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민연금공단이 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 찬성' 결정의 문제점에 대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인 홍순탁 회계사의 글 두 편을 이어 싣는다. [편집자말]
[이전 기사: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싶다]

지난 15일 국민연금공단은 해명자료를 통해 지난해 7월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한 것이 원칙과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최순실씨가 국민연금을 통해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한 반박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 해명자료를 보니 의문이 증폭됩니다. 해명에 나온 내용이 전부라면 필수적인 사항을 누락한, '부실 검토'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의 해명자료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합병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았나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가 지난 14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가 지난 14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첫 번째, 국민연금공단은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의 평가금액이 비슷했으며,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주식 가치의 상승 여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라고 해명했습니다.

이러한 설명은 국민연금공단이 1대0.35로 합병하는 방안과 삼성그룹이 더 이상 합병을 추진하지 않는 방안만을 비교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합병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고려하였더라면 저런 해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1대0.35로 합병하든 1대0.5로 합병하든 합병 시너지는 동일하게 발생하며 합병 후 주식 가치의 상승효과도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과정이었습니다. 이재용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과 삼성전자, 삼성SDS 등을 보유하여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구)삼성물산을 합병시킴으로써,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게 됩니다. 삼성의 입장에서는 한번 합병이 부결된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합병비율 수정을 위한 협상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다못해 자본시장법에 의해 가능한 기준시가 할증을 통한 합병비율 조정을 시도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10% 이내에서 기준시가를 할증 또는 할인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협상해 볼 수 있는 카드입니다. 합병비율을 국민연금공단의 입장에서 좀 더 유리하게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졸속 검토였다는 것을 자인하는 해명자료입니다.

유불리 제대로 검토했으면 '찬성' 결론 내리기 힘들어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한 시민이 국민연금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한 시민이 국민연금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두 번째, 자문기관의 권고와 다른 결정을 한 것과 관련하여 자문기관의 의견은 각 사의 주주입장에서만 고려한 결과이므로, 양사의 주식을 모두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은 스스로 유불리를 판단해야 한다고 해명했습니다. 덧붙여 자문기관 중 기업지배구조원은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모두에 반대의견을 권고했으나, ISS는 (구)삼성물산에는 반대, 제일모직에는 찬성을 권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설명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양사의 주식을 모두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의 입장에서 두 회사에서 발생하는 효과를 종합하여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한쪽에서 손실을 보고 한쪽에서 이득을 본다면, 이득과 손실을 면밀하게 비교·검토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이 해명자료에서 밝혔듯이, 1대0.35라는 합병비율은 (구)삼성물산에 불리하고 제일모직에 유리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이 보유한 주식가치로 보면, (구)삼성물산 지분에서 손해가 발생하고 제일모직 지분에서 이득이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발생하는 이득과 손실 비교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지분율이 높은 쪽에서 발생하는 효과가 더 큽니다. 국민연금공단은 (구)삼성물산을 11.2%, 제일모직을 4.8%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일모직에서 발생하는 이득으로 (구)삼성물산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두 회사에서 발생하는 효과를 합산하는 방법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합병 후 회사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A회사와 B회사가 합병하여 A+B회사가 된다면, 그 A+B 회사에 대해 5% 지분을 확보하는 것보다는 6%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언제나 유리합니다.

1대0.35로 합병하게 되면 합병 후 회사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지분율은 6.7% 정도 됩니다. 반면, 국민연금공단이 적정 합병비율이라고 보았던 1대0.46으로 합병하게 되면 합병 후 회사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지분율은 7.1%까지 올라갑니다. 0.4%p 지분율 상승이 발생하게 됩니다. 2015년 9월 15일 재상장 후 시가총액이 30조 원을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0.4%p는 약 1200억 원에 해당하는 가치입니다. 국민연금공단이 제대로 두 회사에서 발생하는 유불리를 검토했다면, 찬성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추가적으로 국민연금공단은 자문기관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대표적으로 SK 합병 건의 경우 자문기관인 기업지배구조원과 ISS는 모두 '찬성'을 권고했으나 이를 따르지 않고 '반대'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는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해명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입장에서 의결권 행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자문기관으로부터 자문의견을 받을 수도 있고,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두 절차는 별개의 절차입니다.

SK 합병 건의 경우 자문기관의 의견은 '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이 안건의 찬성 또는 반대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합니다.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 '반대' 결정을 했고 국민연금공단은 그 결정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SK 합병 건은 자문기관의 자문의견을 따르지 않은 사례가 아니라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결정에 따랐던 사례입니다.

SK 합병 건도 국민연금공단이 합병 당사자인 SK와 SK C&C 양쪽 모두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합병 건이었습니다. 그 합병 건은 자체적으로 찬성 또는 반대를 결정하기 곤란하다고 판단하여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했는데 더 복잡하다고 할 수 있는 삼성물산 합병 건은 자체적으로 결정해 버린 것입니다. SK 합병 건은 국민연금공단이 의결권 행사 절차와 관련하여 비일관된 행태를 보였다는 사례일 뿐입니다.

대충 검토해도 '찬성 과반'이면 끝?

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지난 15일 오전 삼성그룹 계열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서울 강남구 삼성그룹 서초사옥에 내 제일기획 관련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재무자료, 스포츠단 운영 자료 등을 확보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삼성서초사옥.
 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지난 15일 오전 삼성그룹 계열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서울 강남구 삼성그룹 서초사옥에 내 제일기획 관련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재무자료, 스포츠단 운영 자료 등을 확보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삼성서초사옥.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세 번째, 국민연금공단은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건은 과반이 넘는 찬성 표결이 나왔기 때문에 찬성 또는 반대를 결정하기 곤란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여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부의가 필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외부 검토 여부를 그런 방식으로 결정했다면 그 표결에 참가한 사람들이 이러한 결정을 하기에 충분한 전문성이 있는 사람인지, 충분한 사전검토를 하고 참석한 것인지, 검토과정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동산이나 채권 전문가를 앉혀 놓고 찬성표결을 유도한 것은 아닌지, 소수의 사람이 찬성 결론을 유도해 나간 것은 아닌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민연금공단의 내부검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실한 검토였습니다. 부실한 검토자료를 가지고 과반이 찬성하면 끝이라는 방식이 상식의 기준에서 합당한지 의문입니다. 이 합병 건의 의미를 충분히 짚어 보고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검토요청이 필요한지를 별도로 따져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절차였을 것입니다. 

합병의 최대수혜자를 만난 것이 문제없다?

네 번째, 삼성물산 합병 전에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것은 경영진과 면담한 것이며, 합병 등 결정 전에 기업의 주요 경영진을 면담하는 것은 일반적인 검토과정의 일환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이재용은 (구)삼성물산의 경영진도 제일모직의 경영진도 아니었습니다. 제일모직의 최대주주로 그 합병비율에 따라 최대의 이익을 받게 되는 당사자였을 뿐입니다. 극단적으로 (구)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로 인해 최대이익을 받는 수혜자를 만난 것이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는 국민연금공단의 용기가 놀라울 뿐입니다.

삼성물산 합병 건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찬성 표결은 상식적이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결정의 결과도 그러하지만 절차에서도 상식의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외압이나 부적절한 커넥션이 없었는지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번 국민연금공단의 해명으로 의혹이 더 커졌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표결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홍순탁 기자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정책위원으로 활동중입니다.



태그:#삼성물산, #국민연금, #제일모직, #이재용, #최순실
댓글2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조세재정팀장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는 회계사입니다 '숫자는 힘이 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힘 쎈 숫자를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포장하여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을 시민의 편에 서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