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월에는 탄핵하라-14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월에는 탄핵하라-14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이게 나라냐'는 광장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맞다. 이대로는 나라가 아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불러온 국정 농단 사건이 몇 개월째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지만 아직도 종착역은 멀어 보인다.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다. 특별검사가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하여 광범위한 수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들이 쏟아져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특별검사가 상당한 성과를 얻는다 해도 어둠의 독버섯이 그대로 살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사건이 오랫동안 진행됐는데도 국가 시스템은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은 뭘 하고, 국가정보원은 무엇을 하고, 언론이나 국회는 무슨 역할을 하고, 행정 각부는 무엇을 했다는 것인지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낸 세금을 받으면서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사람들이 오로지 한 사람, 대통령 박근혜의 머슴처럼 행동한 것 아닌가 말이다. 

언론이나 야당 정치인을 통해서 최순실 등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대통령이 강력한 어조로 부인하면서 오히려 상대를 힐난한다. 여당과 보수세력들 또한 그러한 대통령을 두둔하기에 급급하다. 수사기관이나 국정원,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무총리실 등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특정 방송을 통해서 국정농단의 구체적인 모습이 수면 위에 떠오른 후에도 수사기관은 소극적이었다.

국회 또한 소극적으로 있다가 국민들의 촛불 함성이 거세지자 특별검사법을 만들고 탄핵소추를 하기에 이른다. 이제 와서 여당 유력 정치인들과 보수 언론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몰아세운다. 민심이반으로 더 이상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은 물론 자신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박근혜호에서 미리 내리겠다는 심산이다. 국가를 흔들어 놓은 중대한 사태를 당하고도 청와대 비서진이 거의 그대로 있고, 내각도 흔들림이 없다. 참으로 대단한 나라다. 책임과 양심을 모두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공직자에게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과 공범이거나 방조범으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국무총리가 보수층의 지지를 얻고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 스스로도 자신을 낮추거나 부인하려 들지 않는다. 국정농단을 자행한 대통령 옆에서 국무총리를 하던 사람이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모양새다. 스스로 '대통령을 잘못 모신 데 대한 책임을 지겠다'면서 물러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일 텐데 말이다. 오히려 대통령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야당 등의 요구를 받아들여 책임총리 후보를 지명하자 이임식을 예정했다가 슬며시 주저앉는 모양새까지 보인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 급기야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세까지 하고 있는 그다.

국정농단, 몰랐어도 직무유기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1월 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황교안 권한대행 신년회견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1월 2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사실 황교안 국무총리(지금은 대통령 권한대행)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범이거나 최소한 방조범이다. 황교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13년 3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그 이후 국무총리로 재직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은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검찰·행형·인권옹호·출입국관리 그 밖에 법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검찰에 대하여 인사권을 가지고 지휘 감독하는 자리다.

대통령이라도 법에 위반되는 사항은 지적하고 올바로 고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 특정 공무원을 지칭하면서 사직을 강요하면 절차가 잘못되었음을 말해야 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헌법 제69조)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한 사항을 주지시키는 것이 법무부 장관의 몫이다. 최소한 법률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대통령보다 법무부 장관이 훨씬 전문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의 지위는 더 막중하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헌법 제86조 제2항). 또한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헌법 제87조 제1항),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헌법 제87조 제2항). 국정 전반에 대하여 국무총리에게 대통령을 보좌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국무총리에게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총리의 대국회활동, 당정협조, 국정자문, 국민과의 소통 업무를 보좌하며, 그 밖의 지시사항 처리를 관장할 국무총리비서실(Prime Minister's Secretariat)을 두고 있다. 국내외 주요 정보 및 상황에 관한 사항, 민원업무 처리 및 조정, 시민단체 지원 및 협력, 국무총리의 국정활동 홍보, 국무총리의 연설문·담화문 등 작성, 국무총리의 의전·경호 및 귀빈의 영접 등과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며, 국무총리의 지시사항을 처리하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정부 내에서 벌어지는 주요 사항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거나 아니면 자체적인 정보망을 통해서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자신이 통할하는 행정 각부의 인사 농담이나 이권개입 등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최순실이 국가기관이나 국공영 기업의 인사권 등에 개입하는 것을 전혀 몰랐다거나 이권개입의 정황을 파악하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모르는 것이 책임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 몰랐다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직무유기가 그에 해당한다.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청와대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광범위하게 인사와 이권에 개입하는 정황을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건전한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하는 일이니까 조용히 눈 감아 준 것 아닐까. 황 대행은 공범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황교안, 강 건너 불 구경할 때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할 것을 알려진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연풍문 쪽으로 가는 도로를 취재진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연풍문 출입 통제하는 청와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할 것을 알려진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연풍문 쪽으로 가는 도로를 취재진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최근 특검 수사과정에서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두고 이를 거부하는 대통령 측과 마찰이 있다. 특검이 신청하고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하여 청와대는 군사기밀시설이고 내부에 공무상 비밀 자료가 많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아마도 형사소송법 제1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제1항)는 규정과 전항의 책임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제2항)는 조항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그러나 특검에서 압수·수색하려는 것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하여 청와대에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일 뿐 군사상 비밀과는 관련이 없는 것들이다.

또한 이미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이므로 법원을 상대로 이의신청을 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청와대의 책임자는 황교안 권한대행이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되어 있으므로 청와대 비서실에 대하여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따라서 법원에서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이 방해를 받는 경우 책임자인 황교안 권한대행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가 팔짱을 끼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일이 아니다.

법원에서 정상적으로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이 국가기관에 의해서 거부당한다면 대한민국의 사법질서는 무너진다. 앞장서서 법률을 준수해야 할 국가기관이 법 집행을 거부한다면 국민들에게 어떤 이유로 법 집행에 순응하도록 요구할 수 있겠는가? 법 집행에는 대통령이라도, 청와대라도 예외를 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형사소송법 제110조를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느냐의 최종적인 해석은 법원이 한다. 청와대가 국가안보나 군사시설 운운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영장의 집행을 방해하는 경우 당연히 공무집행방해로 수사해야 하고, 최종 책임자는 영장집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협조하여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경우 마찬가지로 공무집행방해죄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다.

영장(令狀, warrant)은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서 헌법에서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국가기관에서 개인의 신체·재산에 대한  체포·구금·압수·수색을 하려면 반드시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에 의하도록(헌법 제12조 제3항, 제16조) 규정하고 있는 이유다. 형사소송법상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 등은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원이 발부한다. 검사로부터 영장의 신청을 받은 법관은 그 필요성의 유무를 심사해서 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한다(형사소송법 제201조 제3항). 그만큼 수사 과정에서의 강제처분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발부된 영장이 집행단계에서 거부당한다면 국법질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다. 청와대의 압수·수색 영장의 거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까닭이다. 대통령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오랫동안 법집행을 담당해 왔던 법률전문가다. 그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책임도 져야 하는 상황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최소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를 하면서 황교안 국무총리도 함께 탄핵 발의했어야 한다.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발의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보다 그 요건이 완화되어 있다.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국무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는 등의 나머지 절차는 대통령과 동일하다. 그런데도 국회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국정농단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대통령권한대행 자리를 차지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이제는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의 집행거부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정농단의 부역자인 황교안 국무총리에 대하여 탄핵을 추진하고 수사해야 하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정범 기자는 법무법인 민우 소속 변호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태그:#황교안탄핵, #황교안수사, #황교안공범, #황교안부역자, #황교안권한대행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