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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외장 하드를 뒤적거리며 예전 사진들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하다 보니 유독 음식 사진, 그중에서도 제주도에서 찍은 음식 사진이 많다. 딱히 맛집 포스팅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다니는 단골집 사진이라도 몇 장씩 찍어 놓은 것이 제법 모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지인들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제주에 대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바로 이것인 것 같다.

"제주에 숨겨진 맛집을 소개해주세요. 관광지 음식점 말고 도민들이 자주 가는 숨겨진 곳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숨겨진 맛집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맛집은 숨겨지지 않으며, 숨겨졌다면 맛집이 아니다.'

요즘 네티즌들이 맛집 포스팅에 얼마나 열정적인가. 여행객이라고는 1년에 몇 명 오지도 않을 것 같은 한적한 시골 마을, 허름한 음식점까지도 온라인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음식에 대해 한 꼭지나마 글을 남기려는 건 제주 이야기를 하며 음식 얘기를 쏙 빼놓는다는 게 뭔가 허전하기도 하거니와, 제주 초보 여행객 중 일부 분들이 관광지 주변 비싸고 맛없는 음식점만 용케 골라 다닌 후 '제주 음식은 비싸기만 하고 맛도 없다'는 편견에 빠지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고픈 마음에서다.
애월에서 수확한 초당옥수수와 옥수수수염차, 한림에서 수확한 토마토, 봉개동 젓소 목장의 우유와 치즈, 그리고 제주 밀로 만든 식빵. 제주 로컬 푸드로만 차린 호화스러운 아침메뉴다. ⓒ 이영섭
제주 음식에 당최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도 꽤 되건만 다행히 우리 가족은 제주 음식이 입에 잘 맞는 편이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극적인 관광지 음식이 아닌, 진짜 제주 음식은 대체로 양념을 과하게 하지 않고 식재료의 맛과 풍미를 살리는데 주력하며, 간도 그리 세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다. 또한 고추장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주로 된장으로 간을 한다. 때문에 넘치는 양념과 간이 강한 음식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는 다소 싱겁고 밍밍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양념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데 주력하기에 제주 음식에서는 재료의 질과 신선도가 정말 중요하다.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 중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전복과 소라, 문어, 옥돔, 갈치 같은 고급 해산물이나 제주를 상징하는 귤, 한라봉, 천혜향, 황금향 등의 감귤류는 두말할 필요 없거니와 또 하나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가 바로 돼지고기와 닭고기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싼 흙돼지 전문점이나 닭요리 전문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동네 농협하나로마트에서 판매하는 제주산 돼지고기나 닭고기에 대한 얘기다. 육지에 비해 제주산 육류는 잡내가 거의 없고, 육질이 부드러우며 감칠맛이 강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신선도가 높은 것도 한몫을 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인 품종이나 사육환경이 다른 게 이유가 아닐까 싶다(최근 축사 악취 문제로 육지산 돼지고기 반입을 허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해가 가면서도 안타깝다).

때문에 나는 제주에서 돼지고기를 먹으려는 분에게 굳이 음식점을 추천하지 않는다. 품질 좋은 제주산을 사용하는 집은 너무 비싸고, 싼 집의 경우 수입산을 쓰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냥 동네 마트에 가서 직접 제주산을 사다가 숙소에서 구워 먹는 것이 훨씬 저렴하면서 맛도 좋다. 닭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퍽퍽한 식감 때문에 먹기가 쉽지 않던 닭가슴살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지 제주에 와서 처음 알았다. 팬에 살짝 기름을 두르고 구운 닭가슴살 스테이크는 쫄깃한 식감과 풍부한 육즙 때문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제주 동부를 대표하는 식재료인 당근과 여름에 잠깐 스쳐 지나가며 우리를 애태우는 초당 옥수수, 멜론 참외도 빼놓을 수 없는 제주의 먹거리다. 여름 하니 신엄리에서 생산되는 수박도 생각난다. 애조로 길가에 과일 판매상 분에게 수박 당도가 어떤지 물었더니 일단 한 번 잡숴보시라고 공짜로 안겨주신 수박 한 덩이. 육지 수박에 비해 크기가 작으면서도 당도와 수분이 풍부한 신엄리 수박에 반해 여름 내내 그 판매상 분에게 수박을 대놓고 사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과한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좋은 재료를 쓰면서도 비싸지 않은, 혹은 다소 비싼 대신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는 곳, 이런 식당 취향에 공감한다면 다음에 소개하는 몇 가지 먹거리와 음식점에 한 번 찾아가본다 해도 말리지 않겠다.

1. 플리마켓에서 판매하는 초당옥수수 파치

육지에서도 수확이 되기에 이미 먹어 본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름에 제주로 여행을 왔다면 제철에 막 수확해서 판매하는 신선한 제주 초당옥수수는 꼭 한 번 먹어보길 권해드린다. 여름철이면 농협하나로마트나 오일장에서도 판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농수산물을 전문으로 하는 아라동 지꺼진장 등의 플리마켓에서 가격이 저렴한 파치(흠집이 있는 것)를 구입하길 추천 드린다. 파치의 경우 10개 들이 한 묶음에 5000원 내외에 구입이 가능하다.

초당옥수수는 쪄서 먹는 것도 맛있지만 껍질을 벗기고 씻어서 전자레인지에 5분 정도 익혀 먹어도 좋다. 마치 구운 옥수수를 먹는 듯한 식감과 극대화된 당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쫄깃하면서 찰진 옥수수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초당 옥수수가 퍽퍽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주의.
초당옥수수는 쪄서 먹어도 좋고,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어도 좋고, 그냥 생으로 먹어도 맛있다 ⓒ 이영섭
2. 신엄리 수박

공항에서 애월 방향으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신엄리라는 작은 마을을 통과하게 된다. 여름이 되면 이 신엄리 일대와 애조로 근방에는 수박을 판매하는 간이 상점들이 줄을 잇는다. 육지 수박에 비해 신엄리 수박은 크기는 조금 작지만 껍질이 얇고 과육의 당도와 과즙 함량이 높다.

간이 상점이지만 근처 농민들이 직접 수확하여 여름 내내 한 자리에서 판매하기 때문에 혹시나 구입한 수박이 덜 익거나 농익은 경우에도 언제든 반품/교환이 가능하니 안심해도 된다. 여름에 제주에 왔다면 굳이 마트 같은 데서 수박을 사기보다는 직접 산지에서 구입하길 추천 드린다. 
당도가 어떠냐는 질문에 대답 대신 공짜로 던져주신 수박 한 덩이. 그 맛에 반해 지난 여름은 신엄리 수박과 함께 했다 ⓒ 이영섭
3. 진드르 메론참외

제주시를 벗어나 조천읍으로 막 들어서는 관문인 신촌리는 예전부터 진드르 수박과 참외로 유명한 곳이다. 한여름이면 이 신촌리 대로변에 수박과 참외를 판매하는 간이상점이 이곳저곳 개설되는데 이 곳에서 메론 참외를 맛보는 것이 가능하다.

육지에서도 재배가 되지만 제주 메론참외는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식감과 맛을 갖고 있다. 육지에서와 달리 제 철에는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으니 꼭 한 번 맛보길 바란다.
오직 한 여름, 그것도 신촌리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멜론참외의 풍미 ⓒ 이영섭
4. 청귤

예전에는 판매가 금지되어 제주 사람들만 맛볼 수 있었던 청귤이 올해부터는 일반에도 판매가 가능해졌다. 사실 '청귤'은 제주 고유의 재래품종을 뜻하는 말로,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청귤은 풋귤(덜 익은 귤)이 정확한 명칭이다. 하지만 덜 익은 귤을 청귤로 부르는 것이 너무 보편화되다 보니 덜 익은 상태로 판매되는 파란 귤을 뜻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아직 귤 맛을 보기에는 너무 이른 여름철, 미리 수확되어 귤청 등의 재료로 사용되는 청귤은 감귤뿐 아니라 한라봉이나 천혜향 등의 고급 품종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일반적인 감귤에 비해 당도와 향이 강한 한라봉 청귤을 귤청으로 만들어 탄산수에 타서 마시거나, 혹은 따뜻한 차로 마시는 맛은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을 정도다.
인심좋은 밭주인을 만나 한라봉 청귤을 한 가득 따왔다. 귤청을 만들어 냉장고에 가득 채우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 이영섭
5. 구좌 당근즙을 후식으로 제공하는 구좌 '수다뜰'

제주하면 말 만큼이나 유명한 게 그 말들이 좋아하는 당근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구좌 당근은 식감과 당도 면에서 국내 최고의 당근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맛을 자랑한다. 여행객으로 와서 당근을 구입해 요리를 만들기는 힘들 테니 구좌 당근으로 만든 당근즙을 추천 드린다. 구좌 '수다뜰'은 원래 성게 칼국수로 유명한 음식점인데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후식으로 직접 수확한 당근을 즉석에서 착즙해준다.

칼국수 자체도 맛있지만 100% 당근으로만 만든 그 당근즙을 한 번 맛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당근주스는 그냥 '당근 맛 음료'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수다뜰에서 후식으로 제공되는 당근 즙. 요즘에는 단품으로도 판매하는 듯하다 ⓒ 이영섭
6. 제대된 정식을 맛볼 수 있는 함덕 '햇살가득돌담집'

제법 알려진 집이지만 그래도 제주 맛집을 다루면서 이 집을 빼놓으면 섭섭할 듯하다. 조천읍 함덕리에 위치한 이 집의 메뉴는 쌈밥 정식 단 하나인데 주 메뉴인 고기를 돼지고기로 할 지, 오리고기로 할 지만 선택이 가능하다(개인적으로는 돼지고기를 추천한다). 1인당 1만2000원이라는 정식치고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돼지 양념구이와 고등어구이, 신선한 제주산 채소로 만든 다양한 반찬, 그리고 직접 수확한 유기농 쌈이 한가득 제공된다.

특히 인원 수에 따라 크기가 점점 커지는 고등어구이의 풍부한 육즙과 풍미는 일반적인 음식점에서 제공되는 고등어구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며, 다양한 종류의 쌈 채소를 골라 먹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1만2000원이라는 가격이 한 끼 식사비로는 다소 비쌀 수도 있지만 메뉴의 다양함과 질을 생각하면 결코 아깝지 않아 제주도민들도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다.
이것저것 다양한 메뉴를 먹고 싶을 때는 꼭 이 곳을 찾는다. ⓒ 이영섭
7. 가성비 최고의 해물짬뽕과 탕수육, 봉개동 '오야짬뽕'

개인적으로 중화요리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기름지고 MSG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그 느낌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화요리 맛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 자부한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함께한 상사가 중화요리를 너무 좋아한 데다가 거래처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때도 가장 무난한 중화요리 집을 자주 갔기 때문이다.

그 덕에 서울에 있는 허름한 중국집부터 탕수육 한 그릇에 몇 만 원씩 하는 고급 음식점까지, 수도권에서 이름있다는 중화요리 집은 안 가본 데가 없는 듯하다. 여하튼 중화요리 자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기에 제주에서 유명한 해물짬뽕 집을 몇 곳 가봤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서울 맛집에서 먹던 그 맛도 그대로, 사악한 가격도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은 조금 다르다. 봉개동 대로변, 예전 달빛봉봉베란다 카페가 있던 자리 근처에 위치한 동네 중국집 '오야짬뽕'의 해물짬뽕은 일단 맛에 있어서 서울이나 제주 다른 맛집에 비해 손색이 없다. 들어가는 해물의 양 또한 부족함이 없으며 결정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 일반 짬뽕이 6000원이고 해물이 한 가득 들어간 해물짬뽕이 1만 원, 탕수육 중 사이즈가 1만5000원, 소 사이즈는 1만 원이다.

개인적으로는 짬뽕도 짬뽕이지만 이 집의 백미는 탕수육이다. 이 집에서 1만5000원에 판매하는 탕수육의 맛과 양은 서울 유명 중화요리 음식점의 2만~3만 원대 탕수육에 비해 밀리지 않는다. 2인이 가서 짬뽕이나 짜장 한 그릇에 탕수육 소 사이즈를 시키면 저렴한 가격에 상당히 수준 높은 중화요리를 즐길 수 있다.
가성비에 있어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는 오야짬뽕의 탕수육 ⓒ 이영섭
8. 저렴하게 문어 맛을 보고 싶다면 신흥리 '문개항아리'

제주에 살아도 물질을 하지 않는 이상 문어를 먹기란 쉽지 않다. 마트에서는 한 마리에 몇만 원씩 하는 큰 사이즈만 판매하는 데다가, 문어가 들어간 해물탕, 찜 등의 음식은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어 특유의 쫄깃하고 달콤한 육질이 그리울 때면 조천 해안도로에 위치한 '문개항아리'를 찾곤 한다.

이 집의 메인메뉴인 문어라면의 가격은 8000원. 홍합이나 냉동 게, 조개, 새우 등이 들어간 일반적인 해물라면 가격이 6000~8000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주인장이 직접 잡은 돌문어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문어 라면의 가격이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이즈는 작지만 신선도가 높은 문어의 식감이 라면과 꽤 잘 어우러져 풍미가 잘 느껴진다. 주머니는 가벼운데 제주에 온 김에 문어는 꼭 먹어야겠다면 이 집을 추천한다.
돌문어와 꽃게, 딱새우가 들어간 문개항아리의 해물라면 ⓒ 이영섭
9. 최고의 미역무침, 가파도 '올레길 식당'

본래 가파도 미역이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먹는 미역의 맛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난봄, 청보리 축제 기간에 맞춰 가파도를 찾았다가 무심코 들른 칼국수 집에서 만난 미역 무침. 이 미역 무침을 먹고 나서 기존에 먹은 미역 무침은 식초와 설탕으로 본래의 맛을 가린 가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식재료가 신선하고 맛있으면 아무런 양념도 필요치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하는 맛. 양파를 숭숭 썰어 넣고 간장으로 간을 한 이 미역 무침을 먹기 위해 봄이 되면 우리는 가파도행 배에 몸을 싣는다.
칼국수의 맛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미역무침의 향기만이 머리에 남아 있다 ⓒ 이영섭
10. 소고기를 푹 고아낸 곰탕, 연동 '재벌식당'

실컷 늦잠을 자고 싶은 휴일 아침, 가끔 새벽녘에 눈이 떠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기다렸다는 듯 연동에 위치한 재벌식당으로 향한다. 새벽 일찍 문을 여는 이 식당은 준비해놓은 곰탕이나 밥통의 밥이 떨어지면 영업을 중단하거나 아예 문을 닫아버린다. 문제는 아침에 처음 한 밥이 오전 10시만 되도 다 떨어진다는 것. 밥이 떨어지면 재벌식당의 삼촌들은 새로 짓는 밥이 다 될 때까지 손님을 받지 않는다. 고로 안전하게 먹고 싶다면 아침 일찍 발걸음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재벌식당의 곰탕은 서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서울에서 곰탕으로 유명한 집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마치 갈비탕과 같은 국물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재벌식당의 곰탕은 소고기를 잔뜩 넣고 푹 고아낸, 마치 설렁탕과 비슷한 국물이다.

기본적으로 고기도 꽤 많이 들어있는 데다가 국물도 진해 밥을 말아 한 그릇 먹으면 절로 기운이 솟아오른다. 문제는 재벌식당의 곰탕 가격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 8000원에서 시작한 곰탕 가격이 최근에는 1만2000원까지 올랐다. 사실 곰탕 한 그릇 가격으로는 비싸다. 그럼에도 굳이 여기서 언급한 이유는 밥과 국물이 무한리필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몸이 너무 허해 소고기 진국으로 몸보신을 하고 싶거나, 종일 강행군이 예정되어 있는 등산객이라면 재벌식당에서 곰탕으로 배를 가득 채우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밥과 곰탕의 양도 성인남자에게 벅찰 정도로 많다. 거기에 무한리필이 가능하니 곰탕으로 배를 가득 채우고 싶다면 추천 ⓒ 이영섭
11. 조수리 마을 안, 뜻밖의 돈가스 집 '데미안'

예전에 제주도 돈가스 하면 떠오르는 음식점이 몇 개 있었다.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집은 한림 해안도로에 위치한 서촌제(서울 촌놈 in 제주)였는데, 서울에서 내려온 시크한 주인장은 정해진 판매량이 완료되면 대낮부터 문을 닫아버렸다.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져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야 했고, 그마저도 늦게 가면 먹을 수 없는 돈가스 집.

그런 서촌제의 주인장이 언제인가 바뀌었다. 들리는 말로는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귀찮아진 주인장이 가게를 넘겨버렸다고 한다. 주인이 바뀐 후 영업시간도 좀 더 늘어나고 음식 맛도 그대로 유지되어 장사는 더 잘 되는 듯하지만 우리 입맛에는 뭔가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져 잘 찾지 않게 되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다.
주인이 바뀌기 전(좌)과 후(우) 서촌제 돈까스. 분명 메뉴도 그대로, 맛도 그대로, 서비스는 예전보다 더 좋아졌다. ⓒ 이영섭
그 후로 우리의 돈가스집은 '데미안' 한 곳으로 고정되어 버렸다. 이 돈가스 집은 객관적으로 음식점이 있을 곳이 아닌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관광지도 아니고, 올레길도 지나지 않는, 그렇다고 큰 대로변도 아닌 한경면 조수리 한적한 시골 마을 깊숙한 곳에 위치해있는 것이다.

이 데미안 역시 얼마 전에 주인장이 바뀌었는데, 다행히도 우리 입맛에는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 계속 찾고 있다. 이 집의 메뉴는 전복죽과 원두커피가 함께 제공되는 돈가스 정식 하나이며 가격은 1만2000원. 맛은 훌륭하지만 돈가스 가격 치고는 꽤 높다. 하지만 이 곳 역시 돈가스가 무한리필 된다는 사실. 어느 날 문득 돈가스가 배 터지도록 먹고 싶은 날이 온다면 그때 데미안으로 가면 된다.
맛도 훌륭하고 무한리필은 더 훌륭하다. 돈가스로 배를 가득 채우고 싶다면 데미안으로 가자 ⓒ 이영섭
12. 칼칼한 소고기 해장국과 물깍두기의 조화, 중문 '미향해장국'

아무래도 제주시 가까이 살다 보니 서귀포 쪽으로는 일 년에 몇 번 갈 일이 없다. 때문에 서귀포 음식점에 대한 정보라고는 기껏해야 여행객 시절 다니던 관광지 음식점들뿐이다. 하지만 이 집은 조금 특별하다. 제주에서는 돼지고기와 고기국수 등에 밀려 소고기 해장국을 찾기가 쉽지 않다(시내는 그나마 좀 낫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아침 10시는 넘어야 영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일찍 움직여야 하는 날에는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서귀포 근처에 머물 때면 언제나 미향 해장국을 찾았다. 육지 사람의 입맛에도 잘 맞는 소고기 해장국의 얼큰함과 기본 반찬으로 제공되는 새콤달콤한 물깍두기의 조화가 참 훌륭하다. 아쉬운 것은 해장국 가격이 7000원에서 8000원으로 올랐다는 사실. 또한 중문 외 다른 지역에도 몇 개 지점이 있는 듯한데 각 지점마다 맛이 좀 다른 듯하다(여기서 추천하는 미향해장국은 중문점에 한한다). 만약 서귀포가 아닌 제주시 쪽에서 이와 비슷한 해장국을 먹고 싶다면 함덕 해변 근처의 순풍 해장국을 추천한다. 맛도 비슷, 가격도 비슷하다.
한라산 등반을 앞두고 해장국 한 그릇. 시원한 물깍두기 국물이 매력적이다 ⓒ 이영섭
13. 따뜻한 국밥 한 그릇과 무 농약 감귤 체험, 봉개동 '가마솥 명가국밥'

앞서 언급했듯 제주에서는 돼지고기 위주로 음식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소고기를 이용한 음식을 먹기가 쉽지 않다. 특히 육지에서는 너무나 흔한 설렁탕이나 곰탕 등 소고기를 푹 우려낸 국물 요리를 사 먹으려면 한참을 헤매야 한다. 아무래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설렁탕을 취급하는 음식점에서도 직접 조리를 하기보다는 냉동식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도시에서 건너온 프랜차이즈는 논외로 하자).

제주에 놀러 와서, 혹은 제주로 이주해 생활하면서 가끔 제대로 된 설렁탕이 너무나 그리울 때면 봉개동 명도암 교차로에 위치한 '명가국밥'을 추천할 만하다. 설렁탕 외에도 이 집 사장님이 강력 추천하는 보말국, 시래깃국, 흑돼지 뼈다귀해장국 등 국밥 종류 모두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담백하면서도 진한 국물 맛을 보여준다. 국밥도 국밥이지만 직접 담근 열무김치와 무장아찌 등 기본 반찬도 맛깔나서 7000~9000원 내외인 국밥 한 그릇 값이 아깝지 않다.
새벽 5시부터 영업을 하기에 이른 새벽 한라산 등산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 먹는 흑돼지 뼈다귀 해장국 ⓒ 이영섭
명가 국밥에 들르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무농약으로 길러낸 감귤을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 직접 따가야 한다. 국밥 한 그릇 하면서 사장님에게 감귤 체험을 요청하면 음식점 뒤 감귤밭으로 데려가는데 거기서 귤을 따서 가져다 먹어도 되고, 사장님에게 부탁하여 육지로 택배를 보내도 된다. 체험비(귤 값 포함)는 매해, 매달 조금씩 변하니 직접 문의해야 하며, 2016년 11월 현재는 무농약 감귤 20kg 한 상자에 1만5000원에 체험 및 구입이 가능하니 참고하면 된다.

제주시에서 절물휴양림, 한라산, 교래휴양림, 에코랜드, 표선해변, 성읍민속마을 등 관광지로 빠져나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번영로 대로변에 위치해 있으니 겨울철 여행을 계획 중인 분들이라면, 특히 자녀와 함께 감귤 체험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곳을 지나면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과 새콤달콤한 무농약 감귤을 꼭 맛보시길 추천한다.
명가국밥에서 운영하는 명가귤농장, 못 생겼지만 맛은 좋은 무농약 감귤 수확이 한창이다. ⓒ 이영섭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금까지 소개한 음식이나 음식점들은 철저히 우리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나 어떠한 객관적 잣대도 없는 우리만의 주관적 견해이므로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모쪼록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하는 즐거운 제주 여행, 제주 한 달 살이가 되시길 바라며.
태그:#제주이주, #제주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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