾아간 그의 태도는 언뜻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삶 같지만 정서적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연구에 전념하고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이휘소의 삶은 분명 존경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휘소가 미완성으로 마친 인생에서는 별다른 감동이나 감흥을 받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어쩌면 풍문으로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이휘소가 훨씬 더 인간적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러함에도 이휘소의 삶과 죽음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 잡고, 이휘소가 살아간 삶의 궤적이 담긴 이 책을 통해 그가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가 분명했음은 또렷이 알게 될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휘소 평전> / 지은이 강주상 / 펴낸곳 ㈜사이언스북스 / 2017년 6월 12일 / 값 17,500원



이휘소 평전 -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강주상 지음, 사이언스북스(2017)


태그:#이휘소 평전, #강주상,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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