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간 감축을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2017 시즌부터 메이저리그에 고의사구 자동화가 적용된다. 더그아웃에서 심판에게 고의사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투수는 공을 던지지 않고, 타자를 그대로 1루로 내보낸다. 기록지에는 공을 던지지 않은 것으로 기록된다.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한 규칙 개정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MLB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 4대 스포츠 중에서 평균 시청연령이 가장 높으며 신규 팬들의 유입도 활발하지 않기에 차후 리그의 황폐화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속적인 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팬들을 지속해서 확보하는 것이 필수 과제이며, 그것을 위해 선택한 방안이 경기 시간 단축이다.

야구의 평균 경기 시간은 여타 스포츠에 비하면 상당히 긴 편이다. 특히 새롭게 야구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긴 경기 시간은 큰 부담으로 다가오며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스피드 업 규정을 만들어 투수가 12초 안에 투구를 하게 만들었고, 코칭스태프나 감독이 마운드에 오르는 시간도 30초로 제한하여 경기 흐름을 빠르게 만들려 노력하였다. 그 결과 평균 경기 시간이 8분 가량 줄어드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견제구 제한, 야구 7이닝 축소, 수비 시프트 폐지와 같이 기존의 야구관을 뒤흔드는 과격한 방안들도 논의되고 있다. 이런 대책들은 야구의 근간을 뒤흔드는, 본질적 재미를 깨트릴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새로운 팬들을 유입하기 위한 조치들이 오히려 기존에 있던 팬들을 떠나가게 하는 것을 넘어 야구라는 스포츠의 정체성을 파괴할 수도 있다.

고의사구도 엄연한 인플레이 상황이기에 그 과정에서 억지로 타격을 하거나, 공이 빠지거나, 홈스틸을 시도하거나, 기습적으로 스트라이크를 잡는다거나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데 미겔 카브레라의 안타라든가, 2013 준플레이오프 홍상삼의 폭투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런 돌발 상황도 야구를 보는 하나의 즐거움인데, 이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적절한 조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프레드 커미셔너는 고의사구를 비효율적인 케케묵은 행위로 보며 게임의 능률화를 위해 이와 같은 제도를 강행했다. 그러나 많은 야구팬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고의 사구가 나오는 시점은 대개 승부처라는 것이다. 즉, 폭풍전야라고 할 수 있다. 타자를 거르는 동안 비춰주는 대기 타석의 타자, 팬들의 야유, 곧 펼쳐질 타자와 투수의 자존심 싸움을 기대하면서 사람들의 긴장감은 커지고 경기에 대한 몰입도는 최고조에 다다른다. 팬들은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두근거림을 느끼는데, 그 중요한 시간을 사인 하나로 대체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동의하기 어렵다.

또한, 실질적으로 경기 시간 감축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16년 MLB에선 경기당 0.38개의 고의사구가 발생했다. 고의사구 자동화로 1분 가량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면 한 경기에 20~30초를 절약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체감이 거의 안 되는 수치다. 1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돌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을 차단하고 고의사구의 긴장감을 포기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스피드 업 규정은 야구의 재미를 크게 훼손시키지도 않고, 경기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이는 아주 좋은 발상이었다. 그러나 고의사구를 수신호로 대체한다면 잃는 것이 너무 많다.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투수 교체 시간을 줄이거나, 비디오 판독 과정을 좀더 간소화하고 최적화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방안일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시즌부터 비디오 판독 과정도 간소화하는 규정이 신설되었는데 왜 굳이 고의사구를 이렇게 바꾸는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야구는 시간 제한이 없는 스포츠다. 그렇기에 언제 어떻게 경기가 끝날지 아무도 단정지을 수 없다. 또한 시간 제한이 없기에 타 스포츠와 달리 시간에 쫓기지 않고 1구, 1구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경기를 보는 매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고의사구 자동화는 야구팬으로서 참 아쉬운 조치다. 다행히 KBO에서는 이 제도를 시행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구의 흐름을 주도해가는 MLB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다른 야구 리그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언젠가 프로야구에서 고의사구를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30년 뒤엔 우리가 알고 있는 야구가 기록 속에만 존재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야구가 야구 답지 않은 모습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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