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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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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는 어린 마음에 할머니 냄새가 시큼하다고 싫어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그 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냄새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 100살 넘은 나무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 

천정 철거하는 J
 천정 철거하는 J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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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밑 작업이 필요하다. 밑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바깥채 공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흙먼지 날리는 작업을 하려니 영 마음이 잡히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100살 가까이 된 안채에서 이제는 필요 없는 내장과 구조들을 모조리 떼어내어야 했다. 바깥채 공사를 했을 때, 벽지 제거의 악몽이 다시금 떠올랐다.

가장 먼저, 안채 지붕의 구조(대들보와 서까래)가 튼튼하게 버텨주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천장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1차로 천장 합판을 모두 떼어내었다.

그러자 합판 안쪽에 각목(현장에서는 '다루끼'라고 불린다. 아마도 일본식 명칭의 잔해인 것 같다)으로 대어놓은 상이 나오는데, 이는 천장에 합판을 고정시키기 위한 역할이다.

우리는 여기서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상을 살리고 합판을 새로 쳐서 깔끔하게 천장 마감을 할 것인가. 아니면 모두 제거하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노출되도록 살릴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실제로 천장을 모두 트고 서까래를 살리게 되면 그만큼 단열효과가 줄어든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욱 더울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을 그대로 두고 천장을 마감하자니, 천고가 너무 낮아 생활하기 불편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서까래를 살려 옛집의 멋을 살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점이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서까래를 드러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여름철 더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차차 고민해보기로 했다.

각목을 제거하고 나니 얇은 합판이 나왔다
 각목을 제거하고 나니 얇은 합판이 나왔다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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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합판 안쪽에는 여러겹 덧붙여진 벽지가 나왔다
 얇은 합판 안쪽에는 여러겹 덧붙여진 벽지가 나왔다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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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목들을 제거하고 나니, 그 안쪽에 또 얇은 합판들이 나왔다. 그것들을 제거하니 수십 겹의 짱짱한 벽지들이 또 나왔다. 오랜 세월 덧붙여진 벽지들이 이 집이 견뎌온 덥고 추웠던 제주의 여러 세월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천장에 붙은 벽지를 열심히 떼어내고 나니, 드디어 대들보와 서까래, 흙을 바른 처음의 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집이 워낙 오래되어 나무들이 다 상하지는 않았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실제 그 모습을 드러낸 서까래들은 생각보다 상태가 매우 괜찮았다.

가장 안쪽에서 나타난 천정의 처음 모습
▲ 대들보와 서까래 가장 안쪽에서 나타난 천정의 처음 모습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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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르신들 얘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얼마 되지 않은 나무들보다 오랜 세월을 보내온 나무들이 더 튼튼하고 견고하다고 한다. 구들장에 불을 떼어 나무들이 까맣게 그을렸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벌레를 먹지 않고 오랜 세월을 튼튼하게 이 집을 받치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천장에 말린 흙의 상태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랜 세월 다져지고 굳어진 모습으로 천장에 붙어있었다. 물론,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부분은 보수해주기로 했다. '이 오래된 집을 과연 우리 손으로 고쳐서 살릴 수 있을까...' 하던 걱정들이 100년 가까운 세월을 튼튼하게 버텨주고 있는 천장의 나무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조금씩 사라져갔다.

작은방 벽지 제거 후
▲ 작은방 작은방 벽지 제거 후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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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다른 철거한 집의 대들보나 서까래를 그대로 들고 와 다시 썼다고 한다. 그러니, 어쩌면 이 나무는 이 집이 지내온 세월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지내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오랜 세월을 그 거센 제주의 바람을 맞아오며 이 집을 지켜온 것이다. 가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나 상황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결정해버리곤 한다.

100년이 된 이 집이 너무 오래 되었으니, 분명히 그 속까지도 많이 상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부수고 새로 건물을 올리라는 얘기도 그러하다.

큰방 천정과 벽지 제거 후의 모습
▲ 큰방 큰방 천정과 벽지 제거 후의 모습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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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 이 오랜 보물섬 같은 집을 부숴버렸다면, 아마 이 오랜 세월을 견고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분명 나무들이 썩을 대로 썩어있을 거라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 생각처럼 그리 가볍거나, 약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콘크리트나 다른 재료들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견고하고, 따뜻하고, 인내심이 있는 것이 바로 자연에서 온 것들이다.'



흙이나 돌, 그리고 나무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100년 된 집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나무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큰 방은 천장을 뜯어보니, 거실보다는 흙의 상태가 나빠 보였다. 떨어져 나온 부분이 꽤 많았다. 작은 방은 천장을 뜯어내지 않고, 그대로 보수해주기로 했다. 작고 아담한 느낌의 방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덧붙여진 예쁜 문양의 벽지들이 나왔다
▲ 벽지 제거 오랜 세월 덧붙여진 예쁜 문양의 벽지들이 나왔다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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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철거를 마치고, 오랜 세월 동안 덧붙여온 벽면의 벽지를 떼어내는 일을 했다. 분명 오래된 것들인데 어찌나 예쁜 문양들이던지! 벽지를 떼어내는 내내 감탄이 이어졌다. 이대로 다 태워버리기엔 아까워 조금씩 떼어내어 남겨두기로 했다. 우리의 보물이 하나 더 늘었다.

#. 옛것들의 가치

오래된 문
 오래된 문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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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자물쇠
 오래된 자물쇠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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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구두
 오래된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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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신문 광고
 오래된 신문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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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그릇들
 오래된 그릇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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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스위치
 오래된 스위치
ⓒ 박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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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가까이 된 집 안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우리는 꽤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오랜 세월을 이 집과 함께 했을 옛것들은 그것들이 지내온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어서인지 새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그것들만의 빛바랜 색감과 세월의 냄새를 풍기곤 한다. 이런 오랜 것들을 찾아낼 때의 카타르시스는 실로 엄청났다.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가서 맡던 그 냄새가 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는 어린 마음에 할머니 냄새가 시큼하다고 싫어했는데, 이제와 생각하면 그 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냄새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모든 엄마의 냄새는 그들의 엄마의 냄새. 즉, 할머니 냄새를 닮아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안채  한쪽 구석에는 반닫이장이 하나 놓여있었다. 아마, 예전에 살던 주인 할머니가 이 집에 시집올 때 들고 왔던 혼수가 아닐까 싶다. 그 옛날 귀한 물건을 고이 모셔두었을 그 반닫이장을 우리는 이 오랜 집과 함께 선물 받았다.

반닫이장은 카페 한쪽에 놓아두었는데, 한 번씩 문을 열 때면 오래되어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하지만 왠지 기분 나쁘지 않은 냄새이다. 퀴퀴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시골냄새.

큰 방의 한 쪽 구석에 놓여있던 나무 문살과 창호지로 만들어진 미닫이 문, 열쇠는 어디 있는지 찾아볼 수 없지만 반닫이장의 자물쇠로 쓰였을 오랜 주물 자물쇠, 먼지가 쌓였지만 누군가 귀하게 모셔두고 신었을 가죽구두 한 켤레, 여러 겹의 벽지를 떼어내고 안쪽에 붙어있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신문광고, 오래된 장식장에서 나온 꽃무늬 그릇들.

그리고 옛날 할머니 댁에 놀러 가서나 보았던 동그란 스위치들이 그러했다. 적어도 내 나이보다 오래 되었을 이 옛것들은 먼지 쌓이고, 구멍 나고, 빛이 바랬지만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기에 공장에서 갓 나온 새 물건보다도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우리는 버림에 익숙하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이 너무 많이 시장에 나오기 때문일까? 조금만 낡거나 혹은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버리고 있다. 과연 귀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하나라도 있을지 궁금하다.

'귀하다'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아끼고 보살피게 되는 것이다. 낡았다는 이유로 버릴 수 없는 그 무엇. 옛것들은 또한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한 '무언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제주농가주택, #오래된집에머물다, #옛집고치기, #옛것의 가치,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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