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 구라모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유키 구라모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유키 구라모토 ⓒ 크레디아


올해의 전석 매진에도 이유가 있었다. 한국인이 오랫동안 사랑해온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가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순수한 음악의 힘으로 관객에게 행복을 선사했다.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이어온 유키 구라모토는 2016년엔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피아니스트 지용과 함께 무대를 꾸몄다. 지난 25일 크리스마스의 평온한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 공연을 찾았다.

젊음의 에너지, '종달새의 비상' & '랩소디 인 블루'

신지아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 크레디아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가 이날 공연의 문을 활짝 열었다. 백윤학의 지휘로 첫 곡 '캐럴 오브 더 벨즈'가 연주됐다. 권위적이지 않은 통통 튀는(?) 백윤학의 지휘 스타일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북돋웠다. '캐럴 오브 더 벨즈'는 우크라이나의 작곡가 레온토비치가 작곡한 곡으로, 클래식뿐 아니라 재즈, 록, 팝 등 여러 스타일로 편곡되어 연주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다음은 '친구들'이 차례로 1부 무대를 채웠다.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선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종달새의 비상'을 연주했다. 영국의 작곡가 본 윌리엄스가 작곡한 이 곡은 피겨 선수 김연아의 2006-2007시즌 프리 스케이팅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 윌리엄스가 영국의 시인 조지 메레디트의 시에 대한 답가로 1914년 작곡한 곡이다. 신지아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연주로 종달새가 창공을 나는 정경을 표현했다. 신지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로 201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했다.

지용 피아니스트 지용

피아니스트 지용 ⓒ 크레디아


다음 무대는 피아니스트 지용의 차지였다. 역시 쿱 오케스트라와 함께였다. 신지아의 '종달새의 비상'이 고요한 들판을 산들산들 거니는 기분이었다면, 지용의 무대는 뉴욕의 한복판을 성큼성큼 달리는 기분이었다. 20세기 초 미국음악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연주했기 때문이다. 곡 자체의 에너지도 다이내믹한데, 거슈윈의 출생지인 뉴욕에서 날아온 지용이 연주하니 그야말로 미국 한복판에서 춤추는 듯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음악에 몰입한 지용은 의자에서 들썩이며 온몸으로 '랩소디 인 블루'를 연주했다. 덕분에 재즈의 흥겨움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지용은 2012년 영 콘서트 아티스트 국제 오디션 우승자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이다.

유키 구라모토의 서정성,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다

유키 구라모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유키 구라모토

명곡 '레이크 루이스'의 작곡가 유키 구라모토. ⓒ 크레디아


2부는 이날의 '타이틀 롤'인 유키 구라모토의 본격 무대였다. 그는 성실한 준비가 돋보이는 큐 카드를 참고해가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줄곧 우리나라 말로 연주할 곡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힘든 외국어 구사 중에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았다. 산타 할아버지 같은 친절하고 푸근한 진행에 객석에서도 편안한 웃음이 이어졌다. 다른 클래식 공연과 다르게 마이크를 잡고 연주가가 직접 말을 건네니 더욱 특별한 교감이 이뤄졌다. 그는 "올해도 한국 관객과 함께, 또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연주를 시작했다.

첫 곡은 신지아와 협연으로 'Warm Affection', 'Tears For You', 'Lake Louise'를 연주했다. 특히 'Lake Louise'는 유키 구라모토가 1984년경 작곡한 곡으로 30년 넘게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대표곡이다. 캐나다 록키의 보석으로 불리는 루이스 호수의 맑은 기운이 고스란히 담긴 이 곡은 압도적인 서정성을 자랑한다. 작곡뿐 아니라 연주에 있어서도 유키 구라모토는 곡의 서정성을 극대화하는 피아노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원작자의 '아우라'를 뿜었다. '감미롭다'는 평범한 말로는 부족할 만큼 순수하고 낭만적 연주였다.

다음은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독주로 크리스마스 캐럴 5곡의 메들리가 이어졌다. '엔터테이너'에 섞인 '징글벨', '루돌프 사슴코', 'Silent Night', 'Winter Wonderland', 'When You Wish Upon A Star'가 마치 한 곡처럼 유연하게 묶였다. 이날 크리스마스 콘서트의 하이라이트 무대였다. 5곡 모두 귀에 익숙한 곡이지만 듣기에 단조롭지 않고 새로웠다. 유키 구라모토의 손을 거치며 클래식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편곡된 버전은 마치 조지 거슈윈이 클래식에 재즈를 녹인 것처럼 전혀 다른 곡으로 재탄생했다. 멜로디 위주에서 벗어나 화음으로 더없이 로맨틱한 곡을 만든 것. 캐럴로도 이렇게 '풍성한' 감성을 자아낼 수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독보적인 그의 서정성은 오래 사랑받는 첫 번째 이유처럼 보였다.

1951년 일본에서 태어난 유키 구라모토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학창시절 라흐마니노프와 그리그 등의 피아노 협주곡에 심취했고, 피아노 연주는 물론 클래식 작곡과 편곡에 두각을 나타냈다. 영국 런던 필하모니와 협연한 앨범 <REFINEMENT>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음악성 높은 곡들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1999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 첫 내한공연에서 매진을 기록한 이후 매년 내한공연을 열고 있으며 여전히 매진 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반짝반짝' 앙코르로 완성된 크리스마스 

백윤학 지휘자 백윤학과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

열정적 지휘를 선보인 백윤학 지휘자. ⓒ 크레디아


마지막 프로그램은 유키 구라모토와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의 협연이었다. 'Meditation'부터 유키 구라모토가 1987년 작곡한 'Romance'까지 따뜻한 분위기를 품은 6곡이 연주됐다. 피아노 연주자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섬세히 교감하는 백윤학 지휘자의 따뜻한 리더십이 돋보였다. 또한,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하나의 악기처럼 조화로운 연주를 펼쳤다. 특히 지용이 피아노 협연한 '랩소디 인 블루' 도입부의 솔로 클라리넷 등 개별 활약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날 또 하나의 백미는 앙코르 무대였다. 다시 관객 앞에 등장한 신지아는 머리에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장식을 얹고 깜찍한 모습을 선보였다. 앙코르곡은 유키 구라모토가 편곡한 'It's Christmas Time', 'Sleigh Ride' 그리고 'Christmas Melody'였다. 쿱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형형색색 머리띠를 하고 나타나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무대의 불이 꺼지고 캄캄해지자 머리띠의 불빛이 반짝반짝 빛났고, 그 속에서 백윤학 지휘자는 춤이라고 해도 될 만한 역동적 지휘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관객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유키 구라모토와 그의 친구들 신지아, 지용이 건넨 선물은 내년 크리스마스까지 견딜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기쁨이었다.

백윤학 지휘자 백윤학과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

환상의 호흡을 선보인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 ⓒ 크레디아



유키구라모토 신지아 지용 크리스마스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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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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