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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등장인물이 적혀 있지 않은 연극 대본을 보신 적이 있나요? 이런 대본을 읽는다면 답답할 겁니다. 이번 대선 방송토론을 시청하는 청각장애인(농인)들의 심정이 이와 같습니다."

진행되는 대선 방송토론을 시청한 어느 농인의 호소이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오고, 대선 방송토론도 이제 한 차례 남아 있다. 방영되는 대선 방송토론에서 수화언어 통역(이하 수어통역)을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농인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어통역의 창이 작아 많은 농인들이 오래 집중하여 방송토론을 시청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한 사회자와 후보자 6명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수어통역사가 통역하다보니 수어통역을 보는 농인들은 누가 하는 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방송토론에서 "A" 후보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다음날 언론을 통하여 그 말은 "A"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당황한 이도 있었다 한다.

참정권, 장애인도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지난달 28일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회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방송토론에서 수화통역사 추가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 농인 유권자들의 외침 지난달 28일 장애인정보문화누리 회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방송토론에서 수화통역사 추가 배치를 요구하고 있다.
ⓒ 김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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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창이 작은 문제는 농인들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2012년 수어통역 화면 대비 30%를 확대하라는 선고를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방송사들이 잘 지키지 않고 있다.

수어통역사 한 사람이 다수의 말을 통역하는 문제도 공론화가 되지 못하다 최근 장애인 인권단체인 '장애인정보문화누리(아래 장애누리)'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장애누리는 방송토론을 송출하는 방송사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하고, 선거관리위원회와 협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만들어진 '한국수화언어법'에는 농인들이 수어로 충분히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한 수준으로 선거정보 등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의 이런 권리는 우리의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과 맞닿아 있다.

방송사나 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방송토론에서 3인의 수어통역사를 동시에 배치해달라는 요구에 대하여 기술적인 문제 등을 거론하며 난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가 중심이 아니고 예산 추가 투입과 인력 배치의 문제가 중심이며, 무엇보다 인식의 문제가 크다. 즉, 수어통역을 추가 배치하라는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농인에 대한 간접차별이며, 농인들의 참정권을 가로막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 토론에는 3명의 수어통역사 배치해야

다수가 출연하는 선거방송 토론에서 수화통역인을 이렇게 배치해야 토론내용만이 아니라 누가 이야기하는지 정확이 구별할 수 있다. 이 영상은 예시 영상으로 유투브(https://www.youtube.com/watch?v=y2_ifbocFmY&feature=share)를 통하여 볼 수 있다.
▲ 선거 방송에서 수화통역 예시 다수가 출연하는 선거방송 토론에서 수화통역인을 이렇게 배치해야 토론내용만이 아니라 누가 이야기하는지 정확이 구별할 수 있다. 이 영상은 예시 영상으로 유투브(https://www.youtube.com/watch?v=y2_ifbocFmY&feature=share)를 통하여 볼 수 있다.
ⓒ 김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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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치러진 미 대통령 선거토론에서 독특한 장면이 목격되었다. 비영리 공영기구인 D-PAN(Deaf Professional Arts Network)에서 대선 방송토론을 방영하면서 왼쪽 화면에 3명의 수어통역사를 배치하였다. 미국의 농인들이 토론 사회자와 힐러리 후보, 트럼프 후보의 말을 구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D-PAN이 한국의 지상파방송은 아니지만 다수가 출연하는 방송토론 내용을 농인들에게 올바로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참정권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리고 참정권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만이 아니라 후보자나 공약에 대한 정보 등을 정확히 알 수 있어야 올바른 행사가 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거 방송통론에서 지금과 같은 수어통역은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에 출연한 사람에 수와 같이 수어통역인이 배치되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수어통역 창의 크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대선 방송토론이 5월 2일로 끝난다. 특히 이번 토론 주제는 사회분야로 장애인 등 소외계층과 관련한 후보들의 공약 검증도 예상된다. 이번 토론에 장애인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따라서 마지막 방송토론에는 시범적으로 한 화면에 수어통역사 3인을 동시에 배치하여 최소한 토론자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런 논란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선거 방송토론에서 수어통역 제공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공직선거법 82조의2 등 선거 방송 전반에 걸쳐 수어통역 제공이 임의 규정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도 의무 규정으로 개정하여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의 참정권이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철환씨는 장애인정보누리 실장이며, 수어통역사입니다.



태그:#대선 방송토론, #수화통역,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참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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