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에 앞서 커밍아웃부터 해야겠다. 난 아직 차기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아야할 지 결정하지 못했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여론조사에 굳이 스스로를 대입해 보면 아직까지 30%에 달하는 부동층에 가깝다.

아, 물론 그렇다고 모든 후보에 대해 마음을 열어둔 것은 아니다. 난립하는 후보들 중 바른정당과 새누리당 후보는 논외다. 차기 대통령을 뽑으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MB정부, 아니 박정희 정권 때부터 이 사회에 뿌리박힌 적폐청산인데 두 정당 출신의 대통령에게는 그 막중한 과업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중한테 제 머리 깎으라고 맡길 수 없지 않은가.

다행인 것은 두 정당의 후보를 제외하더라도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등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는 사실이다. 물론 실제 대선에 들어가면 경선 등을 통해 후보 수가 줄어들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각각의 후보들이 백가쟁명으로 자신이 왜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주장하고 있는 중이며, 난 그것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자, 그럼 누가 대통령이 되어 과거 적폐청산을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대세를 이루고 있는 문재인? 충청의 엑소 안희정? 사이다 이재명? 그것도 아니면 여전히 새정치를 주장하는 안철수?

jtbc의 <썰전>은 지난주부터 이런 나 같은 유권자들을 위해 대권주자들을 불러 대담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지난주 유승민 의원에 이어 어제(9일)는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가 출연했다. 프로그램 자체가 시사와 예능 사이에 있는 만큼 전체적으로 딱딱하지는 않았지만, 마냥 웃을 수 없을 만큼 날카롭고 민감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기도 했다. 과연 그는 5년 전과 달라졌을까?

달라진 문재인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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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일) 포털에 뜬 기사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썰전>에 출연한 문재인 전 대표는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작년 말 탄핵 정국 때 jtbc <뉴스룸>에 출현해 손석희 앵커와 이야기 할 때와도 달랐다.

문 전 대표는 자신감이 있었고, 확신에 차 있었으며,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오죽하면 조선일보가 공화당 신동욱 총재를 인용하여 "보수의 자객 전원책마저 가지고 놀았다... 빛났고 여유 있어 큰 경의 표한다"고 했을까.

 조선일보가 인용한 신동욱 총재의 트위터

조선일보가 인용한 신동욱 총재의 트위터 ⓒ 조선일보


문재인 전 대표는 우선 자신의 두 번째 대권 도전을 '재수'라고 표현함으로써 경직되어 있던 시청자들의 시선을 누그러뜨리고 시작했다. 대학교도 재수, 사법시험도 재수, 대선도 재수라면서 두 번째 대권도전이 '패권주의의 산물이다', '과욕이다'라는 항간의 폄훼를 유머러스하게 받아쳤다.

또한 문재인 전 대표는 지지율 1위가 받을 수밖에 없는 공격들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양 갈래의 비난, 즉 (대권이) 자신 있다고 하면 벌써 다 대통령 된 것처럼 군다고 하고, 1등 하면 확장성 없다고 하는 그 비난들을 직접 언급하며 그것이 자신이 대세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예전의 문재인 후보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웃음 포인트였다.

이어서 문 전 대표는 <썰전>이 야심차게 준비한 송곳질문에 대해서도 나름 설득력 있게 대처했다. 특히 '송민순 회고록' 등과 관련하여 현재 자신의 가장 아킬레스건으로 평가되어지는 소위 '종북논란'에 대해서는 자신의 특전사 경력과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이 회고록에 썼던 회의들을 직접 언급하며 그 모든 것이 오해이고 괜한 트집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평소에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절대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유권자라면 충분히 합리적인 해명이었다.

덧붙여 그는 현재 자신의 발언들이 언론 지상에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도 밝혔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상관없이 국익을 위해서는 어느 국가와도 먼저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의 발언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고 변한 사실을 꼬집으며 이런 질문이 아직까지도 용인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비상식성에 답답해했다.

문재인이 보여준 권력의지

 <썰전>의 날카로운 질문공세

<썰전>의 날카로운 질문공세 ⓒ jtbc


일취월장한 웃음코드와 합리적이고 요령 있는 말주변, 그리고 대세다운 여유로움까지 갖춘 문재인 전 대표. 그러나 정작 내가 <썰전>을 보면서 그가 달라졌다고 느낀 건 정권교체에 대한 그의 절박함이었다.

사실 5년 전 겨울, 광화문에서 봤었던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으로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고 신해철의 명곡 '그대에게'의 경쾌한 리듬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한껏 기대에 들떠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말문을 열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탄식을 했다. 2%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후보가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그는 우리를 뜨겁게 만들지 못했다. 혹자의 말대로 그 자리에 '노짱'이 있었더라면 연설이 끝나고 모두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을 텐데, 문재인 후보의 연설은 행사 뒤 우리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권력의지를 발견하지 못했고 그만큼 절박해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 본 문재인은 달랐다. 5년 전과 비교해 뜨거웠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며 절박해 보였고, 그래서 자신이 적임자라고 권력의지를 내비쳤다. 예전 같았으면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특히 부정부패를 논하면서 문 전 대표가 MB정권을 콕 집어 이야기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압권이었다. 모두가 현재 박근혜 게이트만 이야기하며 적폐청산을 거론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이 MB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MB정권이 박근혜 정권을 창출했으며, MB정권 때부터 국가를 수익모델 삼아 사적 이익을 극대화시켰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문 전 대표는 그와 함께 바른정당도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몰상식하다고 지적했다. 대선에서의 승리와 이후 정국을 생각한다면 굳이 바른정당을 자극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그만큼 원칙을 중요시하는 듯했다. 어쨌든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도 분명히 물어야 되지 않겠는가. 아마도 이 부분은 나중에 안희정 충남 도지사와 '대연정'을 두고 부딪히는 지점이 될 것이다.

<썰전>을 모두 보고나서도 나는 아직까지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 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소한 문재인 전 대표가 5년 전과 달리 뜨거워졌음을 느꼈고, 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권력의지의 부재가 이제는 해소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썰전>에서 다른 주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문재인 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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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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