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류현진 ⓒ 로스엔젤레스 다저스


시즌 첫 승에 5번째 도전하고 있는 류현진의 이번 상대는 과거 2000년대 후반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맹주로서 이름을 떨쳤으나 현재는 이를 뒤로하고 리빌딩을 통해 전력을 가다듬고 있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였다.

어제 필리스를 맞아 3점차로 끌려가던 경기를 9회말에 대거 4점을 뽑아낸 바 있어 타선의 분위기도 고조된 상태였다. 여기에 등판이 거듭될수록 좋아지는 류현진의 공도 시즌 첫 승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다저스 선발투수진은 유리아스의 합류로 인해 새로운 경쟁이 발생했다. 그간 등판에서 모두 패전을 떠안는등 보이는 성적 자체는 좋지 않았던 류현진은 그 경쟁에서 자칫 밀릴 수도 있었기에, 이번 등판은 매우 중요했다.

▶ 아쉬운 수비로 1회에 다시 실점. 그러나 이내 이닝을 삭제시켜나간 류현진.

 세자르 에르난데스의 첫타석. 2구째를 공략해 3루타로 만들었다.

세자르 에르난데스의 첫타석. 2구째를 공략해 3루타로 만들었다. ⓒ 정강민


류현진은 아쉽게도 1회 또다시 실점을 허용했다. 그 과정도 좋지는 않았다. 상대 리드오프였던 세자르 에르난데스를 맞아 2구째 스트라이크존 높은 코스에 던진 공이 우익수 푸이그의 글러브를 맞고 뒤로 빠졌다. 푸이그의 1차처리도, 2차처리마저도 아쉬웠고, 에르난데스는 3루에 들어갔다. 이후 오늘 라인업에서 오늘 경기 전에 유일하게 류현진의 공을 봤던 2번타자 프레디 갈비스(상대 3타수 무안타)가 81마일짜리 체인지업을 받아쳐 적시타를 기록했고 에르난데스가 홈으로 들어왔다. 바로 다음타자인 대니얼 나바에게 볼넷까지 주면서 세 타자 연속 출루로 시작하자마자 큰 위기에 몰리게 됐다.

그러나 그 다음타자인 마이켈 프랑코에게서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뺏어내 한숨을 돌린 것이 주효했다. 이 삼진의 영향으로, 분위기를 끊은 류현진은 기세를 몰아 에런 알테어와 마이클 선더스마저도 우익수 플라이와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1회 시작부터 3연속 출루를 허용해 큰 위기에 몰렸지만 특유의 흔들리지 않는 피칭으로 대량실점을 막았다.

이후 2회는 땅볼 2개와 삼진으로 잘 마무리한 류현진. 볼넷으로 주루플레이를 하고 맞았던 3회에는 첫 타석 3루타를 허용했던 에르난데스에게 커브를 던져 삼진을 잡았다. 갈비스마저 좌익수 플라이를 유도한 류현진. 그러나 3번타자 대니얼 나바에게 또다시 볼넷을 내줬다. 첫 타석에 이어 또 볼넷. 하지만 직전타석 삼진을 잡아냈던 마이켈 프랑코에게 또 같은 결과를 도출해내며 3회에도 순항했다. 류현진은 기세를 이어 삼진을 추가로 2개 더 뺏어내며 4회도 삭제해버렸다.

5회는 야수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선두타자인 8번 루프에게 그라운드 룰 더블을 허용해 무사 2루 상황에 놓인 류현진. 투수 피베타에게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높은 공을 던졌고, 이 사이 스킵 동작이 컸던 2루주자를 그랜달이 정확한 송구로 유격수 키케 에르난데스에게 전달했고, 루프는 미처 돌아오지 못하고 횡사했다. 약속된 플레이로 위기를 벗어난 류현진은 삼진과 땅볼로 5회를 마저 정리했다. 6회에 올라와서는 갈비스와 긴 승부 끝에 볼넷을 허용했지만, 오늘 경기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3번타자 대니얼 나바를 삼진처리하고 마운드를 넘겼다. 서지오 로모가 구원등판해 아웃카운트 2개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하며 5.1이닝 9K 3피안타 1실점 93구의 기록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다.

이후 아빌란-바에즈가 각자 주자는 내보냈지만 7회와 8회를 무실점으로 막았고, 9회는 점수차가 3점이 넘어 켄리 잰슨 대신 그랜트 데이튼이 등판했다. 데이튼은 2사 후에 주자를 내보냈고, 대수비로 경기에 출전했던 오두벨 에레라에게 홈런을 맞고 말았다. 결국 세이브 조건이 성립되어 켄리 잰슨이 마운드를 이어받았다. 잰슨은 마지막 타자였던 세자르 에르난데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경기를 마쳤다. 류현진이 973일만에 승리투수가 되는 순간이었다.

▶ 닉 피베타에게 신고식을 안겨준 다저스 타선

오늘 상대선발투수는 신인 닉 피베타. 오늘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루는 필라델피아의 우완 선발투수였다. 류현진의 복귀전이었던 콜로라도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룬 콜로라도의 카일 프리랜드에게 제대로 들러리를 서주며 체면을 구겼던 다저스 타선은 오늘은 달랐다. 매회 피베타를 어려움에 몰아넣었다. 1회 톨스의 2루타를 시작으로 벨린저-터너의 연속안타로 동점을 만든 다저스 타선은 이후 2회에도 크리스 테일러의 솔로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고, 키케 에르난데스의 2루타와 류현진이 볼넷을 고르는 등 이 신인투수에게 편안함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피베타에게 빅이닝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1, 2회에 모두 한 점씩 뽑긴 했지만, 찬스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후속타 불발로 빅이닝을 만들지 못한 점은 류현진의 어깨를 확실히 가볍게 해주지는 못했었다. 3회 2, 3루 찬스에서는 결국 한점도 내지 못했고, 4회 공격에서는 류현진이 안타를 치고 나갔음에도 톨스의 리버스 더블플레이로 허무하게 공격이 끝나버렸다. 5회에는 저스틴 터너가 1사에 2루타를 치고 나갔지만 곤잘레스와 푸이그는 이를 무위로 돌려버렸다.

다만, 류현진이 내려간 후 앤드류 톨스가 바뀐투수 진마 고메즈를 상대로 시즌 5호 홈런으로 단숨에 3점을 벌려놓은 것이 위안. 내색은 안했겠지만, 류현진은 투구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피칭을 했을 것이다. 류현진 입장에서는 자신이 등판한 시점에서는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어도, 확실히 리드를 가져오는 점수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 구속은 떨어졌으나 변화구 위주의 피칭으로 젊은 필리스 타선을 잠재운 류현진

류현진은 오늘 구속이 지난 경기보다는 떨어졌다. 최고 구속은 92마일이었지만, 대체로 패스트볼 구속이 주로 87-90마일을 오갔다. 커리어를 돌이켜봐도 홈/원정 관계없이 야간 경기에 비해 낮경기에 스피드도 떨어지고 고전했던 류현진은, 올시즌에도 콜로라도 개막전, 컵스와의 경기에서 모두 5이닝 이전에 강판당했던 바 있다.(커리어 낮경기 19선발 3.99/밤경기 42선발 3.22) 좋은 흐름이긴 했지만, 사실 뚜껑이 열리고 나서 패스트볼 구속이 샌프란시스코 전 이전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때와 류현진은 달라져 있었다. 패스트볼의 활용도를 줄이면서 체인지업 위주의 패턴으로 바꿨고, 하이패스트볼 레퍼토리로 삼진과 피홈런을 교환했던 류현진은 삼진은 유지하며 장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푸이그의 실책성 플레이에 의한 3루타와 루프에게 내준 2루타로 장타는 줬지만 피홈런은 없었다. 대신 삼진은 무려 9개를 뺏어냈다.

젊은 타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필라델피아 타선을 상대로 변화구를 통해 방망이를 효과적으로 끌어낸 류현진의 경험이 호투의 비결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 등판에 비해 좋은 패스트볼이 아닌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상대 타선 성향에 맞게, 또 현재 자신의 강점을 잘 살려낸 레퍼토리로 류현진은 수월하게 피칭을 이어갔다. 아직 어깨부상 이후 선수보호 차원에서 무리시키기 어려웠던 류현진이었기에 퀄리티스타트 요건인 6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 총평: 류현진은 강하다

류현진은 어쨌든 다저스 타선이 점수를 시원스럽게 지원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강함을 증명했다. 공격에서도 2출루, 투구에서도 좋은 활약. 퀄리티스타트를 못한 것이 유일한 흠일뿐, 이전의 커쇼, 그레인키와 함께했던 시절의 강했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아직 어깨부상으로 긴 휴식기를 끝내고 돌아온지 얼마안되어, 경기 체력과 실전 감각의 부족으로 아직은 투구수가 세자릿수를 넘긴다거나 원하는만큼 투구 이닝을 가져가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 좋은 모습과 건강함을 유지한다면 다저스 구단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묶은 사슬을 기쁜 마음으로 풀어줄 것이다. 장시간 전력에서 이탈해 처음에는 그간의 팀의 변화, 타자들의 변화와 함께 레퍼토리의 중심이던 패스트볼의 고전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류현진. 그러나 이제는 변화에도 적응했고, 레퍼토리도 바꾸고, 이탈 이전보다 탄탄한 수비력을 가진 내야수와 '프레이밍 장인' 포수 그랜달의 도움까지. 류현진을 도와주고 있는 요소들은 많아졌으며,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류현진은 강하고, 더 강해질 여지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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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류현진 LA다저스 승리투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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