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또 있었을까?

좋아하는 남자에게만큼은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건만, 눈치도 없는 그는 경기장에 나타났다. 땀과 눈물을 흘렸던 지난날. 난생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해준 그 남자. 흔들렸지만, 이내 입술을 굳게 다물고 힘껏 바벨을 들어 올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곤두선 핏줄. 두 개 세 개로 접힌 턱과 뱃살. 그런 그녀가 대견한 듯 두 주먹 불끈 쥐고 응원하는 그 남자. 환호하는 동료들과 관중. 그 속에서 홀로 상처 입고 한없이 작아진 그녀. 그때부터 복주를 사랑하게 됐다. 아니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복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경, 요정 납시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역도선수 김복주 역의 배우 이성경이 12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MBC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역도요정, 김복주를 연기했던 배우 이성경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내가 복주인듯, 복주가 나인듯. 울고 웃었던 석 달이 지나고, 사랑스러운 복주를 사랑스럽게 표현해준 배우 이성경을 12일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아직 복주를 다 떨쳐내지 못한 듯, 말투에서 표정에서 몸짓에서 복주가 그대로 배어 나오던 그녀는 "아직 복주에게서 나오기 싫다"며 웃었다. 전날 종방연에서 마지막회를 시청하며 어찌나 울었는지,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 뾰루지 난 다음날의 복주처럼 소리를 질렀다고. 이성경은 "순수한 동화 안에 살다 나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연기했다는 느낌보다 그냥 복주가 돼서 살았던 것 같아요. 재이(이재윤 분) 선생님께 머리핀 꽂고 갔을 때도 '사랑에 빠진 복주를 연기해야지' 하는 마음보다 '와 선생님 너무 잘생겼다~', '으아 떨려~ 어떡해~' 이랬죠. 안 그러면 순수한 복주의 마음을 온전히 저로 만들 수 없겠더라고요."

유난히 친근하고 현실성 있었던 복주의 리액션도 이성경이 복주가 돼 저절로 나온 애드리브였다. 여느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라면 잘생긴 남사친(남자사람친구)의 "예뻐"라는 칭찬에 수줍어할 만도 하건만, 복주의 반응은 "뭐래 븅... 나 놀리냐?"였다. 좋긴 좋은데 쑥스러워 나오게 되는 괜한 거친 말.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했음 직한 리액션이었다. 어디까지나 거친 말을 종종 내뱉는 내 기준일 수도 있지만.

"대본이 너무 재밌어서 살릴만한 장면과 대사가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연기했죠. 이미 대사와 상황 자체로 너무 재미있는데, 제가 더 웃기고 재미있게 연기하면 과하게 전달될 것 같았거든요. 사랑스럽지만 어딘가 엉뚱한 복주. 털털하고 조금은 거친 체대생 복주. 그런 복주가 돼 있으니 애드리브도 편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델 이성경이 역도요정 되기까지

이성경, 요정 납시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역도선수 김복주 역의 배우 이성경이 12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몸매 좋기로 소문난 모델 출신 이성경이 역도선수라니. 시청자들만큼이나 이성경 본인도 당황스러웠던 출연 제안이었다. ⓒ 이정민


지금이야 이성경이 아닌 복주를 상상할 수 없지만, 당초 이성경이 <역도요정 김복주>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의 반응은 "응?"이었다. 모델 출신답게 쭉쭉 뻗은 팔다리의 이성경이, 몸매 좋은 연예인 중에서도 몸매 좋기로 이름난 이성경이 역도선수라니. 이성경 역시 출연 제안을 받고 당황했다고. 역도선수 역이란 이야기에 "네? 저 모델 출신인데요?"라고 말했단다.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라고 물어봤었다니까요. 대본 주시면서 체급을 올려야 한다고도 하셨는데, 그땐 잘 모르니까 무제한 체급만 있는 줄 알았죠. 나중에 낮은 체급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제 키도 있고... 캐스팅 소식에 들렸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 저도 똑같이 했어요. 일단 주셨으니 읽어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계속 '아니 왜 이렇게 재밌고 난리야~', '재밌으면 안 되는데 왜 재밌어~' 이러면서 다 읽어버렸죠. 복주가 너무 사랑스러웠거든요."

대본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체대생이면 머리를 좀 잘라야겠지?', '목소리 톤은...'하며 캐릭터에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단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고민. 결국 복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복주는 시청자들은 물론, 자기를 연기해줄 배우 역시 사랑에 빠트린 셈이다.

"감독님이 제가 출연했던 드라마를 보시면서 제가 복주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대요. 고민하던 제게 '남들은 외형적인 역도선수를 찾지만, 나는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주를 가장 사랑스럽게 연기해줄 배우가 필요한 거지, 외형적인 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살찌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요. 빼면 되니까. 근데... 막상 살이 찌기 시작하니까 힘들더라고요.(웃음)"

평생 살이라곤 쪄본 적 없는 이성경은 몸매가 틀어지고 살이 트기 시작하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단다. 체질이 변하면 어쩌나, 살찌우기 위해 밤낮 먹던 나트륨과 탄수화물 섭취가 습관이 되면 어쩌나. 주위 사람들은 "통통하니 보기 좋아. 귀엽네"해도 우울했다. 복주가 역도선수와 마냥 예뻐 보이고픈 여자라는 두 모습 사이에서 갈등했듯, 이성경 역시 복주를 멋지게 연기해야 하는 배우 이성경과, 평생 마르고 예쁜 몸매로 살아온 인간 이성경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다.

"청바지도 답답해서 못 입겠고, 사람 많은 곳도 괜히 못 가겠더라고요. 모델 할 때는 조금만 살찌면 엄청 뭐라 하니까 제 스스로도 강박이 있었나 봐요. 워낙 그런 세계에서 그렇게만 살다 보니 기준점이 달랐죠. 그런데 복주를 연기하면서 그런 게 깨졌어요. 지금은 더 편하고 너무 좋아요."

복주와 닮고, 달랐던 이성경의 21살

이성경, 요정 납시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역도선수 김복주 역의 배우 이성경이 12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춘을 추억하게 만드는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 이성경의 21살은 복주만큼이나 순수했지만, 복주처럼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할말은 하는 복주가 더 사랑스러웠다고. ⓒ 이정민


시청자들이 <역도요정 김복주>를 한 문장으로 '다닌 적도 없는, 나의 그리운 체대시절'이라고 한다고 말해주자 "어쩜 그런 표현을 생각하시지?"라고 감탄하며 "나도 똑같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복주와 친구들의 청춘을 바라보며, 복주가 되어 친구들과 함께 청춘을 다시 살며, 이성경 역시 그 또래의 자신을 추억했다고. 그렇다면 이성경의 21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의 3000배는 해맑고 긍정적이었어요. 온실 속 화초마냥 아무것도 몰랐죠. 순수한 모습은 복주와 비슷했던 것 같아요.

다른 점이 있다면 복주는 솔직하고 자기표현 확실하게 하잖아요. 거침없고, 경솔했으면 자책도 했다가, 금방 미안하다고 사과도 잘하고... 하지만 전 소심했어요. 화도 못 내고, 정색해본 적도 없죠. 그래서 자기감정에 솔직한 복주가 더 예뻤던 것 같아요."

전작 <닥터스>를 마친 뒤 별다른 휴식기 없이 바로 시작된 <역도요정 김복주>. 유난히 분량이 많았던 데다 생방송처럼 진행된 촬영일정에 지칠 법도 했지만, 이성경은 복주로 사는 것이 "행복했다".

"마지막 회쯤 되면 진이 다 빠져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복주를 연기하며 힐링해서 그런지 컨디션도 좋아지고, 말도 안 되는 스케줄도 견뎌지더라고요. 어쩌면 순수한 세계에서, 순수한 감정을 연기하며 살아 그런가 봐요. 몸이 편해도 머리가 시끄러우면 몸도 힘들잖아요. 마음이 행복하고 즐거우니까 몸도 이겨낸 것 같아요."

복주야 안녕, 사랑해

이성경, 요정 납시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역도선수 김복주 역의 배우 이성경이 12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통통한 볼살이 귀엽던 복주에서, 다시 완벽 몸매의 이성경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 이정민


이성경은 "어제부터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통통한 볼살이 귀엽던 복주에서, 다시 완벽 몸매의 이성경으로 돌아올 시간이 된 것이다. 복주와의 이별을 앞두고, 이성경은 눈에 가득 눈물을 채웠다.

"이제는 복주인 척해도 더 이상 복주는 아니잖아요. 복주의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복주일 수 있었던 거니까. 이젠 복주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복주에게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어요. 너무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만나, 감사하게도 사랑까지 받을 수 있었어요. 이제는 복주랑 안녕해야 하는데..."

이성경은 복주를 연기하며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다고 말했다. 당분간 연애 생각이 없을 정도로. 혼자서도 할 게 많고, 혼자 보내는 주말이 기대되고 행복하다는 그녀는 "남자에 대한 환상도, 외로움도 안 느낀다. 가족과 친구들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지만, 그건 남자친구가 있었대도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락없는 복주다. 사랑에 빠지기 전, 준형(남주혁 분)을 그저 남사친으로만 대하던 복주. 물론 복주는 결국, 준형이와 사랑에 빠졌지만.

이성경의 대답, 제스처, 말투에는 여전히 복주가 담겨있었지만,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녀는 더이상 복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복주야 안녕, 사랑해~"를 외치는, 눈물 맺힌 이성경의 눈을 마주한 순간, 끌어안고 같이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성경이 아직 복주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것처럼, 나 역시 아직 복주를 놓아줄 준비가 안 됐던 모양이다.

이성경은 아직 차기작을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뭐가 됐든, 어쩐지 앞으로 이성경의 모든 것을 힘껏 응원하게 될 것만 같았다. 복주에 대한 의리로, 복주를 멋지게 연기해준 답례로. 그러니 이제는 나도 "복주야 안녕, 사랑해~". 

이성경, 요정 납시오! MBC 수목 미니시리즈 <역도요정 김복주>에서 역도선수 김복주 역의 배우 이성경이 12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복주와 헤어질 시간. "복주야 안녕, 사랑해~"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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