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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며 다음 해를 준비하자고 말하지만, 막상 그럴 여유를 갖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올해 읽은 책을 뒤적이며 감상을 되살린다거나 읽으려다 읽지 못한 책을 살피며 아쉬움을 달래기보다는, 새해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책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연말에 뜻하지 않은 휴가를 얻었다. 11월 초에 결핵 진단을 받아 연말까지 휴직을 하게 되어 두 달 동안 병실과 집에서 조용히 지내게 된 탓이다. 십여 년 이상 일을 해오며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연말 풍경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낯설고 어색하다.

시간이 남으니 생각이 늘어나는데, 이상하게도 내일보다 어제로 향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읽자' 지면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올해의 책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싶어 2016년 독서 기록과 구매 목록, 각종 지면과 방송에서 소개한 책을 뒤적여보았다.

역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나쳤을 책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들 올해의 무엇을 정리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간 '읽자' 지면에서 애써 모른 척하고 지나간 올해의 책들과 이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한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만큼 올해에는 올해에만 그칠 수 없는 책이 여럿이었다.

기록의 의미

올해의 책을 돌아보는 일 자체가 기록이지만, 이는 책의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눈여겨볼 책이 둘인데, 우선 대한민국 국회가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필리버스터' 현장을 그대로 담아낸 책 <필리버스터>다.

지난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무려 192시간 27분 동안 이어진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은, 법이 무엇을 제한하는 데에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도 작동할 수 있다는 놀라운 경험을 전해주었다.

현재 대통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논란과 이에 대응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불과 몇 달 전에 이런 성취가 있었다는 걸 믿기 어려울 지경이지만, 반대로 이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의 부제가 말하는 '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어질 수 있는지 되새길 수도 있겠다.

두 번째 기록은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정리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다. 이 책은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해서 침몰할 때까지 101분 동안 세월호 안과 밖에서 벌어진 일을 가능한 모두 찾아내고 시간별로 정리해 그날의 상황을 온전하게 복원했다. 국민 대다수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여전히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고통스럽고 미안하고 불안하고 안타깝다.

반면 그날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기록한 이들의 용기와 책임감이 존경스럽다. 그날의 시간을 바로잡는 일은 기울어진 대한민국을 바로잡는 일과 다르지 않을 터. 박근혜 대통령이 이 책에 새겨진 그날의 기록을 남은 임기, 그게 어렵다면 남은 삶 속에서라도 꼭 마주하길 바란다. 대다수 국민이 알고 있는 걸 대통령만 모르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필리버스터_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 / 이김 편집부 엮음 / 이김
 필리버스터_민주주의, 역사, 인권, 자유 / 이김 편집부 엮음 / 이김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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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그날의 기록 /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 진실의힘
 세월호, 그날의 기록 /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 진실의힘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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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보는 시선

아마 다음 두 권의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 까닭은 지금 내가 격리된 1인 병실에서 열흘 넘게 홀로 지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한반도 남녘이라는 섬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국경, 그리고 세계라는 감각은 물리적으로 체험하기 어려운 영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히나 세계 감각을 전하는 책을 만나면 이런 한계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이런 점에서 20세기 현대사의 주요한 협상을 골라 복잡한 국제관계 속 협상의 장면을 이해하기 쉽게 전하는 <협상의 전략>과 과거의 실크로드만 상상하며 말로만 듣던 유라시아라는 대륙이 오늘날 어떻게 연결되며 새로운 세계체제를 만들어 가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 <유라시아 견문>을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다.

두 책 모두 한국 저자의 저작으로 <협상의 전략>은 참여정부 시절 여러 대북 협상에 직접 참여한 김연철 교수, <유라시아 견문>은 역사학을 전공하고 3년째 유라시아 견문 기획을 진행하는 이병한 저자의 저작이다. 두 책은 '세계를 보는 시선'이라는 감각뿐 아니라 같은 문화권에서 살아온 이들의 글을 읽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한계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감각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그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같은 과정과 고민을 거쳤을 터라 이들의 문제의식과 새로운 제안이 훨씬 큰 공감을 전하는 게 아닐까.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긴 시선으로 미래를 전망하려는 이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올해의 책을 꼽으면 열 권이나 스무 권 정도 정신없이 살피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돌아보니 역시 지금 눈앞에 놓인 현실을 넘어서는 데 필요한 책을 고르게 되니 재미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자유롭게 상상하며 전에 없던 이야기를 나누고 즐기기에는 오늘, 그리고 당장 내일 마주해야 할 현실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루 빨리 이 현실을 타개하고 현실 너머를 상상할 자유를 찾을 수밖에. 내년 이맘때에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훨씬 다양한 올해의 책을 마음 편히 권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유라시아 견문_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 /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유라시아 견문_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 /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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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상의 전략_세계를 바꾼 협상의 힘 / 김연철 지음 / 휴머니스트
 협상의 전략_세계를 바꾼 협상의 힘 / 김연철 지음 / 휴머니스트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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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태근 님은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 MD입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이 글은 월간 <참여사회>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올해의책, #필리버스터,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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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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