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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유진(민언련 정책위원),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정민영(변호사),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연우(세명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돌아서자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이 있다고 표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돌아서자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이 있다고 표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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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기자회견의 들러리로 앉아있는 광경, 이번 정부 들어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은 드물게 있는 기자회견 때마다 각본에 따라 질의응답을 했다. 질문할 사람도, 질문도, 응답도 다 정해져 있는데 대변인은 '질문 있는 기자 손을 들라'며 국민들 앞에서 회견 장면을 연출했다. 청와대의 국정홍보 쇼에 동원된 기자들을 보며 착잡했지만, '저 사람들이라고 그러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에 짠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몇 달 동안 이어진 '최순실 정국'을 언론이 주도한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에는 그동안 언론이 권력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탓도 크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언론이 박 대통령의 주변을 더 적극적으로 검증했다면? 2014년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이 터져 나왔을 때 언론이 의혹의 실체를 더 물고 늘어졌다면?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더 파고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처참한 결과를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자, '저항'해서 '정상화'하라

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새삼 관심이 쏠린 지금이 기회다. 풀어나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검증의 기회를 대폭 늘리는 것이 최우선과제다.

우선, 지금껏 되풀이되어 온 '짜고 치는' 대통령 기자 회견을 기자들이 먼저 거부해야 한다. 통상 대통령 기자회견을 앞두고 청와대와 출입기자들은 질문 개수와 내용 등에 대해 사전 조율을 한다. 그런데 대략적인 질문 주제에 대해 공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질문지, 질문할 기자, 순서까지 미리 정해놓으면서 아예 각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원치 않는 질문이 제외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해서는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언론이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사전조율 없이 대통령과 기자들이 질문을 주고받다 보니,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는 질문이 나오고, 대통령이 기자와 설전을 벌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나서서, 앞으로는 사전 조율 없는 생방송 기자회견이 아니라면 기자회견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월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월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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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으로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부터라도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철저한 검증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민들이 방송으로 박 대통령의 토론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단 3번이었다 (공직선거법에서는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후보자토론회는 3번 이상 할 것을 정하고 있다). 그나마도 양자 토론이 아니라 다자토론으로 진행되다 보니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기 어려웠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후보들에게 배포하고 후보들이 준비된 답안을 읽어가는 경직된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후보자의 생각을 검증할 수도 없었다. 결과를 두고 하는 얘기지만, 지난 대선에서 충분한 토론의 기회가 있었다면 국민들이 박 대통령의 진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 횟수 자체를 대폭 늘리는 문제, 토론의 방식에 있어 현장성을 강조하는 문제 등을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청와대는 12월 초 대통령이 최근 벌어진 일과 관련해 끝장토론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간 토론을 피해 온 대통령의 성향과 그의 지금 처지를 감안할 때, 토론다운 토론이 정말 진행될지 매우 의문이다. 만약 이번에도 청와대가 일방적 정견발표회를 진행하려 한다면, 기자들이 이를 거부해야 한다.

백악관 최장수 출입기자였던 헬렌 토마스가 했다는 말들이 요즈음에 와서 유독 뼈아프게 들린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저자는 정민영(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민언련 정책위원)입니다.



태그:#대통령 3차 담화, #기자 질문, #대통령 질문, #기자회견 거부, #시시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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