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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는 작년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부산 귀농학교' 실전귀농 팀과 함께 한 답사를 바탕으로 기록한 내용이다. '부산 귀농학교'는 생태적 가치와 자립하는 삶을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는 2017년 상반기 교육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 중이다. -기자 말

# 부산 귀농학교 '실전귀농' 팀과 함께 가다, 하동 편

2016. 10. 8. 토

귀농선배의 아랫 논에 위치한 작은집. 오늘이 행복한 집이 있다면 이곳이었다.
▲ 작은 집 귀농선배의 아랫 논에 위치한 작은집. 오늘이 행복한 집이 있다면 이곳이었다.
ⓒ 귀농학교 팀장 김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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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은 나에게 무진(霧津) 같은 곳이다.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그 곳 말이다. 대학을 입학하고 친구와 처음 떠난 기차여행에서 하동은 수심 깊은 바다처럼 고요했다. 작가 김승옥은 고향 장흥을 배경 삼아 '무진기행'을 썼다고 언급했지만, 소설 속 무진의 모습이 있다면 아마 이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연기 같이 안개가 피어오르는 섬진강과 먹물 먹은 해송들, 그날의 습기와 차분한 온도는 내게 하동은 안개라는 이미지를 안겨주었다. 시간을 흘러 좋은 기회로 부산 귀농학교 '청년세대 실전귀농' 팀과 동행하게 되었다. 첫 탐방지로 하동을 다시 찾았다.

작은 집에 큰 생각이 담긴다

출발부터 부산에는 큰 비가 내렸다. 하동으로 가는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점점 빗줄기가 약해지더니 도착할 무렵에는 다행히 비가 그쳤다. 지리산 깊숙이 자리 잡은 귀농 선배의 집은 안개의 무수히 작은 입자들이 피부를 스치고, 구름이 지붕 위로 낮게 흐르는 곳이었다.

선배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농가 설명과 후배들의 질의문답이 오갔다. 선배는 집을 둘러쌓고 있는 야산에서 나오는 밤, 단감, 매실, 고사리 등을 채취하며 삶을 꾸리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집보다 크게 지어야 한다며 안내한 창고 앞에 '카톨릭 농민회' 간판이 붙어있었다. 집 앞에는 작은 논도 있었는데, 그 한 편에 잡초가 무성한 집 한 채가 보였다.

한 명이 겨우 누울까 하는 작은 황토방 앞뒤로 마루를 길게 빼놓은 집이였다. 겨울에 난방으로 사용하였는지 지붕에는 작은 연기 통도 하나 달려 있다.

기둥을 대충 세우고 대충 흙으로 바른 듯 한데 어디에서도 부족함을 찾을 수 없다. 지붕 따라 길게 뺀 데크가 곧 거실이고 서재이고 사랑채이다. 손수 집을 짓고, 데크에 앉아 바람을 느꼈을 주인의 모습을 그려본다.

삶의 군더더기를 빼니 자연이 통째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내일이 아닌 오늘이 행복한 집을 배워야 할 곳이라면 이 곳이었다. 오랫동안 집을 바라보며 저 흙집처럼 욕심 부리지 않고 작은 공간에 큰 생각을 담으며 살자고 스스로 다짐하며 하산했다.

호미 한자루 농법

따듯한 재첩국을 점심으로 먹고 부추를 키우는 선배를 만나러 갔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듯 특유의 부추향이 가득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선배와 질의문답을 나누었다. 창고 안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선배의 답변에 귀 기울였다.

"처음 시작부터 유기농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시작부터 해보세요."

귀가 쫑긋해진다. 최근 신간 서적 코너에서 '호미 한자루 농법'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대충 책장을 넘기며 훑어보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농사는 기계나 큰 돈 없이도 부지런히 호미를 놀리다 보면 충분히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농사가 쉽다는 얘기는 아니다. 작고 적게 키우기, 땅에 맞는 걸 심기, 거름 만들기 등의 요령을 알려주며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져주던 책이었다.

선배도 말하고 싶었던 마음이 위와 같지 않았을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처럼 농사도 일단 시작해야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것이 친환경 작물이든, 작은 소농이든 간에. 농작물에게 자신의 발소리를 들려주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먹거리를 살찌운다. 정직하게 땀을 흘려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는 것부터가 바로 농사의 중요한 핵심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 부산 귀농학교 '실전귀농' 팀과 함께 가다, 양산 편
2016. 10. 15. 토  

도심 속에서 키우는 양봉을 들어올려 소개하고 있다
▲ 도시양봉 도심 속에서 키우는 양봉을 들어올려 소개하고 있다
ⓒ 이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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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도시농업, 양봉

근래 도시농업 중 큰 화두는 도시양봉이 아니었을까. 서울 및 대도시에서 도시양봉의 가치를 알고 뛰어든 젊은이, 여러 지자체에서 양봉관련 수업들을 운영한다는 뉴스들을 종종 본다. 사실 실전귀농 전체 프로그램을 받았을 때 가장 눈길을 끌던 게 양봉체험이었다. 이제껏 화면과 종이로만 접한 양봉의 세계를 직접 보고 듣는다는 기대감이었다.

부산에서 멀지 않는 양산에서 양봉하는 선배를 만났다. 멀리 빽빽이 아파트가 세워진 양산 시내가 보이고, 바로 옆으로는 야산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 야산에서 벌을 키우다 집 옆 텃밭으로 옮겼다고 한다.

텃밭 공터에 나란히 2-3줄로 이어져 있는 벌통으로 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안주인께서 내주신 주스를 마시고 종이컵을 올려두니 무수히 많은 벌들이 몰려들었다. 꿀벌은 단물의 가장 좋은 영양소는 여왕벌에게 주고 일부분은 자신이, 나머지는 벌집에 채운다. 그렇게 보관한 꿀로 애벌레를 키우고 활동이 불가능한 겨울에 식량으로 사용한다.

귀농 선배 벌통은 텃밭과 옥상에 있는 양봉이 전부이다. 꿀은 한 통에 5만 원, 말벌 술은 10만 원 그 외 프로폴리스나 화분 등을 팔고 있으니 그야말로 버릴게 없는 사업이다. 옥상에 있는 양봉도 보여주겠다며 본채 계단으로 안내했다. 내게도 아파트가 아닌 옥상이 있는 주택이 있었더라면..., 꿀벌을 관리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생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신선한 꿀을 맛보는 달달한 상상을 해본다.

근래 벌이 없어 작물들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한다. 온난화와 전자파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자연은 경외해야 할 대상이며 인간과 어우러져야 한다. 양봉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라도 벌을 가꾸고 자연과 어울리는 도심환경을 만들어주는 이가 늘어나길 바랄 뿐이다.

조아저씨의 소시지

본인도 좋고 사회에도 좋은 제2의 인생은 가능할까. 처음엔 막연한 꿈일지라도 계속 생각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그 말이 시작되어 새로운 기회와 인연으로 이어진다. '조 아저씨'를 만나고 든 생각이다.

같은 귀농학교 출신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뒤, 조아저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회사를 다니다 50대 중반에 명퇴하는 선배들 모습을 보고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이 들었단다. 관심 있는 단체와 교육에 참가하며 배우던 중, 축산에 관심을 두었고 암수 돼지 한 쌍을 사왔다.

그렇게 시작한 돼지 한 쌍이 새끼를 낳고, 새끼가 자라면 육류 판매와 소시지로 가공한다. 생산된 돼지고기와 소시지는 전량 지인에게 판매된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많은 만남과 교류로 신뢰가 형성되어, 이미 소비자·생산자 공동체가 이루어진 듯 싶었다.

소시지 체험관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축가에 갔다. 규모가 작아 사업장이라기보다는 가정에서 키우는 규모라 해도 믿겠다. 멧돼지와 흑돼지를 교합시킨 종이라 수컷 돼지의 입에는 두 개의 송곳니가 나 있었다.

돼지 한 쌍이 일 년에 3번씩 12-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 하니, 일 년이면 태어나는 돼지가 30-40마리로 얼추 계산된다. 사료는 인근 정미소에 나오는 쌀겨(한 포대에 4천 원)와 풀이면 충분하다. 사료 값이 오르든, 내리든 영향을 받지 않는다.

축산이라면 작은 케이지 안에서 빽빽이 가축을 키우고, 많이 팔아야 돈이 된다고 생각한다. 키우는 목적이 아니라 적어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돼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사료가 필요하고, 사료를 사기 위해 빚을 낸다. 빚을 갚기 위해 더 많은 돼지를 키우고 악순환은 계속 된다.

조아저씨의 소규모 축산에서 오늘날 축산산업의 대안을 본다.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립적인 삶이 가능했다. 최근 만났던 이들 중에 이토록 맑고 여유로운 표정이 있었던가. 적어도 조아저씨에게는 미래를 이미 써 버린 중년의 불안과 공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 교육 문의 : 부산귀농학교 사무국 051-462-7333
※ 홈페이지 : www.busanrefarm.org / 검색창에 "부산귀농학교"



태그:#부산귀농학교, #귀농정보, #귀농답사, #녹색,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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