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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학교바깥의 경계를 허물고 싶은 학부모들이 모여 함께 실천하는 배움의 공간. 티칭이 아닌 러닝을 하며, 공동체를 통해 서로의 배움을 이끌어간다.
▲ 오로빌 안의 독특한 학교 The Learning Community 학교와 학교바깥의 경계를 허물고 싶은 학부모들이 모여 함께 실천하는 배움의 공간. 티칭이 아닌 러닝을 하며, 공동체를 통해 서로의 배움을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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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향해 있는 마을교육공동체

혁신학교의 다음 단계로 마을교육공동체를 많이 이야기한다. 2013년부터 서울, 경기도, 강원도 등 전국 여러 교육청과 지자체에서 '마을결합형 학교'(서울교육청) 혹은 '꿈의 학교'(경기도교육청), '온마을학교'(강원도교육청)가 진행되고 있다.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학교와 마을이 연계되어 새로운 교육공동체를 만들자는 정책이다. 한국외국어대 김용련 교수는 마을교육공동체의 실천적 의미를 '마을이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것' '마을이 아이들의 배움터가 되는 것', 그리고 '아이들을 마을의 주인(시민)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마을교육공동체를 활발히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지금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사회와 학교가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마을이 함께 협력하지 않고서는 학교의 교육만으로 한 아이의 온전한 성장을 뒷받침하기 힘들다. 이렇게 보면 마을교육공동체는 근대화 이전으로 돌아가 마을을 유사 대가족처럼 만들자는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마을교육공동체의 방향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향해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2016 세계경제포럼에서는 '21세기 기술'이라는 이름 아래 미래사회에 필요한 16가지 핵심기술을 제안했다. 단순반복적인 육체노동 관련 기술, 단순 지식에 기반한 인지적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은 대폭 줄어들거라는 전망이다. 이미 틀에 얽매이지 않는 분석적 기술과 대인관계 기술을 요구하는 직업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제포럼은 문해와 수해 능력과 같은 '기초 기술' 이외에도 협력·창의성·문제해결력 같은 '역량', 일관성·호기심·주도성과 같은 '인성'을 중요한 기술로 꼽았다.

이러한 역량과 인성은 교실 안에서만 터득될 수는 없다. 학교 바깥의 다양한 실제 삶과 마주하고 스스로의 경험으로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사회에 대비한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아이들 스스로 삶을 개척해갈 수 있는 힘을 키우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이는 경제인들만 얘기하는 내용은 아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에서 발행하는 <서울교육>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2017 봄호에 실린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서울혁신미래교육과정>의 그림을 보자. 새로운 미래교육의 핵심은 <협력과 참여 중심의 수업>에 있다. 벨기에의 '학습 및 재설계를 위한 연구실(learning and redesign lab)이 소개하는 미래학교의 모습 역시 유사하다. 2030년의 학교를 '학습공원(learning park)'이나 '학습마을(learning village)'로 소개하고 있다. 연령에 관계없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서로로부터' 배우는 장소가 될 것이라 한다. 따라서 미래학교의 운영 방식은 "매우 민주적이며 협동조합과 흡사할 것"이라고 이 연구는 얘기한다. 바로 마을교육공동체이다. 

50년 전부터 기획된 마을교육공동체, 오로빌

이러한 마을교육공동체는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이미 50년 전부터 마을교육공동체를 위해 기획된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도의 오로빌이다. 오로빌은 1968년에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 폰디체리 인근에 만들어진 계획적인 생태공동체이다. 전 세계의 남녀가 모든 종교와 정치, 국적을 초월하여 평화와 진보적인 조화 속에서 살 수 있는 국제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유네스코 총회에서도 1966, 68, 70년, 83년 4차례에 거쳐서 만장일치로 오로빌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50년이 지난 현재 45개국에서 온 2500명이 모여 살고 있다.

오로빌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명상을 바탕으로한 영성공동체로서 다가올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자연과 하나가 된 생태공동체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오로빌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마을교육공동체이다. 오로빌의 마을교육공동체적인 정체성은 오로빌의 헌장에도 나온다. "끊임없는 교육의장, 지속적인 발전의 장, 영원히 늙지않는 젊음의 장"이라고 표현된다. 오로빌 전체가 커다란 학교인 셈이다.

다만 이 학교는 현재의 형식적인 학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 인류가 끊임없이 함께 배워가고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속성이면서 지향해야 하는 부분을 뜻한다. 그렇기에 오로빌은 학교를 넘나드는 다양한 실험이 지역 안에서 펼쳐졌다. 초기에는 마을 자체가 커다란 학교가 되니 별도의 학교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우리는 학교를 원해요"라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또한 오로빌에 살고 있다고 해서 오로빌의 사상과 삶의 태도를 온전히 습득하고 이해한 것은 아니였다. 그렇게 배움의 의식적인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금 얘기되었다.

이렇게 해서 1970년에 오로빌 최초의 학교가 만들어졌다. 이름이 독특한데 'Last school'이다. 학교로서는 이것으로는 끝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겼다고 한다. 현재도 이 Last school에서는 어떤 시험이나 자격증을 준비하지 않는다. 선생님들은 도와주는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학생들이 아무런 욕구가 없으면 어떻게 할까? Last School에서 역사, 산스크리트어 등을 가르치며 행정도 담당하고 있는 장(Jean-Yves)은 "우리는 학생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창의적인 환경을 조성할 뿐이다"라고 얘기한다. 욕구를 자극하는 창의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예술적인 부분들이 많이 가미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직업적인 예술가를 기르는 학교는 아니다. 장은 "학생들한테 진보할 수 있는 자유(Free progress)를 준다"고 한다.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진보의 욕구가 사람들에게 있다는 믿음을 갖고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자기 진화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학생들은 스스로 학습 계획표를 짠다. 교사는 필요하지만 회피하는 과목이 있다면 그에 대한 상담을 하기도 한다. 교사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에 맞는 진보적 학습 단계를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이처럼 last school은 모든 학생들을 하나의 시스템에 맞추려 하기 보다는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고 성장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자처한다.

오로빌에 와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단어는 "진보"와 "통합"이다. 진보란 우리 사회에서 상징되는 정치적인 스펙트럼으로서의 좁은 의미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욕구에 따라 더욱 성장하는 단계를 뜻한다. 그렇기에 학생들에게 규범적으로 어떠한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 스스로가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노출 자체를 통해 자극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기에 마을이 중요한 교육적 자극 역할을 한다. 성장은 한 개인의 안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 내 주변의 환경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통합이 강조되는 이유이다. 개인 안에서는 마음, 삶의 에너지, 신체의 통합이 강조되었고, 사회적으로는 삶, 경제, 사회 이 모든 것들의 통합이 강조된다.

"진보란 그동안 해왔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는 것에 대해 오로빌은 큰 의미를 둔다.
▲ 개인과 사회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오로빌의 '진보' "진보란 그동안 해왔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는 것에 대해 오로빌은 큰 의미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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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 학부모 역시 배움의 일원

Last school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가는 중등반에 해당하는 학교이다. 그렇다면 아직 돌봄과 체험의 영역이 많이 필요한 초등은 어떠할까? 그에 대한 예로TLC(The Learning Community)를 들 수 있다. TLC는 말대로 배움의 공동체이다. 티칭이 아닌 서로가 함께 배우는 공동체로, 배움은 학교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학교와 학교바깥의 경계를 허물고 싶은 학부모들이 모여 함께 배움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숲에 가서 장난감을 함께 만들고 삶을 체험으로서 받아들인다. 학부모들 역시 학생들과 함께 놀고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더 수월하게 도와준다.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학교에 맡기고 내버려두는 곳이 아니고, 학교가 학생들을 모두 돌본다. 그리고 학부모, 지역주민 역시 자연스레 함께 배우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또한 교육만으로 독립된 공동체가 아니라 함께 생활하며 배워가는 생활교육공동체라는 점도 중요하다. 학생들은 함께 청소하고, 간식 준비도 함께한다. 수업의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각자가 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들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학부모 중 한 명이 영어를 가르치는데, 빵과 쿠키를 구우면서 수업을 한다. 영어를 가르치는 게 주된 것이기라기 보다 빵과 쿠기를 만들고 파는 프로젝트가 중심이다. 영어는 이러한 프로젝트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또한 스스로 배워 가는 시간이 많다.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한 시간의 커뮤니티 미팅 시간을 갖는다. 배움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참여해서 의견을 제시한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모두 하나의 투표권으로 한다. 물론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학교의 주요사항을 결정하고 공유하면서 엉뚱한 소리도 나오고 아이들끼리 짜증도 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 스스로 준비를 해오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결정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어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TLC와 Last school이 오로빌 학교의 모든 모습은 아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학습위주의 학교도 있다. 또 청소년 시기만이 아닌 그 이후의 학교도 있다. 'After school'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얘기하는 방과후 학교가 아니다. 학교 시스템을 끝내고 나서 새롭게 교육을 시작하는 학교이다. 또한 주민들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교육과 성장의 경험을 갖는다. 여러 학교가 공존하기에 오로빌 안의 다양한 교육철학과 시스템을 한 번에 다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안팎을 둘러싼 다양한 고민들을 할 수 있고 실천해볼 수 있는 장을 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학교와 교육에 대해 제한된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다. 학교란 너무나 자연스럽고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을 규정하는 거대한 틀이기에 학교 바깥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또 학교라고 했을때 떠오르게 되는 교실과 선생님, 학생들 제한된 상상력이 있다. 오로빌이 세워진 시기가 68년이기에 자연스레 교육혁명으로서 68혁명이 떠오른다. 따라서 교육과 학교를 둘러싼 다양한 상상력과 가능성들이 이 오로빌의 정신에 녹아들어간 게 아닐까 싶다.

사실상 오로빌 자체가 인류를 위한 큰 학교이다. 오로빌의 보다 다양한 마을교육공동체로서의 모습은 6월 15일 19시, 가톨릭 청년회관에서 독일인 오로빌리언 마이클과 앞서 소개한 오로빌 학교 The Learning Community 서진희 퍼실리테이터와 함께 얘기 나누려고 한다.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정책실행연구회와 에듀니티가 주최, 주관한 자리이다.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함께 나누려는 이들이 함께 모여 50년 된 마을교육공동체 오로빌과 2017년 한국의 마을교육공동체의 연계점을 살펴보는 자리이다.


태그:#오로빌, #배움공동체, #TLC, #라스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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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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