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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를 찾아온 몇몇 여행자들이 너무 반가웠는지, 해변가 횟집에서 사는 개가 애교를 부리다 못해 가지 말라며 관광객 신발 끈을 풀고 난리가 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인천국제공항이 자리한 영종도는 3개의 사라진 섬들을 품고 있다. 국제공항을 지으면서 영종도 주변에 있던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를 매립해 하나의 섬으로 합쳤다. 이중 용유도는 작은 섬이지만 용이 노니는 섬이라는 이름답게 여러 개의 정다운 해변을 품은 섬으로 용유8경이 있을 정도였다.
저마다 다른 풍광을 지닌 마시안 해변, 선녀바위 해변, 을왕리 해변, 왕산 해변 등은 지금도 수도권 시민들의 휴양지, 여행지로 사랑을 받는 곳이다. 용유도란 이름은 과거의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연이어 이어지는 길고 한적한 해변 길과 호젓한 포구는 겨울바다 여행지로 더없이 좋다. 바닷가 바로 앞에 용유역이 있어서 찾아 가는 길도 한결 편하다. 자전거를 타고 더 이상 용이 놀러오지 않는 용유도의 흔적을 더듬으며 겨울 바닷가를 달려갔다.
상어가 떠다니는 듯, 무인도 '샤크섬' 인천공항철도를 타고 종점인 인천공항역에 내리면, 용유역으로 가는 자기부상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15분마다 오가는 장난감 같은 이 미니 열차는 운전하는 사람이 따로 없는 무인열차로 고맙게도 무료다. 인천공항을 만들면서 용유도란 이름을 사라지게 해 섬 주민들에게 미안했나보다. 열차가 작아 일반 자전거는 탑승이 안 되고 접이식 자전거는 가능하다. 용유역까지 7km의 거리라 자전거로도 금방 갈 수 있다.
용유역은 바다와 아주 가까운 역 가운데 한 곳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마시안 해변이 펼쳐져 있고, 작은 어선들이 둥실둥실 떠있는 거잠포구, 잠진도가 바다 위 둑길로 이어져 있다. 거잠포구에 먼저 들렀다. 작은 배들이 닿는 곳에 서면 재미있게 생긴 무인도 '샤크섬(매랑도)'이 보여서다. 정말 상어의 지느러미처럼 생긴 작은 무인도가 어선들 뒤로 보이는데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았다. 거잠포는 서해에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해 뜨고 지는 포구'로 유명한데, 일출 때 아침 해가 샤크섬을 끼고 고개를 내민단다.
바다를 만나니 카메라 촬영화면이 어느새 가로형으로 바뀌었다. 가로, 세로가 비슷한 정사각형 모양의 화면으로 찍게 되는 도시와 달리, 바닷가에 오니 16:9의 화면에 어울리는 풍경이 반갑다. 제방둑길로 이어진 잠진도엔 무의도가는 선착장이 있다. 호룡곡산, 하나개해변, 실미도, 소무의도 등 산행과 바다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무의도는 섬 트레킹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섬이다.
양쪽으로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잠진도 가는 둑길 주변엔 추운 겨울에도 갯것을 채취하러 나온 섬 주민들이 보였다. 농한기라 하여 겨울엔 한갓진 농촌과 달리 어촌 마을은 겨울에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둑길 위에서 친구사이라는 장년의 아저씨들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우린 상대방을 부러워했다. 나는 친구들과 오래도록 우정을 쌓으며 사는 아저씨들이 부러웠고, 아저씬 혼자 여행 와서 자유롭고 홀가분하니 좋겠다며 자전거 탄 날 부러워했다.
무의도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잠진도 선착장 대합실에 앉아 쉬어갔다. 벽면에 붙어있는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된 지명수배 전단지가 눈길을 끌었다. 수배범들은 대부분 평범한 이웃사람들처럼 생겨서, 막상 마주친다 해도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여러 범죄 가운데 특경범(특정경제범죄, 사기)이 가장 많았다. 어떤 사기를 쳤는지 나오진 않았지만, 사기범죄율 세계 1위의 거짓말 공화국다운 수배전단지였다. 뒤로 멕시코와 인도, 아르헨티나가 이어진다.
애청하는 JTBC 뉴스에 의하면 국내 사기사건은 하루 600건이 터진다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지난 국회 청문회를 떠올려보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수치다. 지금은 구속 중인 어느 장관은 진실로, 맹세코란 말을 덧붙이면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더랬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범죄라는 사기. 사실 우리는 아직 후진국인지도 모르겠다.
용유도의 명사십리 마시안 해변, 천연 굴 밭 선녀바위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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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빠진 갯벌이 넓고 단단해 말을 타고 경운기가 지나가는 마시안 해변. |
| ⓒ 김종성 | 관련사진보기 |
용유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이국적인 이름의 마시안 해변. 용유도에서 가장 긴 해변으로 바닷가에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어느 섬에나 꼭 있는 명사십리라 할 만한 곳이다. 소나무 사이사이로 야영을 할 수 있는 캠핑장이 인기인 해변이다. 자전거를 해변 가에 세워놓고 바닷가 모래밭으로 들어섰다.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푹신푹신한 느낌이 참 좋다.
겨울은 춥고 황량한 계절이지만, 겨울바닷가는 속 시원해지는 사이다를 들이킨 듯 상쾌하다. 겨울바다를 찾아온 몇몇 여행자들이 너무 반가웠는지, 해변가 횟집에서 사는 개가 애교를 부리다 못해 가지 말라며 관광객 신발 끈을 풀고 난리가 났다. 익살스런 개를 따라 바닷가 식당에 들어갔다. 낯선 사람한테도 친근하고 똘똘해서 조금만 훈련하면 손님들 끄는 명물견이 되겠다고 하자 식당 주인은 빙긋이 웃었다. 바다처럼 식당도 한산해서 안주인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두다 '마시안' 해변의 특이한 이름에 대해 알게 됐다.
마시안 혹은 마시란 해변은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면 바다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갯벌이 펼쳐지는데, 옛날부터 너른 바닷가에서 말을 탔었단다. 펄이 넓고 모래바닥은 단단해서 말 타기 좋다고. 바다를 바라보며 말을 타고 해변을 달리다니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여름 성수기 땐 관광용 말을 탈 수 있는 승마시설이 들어선단다. 이날 말은 못 봤지만, 갯것을 캐러가는 동네 아낙들을 태운 경운기가 갯벌 위를 달리며 지나갔다. 농촌과 어촌 모두에서 활약하는 경운기는 정말 만능이다. 용유도 해안 갯벌에선 조개가 많이 나는지 해변가에 조개구이집이 많다.
마시안 해변만큼이나 특이한 이름의 선녀바위 해변이 나타났다. 정말 선녀에 관한 전설이 있을법한 길쭉한 바위와 함께 크고 작은 바위들이 겨울 바닷가 풍경을 풍성하게 하고 있었다. 전설이 깃든 선녀바위가 있어선지 이 해변은 사람들 신앙의 매개체가 됐다. 간단하게 제사상을 차려놓고 바다를 향해 손을 빌며, 북을 치며 기도를 하는 풍경이 해변 곳곳에서 펼쳐졌다. 어릴 적 재밌게 읽었던 전래동화책에 나오던 바다 속 용왕님을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신앙은 어쩌면 인간의 운명 혹은 본능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맘 때 선녀바위 해변은 천연의 굴 밭이다. 굴을 석화(돌 위에 핀 꽃)라고 불린다더니 정말 바닷가 바윗돌 위에 흰 껍질의 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서해 바닷가의 굴은 갯벌 바윗돌에 붙어 알아서 퍼져 자란다. 따로 먹이를 주며 기르지 않아도 되는 자연산 굴이 지천이다.
굴 캐는 아낙들의 바구니에 담긴 굴에서 나는 진한 향기에 끌려 바닷가 갯벌로 들어갔다. 아예 굴 따기 여행을 온 관광객들도 있었다. 밀물 땐 주변 용유도 여행을 하다가 바닷물이 빠지면 숙소에서 빌려주거나, 낚시 가게에서 파는 굴 따기 전용 도구를 들고 갯벌 위로 드러난 석화를 캔단다.
서해의 굴은 알이 잘고 때깔과 향이 진하다. 굴 캐는 아주머니가 건네준 엄지손톱만한 작은 야생굴을 먹어 보았다. 짭조름한 바닷물에 이어 입속에 퍼지는 진한 굴 향에 저절로 눈동자가 커졌다. 서해안 굴은 도시의 마트에서 사먹곤 하는 통통한 남해안 굴에 비하면 1/2 크기로 잘다. 굴 캐는 주민들 옆에 앉아 구경을 하다 그런 차이를 물어 보았다. 서해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면 굴이 바닷물 밖으로 노출되어 먹이 활동을 하지 못해서란다.
바다가 육지라면, 용유도 방조제길 여름철 용유도에서 가장 붐빈다는 을왕리 해변은 명성답게 겨울철에도 제법 사람들이 보였다. 해변을 따라 횟집, 조개구이집 등 식당과 모텔, 리조트가 이어져있다. 용유도 해변의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며 하루를 묵고자 한다면 을왕리 해변이 좋겠다. 바닷가를 따라 왕산으로 예상되는 고개를 하나 넘으면 왕산(王山) 해변이 나타난다.
화려한 피서지 을왕리 해변과 달리 왕산은 호젓하고 한가한 어촌 같은 풍경이다. 해변 송림 주변으로 야영장을 운영하는 여느 해수욕장들과 달리, 바닷가 모래사장 어디든 야영을 할 수 있어 캠핑족에게 인기 있는 해변이다. 따로 오토 캠핑장도 마련돼 있다. 텐트 속에서 맞이하는 바닷가 일출과 저녁노을... 생각만 해도 좋다.
왕산 해변을 지나면 섬 북쪽을 따라 직선으로 길게 이어진 방조제길이 나온다. 과거 용유도와 영종도 사이 바다였던 큰 공간을 매립하고 방조제로 막아 육지화 하고 있다. 그런데 방조제 둑을 따라 웬 철조망이 세워져 있다. 북한이 가깝다고 하지만, 영종도 위로 장봉도와 강화도, 석모도 등이 있는데 굳이 삭막한 철책을 세워 놓아야 했나 싶다. 2001년 군부대가 이곳에 살던 참나무와 소나무를 베어내고 철조망을 설치하면서 자연환경 훼손 문제로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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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조망이 길게 세워진 영종도 북측 방조제 아래서 굴을 캐는 주민들. |
| ⓒ 김종성 | 관련사진보기 |
철조망 때문에 삭막하기 그지없는 방조제 둑 밑으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서해안의 겨울 보물 석화가 방조제에 쌓은 돌에 피어나서다. 어찌나 많은 굴이 붙어 있는지 멀리서 보면 방조제 둑이 하얗게 칠을 한 것 같다. 이곳에서 굴을 캐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군사시설인 철조망 출입문도 열어 놓았다.
방조제 길 입구에 작은 매점이 있는데 그 옆으로 들어서면 방조제를 따라 난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방조제에 갇혀 너른 호수가 된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달릴 수 있었다. 이 산책로가 아니었음 차들이 괴성을 지르며 내달리는 방조제 도로를 지나가야 했을 텐데 다행이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에서 찰랑거렸을 바다는 귀여운 겨울철새 물닭들이 떼로 노니는 거대한 호수, 풀들이 자라나는 뭍이 되어가고 있었다. '국제 업무도시 개발구역'으로 육지화가 된 곳은 큰 트럭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건설현장이 이어졌다. 시끄러운 공사판을 지나니 삼목선착장이 나왔다.
가까운 장봉도, 삼형제 섬 신도·시도·모도를 오가는 배가 다닌다. 영종도에 합쳐지면서 삼목도라는 섬은 사라졌지만, 배가 오가는 선착장은 남아 섬의 흔적을 증언하고 있다. 삼목 선착장 대합실에선 갈매기용 새우깡을 판다. 선착장을 오가는 배를 타면 새카맣게 덤벼드는 갈매기들이 환장하는 과자, 먹어 보니 중독될 만했다.
삼목 선착장을 지나 해안가를 계속 달리면 아파트와 마트, 공원이 들어선 영종도 신도시와 함께 공항철도역 운서역(인천시 중구 운서동)이 나온다.
* 주요 자전거 여행길 : 인천공항역 - 용유역 - 거잠포구 - 잠진도 - 마시안 해변, 선녀바위해변, 을왕리해변, 왕산해변 - 영종도 북측 방조제길 - 삼목 선착장 - 운서동 신도시 - 운서역 (약 30km) 덧붙이는 글 | - 지난 1월 27일에 다녀왔습니다.
- 제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 sunnyk21.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