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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드라마틱한 삶이 있을까? 욤비 토나. 콩고민주공화국 도시 반두두 주 키토나 왕자로 태어나 대한민국 난민이 된 사람. "우리나라에 난민이 있다구요?"라고 물을 정도로 난민에 대한 이해가 척박한 땅에서 그가 전하려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후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책을 읽다가 알게 된 <내 이름은 욤비-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는 읽는 내내 주인공에 매료돼 단숨에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욤비 토나의 자서전이다. 인종차별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대한민국의 맨얼굴을 가감없이 보여준 책이기도 하다.

<내 이름은 욤비> 겉표지
 <내 이름은 욤비> 겉표지
ⓒ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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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비 토나는 배고플 때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외로울 땐 동물들 뒤를 쫓으며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교육열이 높았던 아버지 덕에 대학을 가는 게 특권인 나라에서 킨샤사 국립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뒤에는 콩고비밀정보국(ANR)에서 일했다. 특권계층으로 부를 누렸던 그가 하루아침에 모국을 떠나 제3국으로 몸을 피신해야 할 정도 삶이 위협받게 된 데는 민주주주의가 작동되지 않는 콩가민주공화국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면 된다.

그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캐는 일. 2002년 정보국 작전을 수행하다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조셉카빌라 정권의 비리를 알게 됐다. 그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이 사실을 최대 야당인 '민주사회진보연합'에 전달해 바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발각돼 체포됐다. 그 뒤로 그의 인생은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다. 국가 기밀 유출죄로 비밀감옥에 수감돼 온갖 고초를 당했다. 그러나 뇌물을 주면 안 되는 일이 없는 콩가민주공화국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한국에 들어왔다.

난민협약국인 한국이 당연히 자신을 난민으로 받아줄 것이라 기대했으나 거절당했고, 행정소송을 해 6년 만에 겨우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난민 욤비가 본 한국의 민낯은 얼굴색에 따라 차별하는 불평등한 나라라는 것. 그는 생계를 위해 5년간 인쇄공장, 직물공장, 사료공장을 전전하며 일했다. 탈장으로 쓰러지고, 팔이 기계에 끼이고 숱하게 월급을 떼였다.

당장 콩가민주공화국 대사관 직원들이 들이닥쳐 자신을 잡아가는 건 아닌지 불안 속에 떨어가며 불평등한 노동까지 감수해야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더구나 밤이면 콩고에 두고 온 아내와 자녀들의 안위가 걱정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세 번째 인터뷰를 했다. 조사관은 매번 인터뷰 때마다 내게 똑같은 것을 묻고 나도 똑같이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다른 부분이 있나 확인하려는 거 같았다. 인터뷰가 끝나면 내용을 확인시켜 주지도 않은 채 한글로 기록된 기록부에 서명을 하라고 했다. 기록된 사실이 모두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한국말로 쓰여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데 서명을 하라는 게 얼토당토않게 느껴졌지만 항의할 처지가 못 됐다.' (P.167)

'이번 인터뷰는 지금까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진행한 여덟 차례 인터뷰의 '종결판' 같은 것이었다. 사법연수원생 김종철을 데리고 인터뷰에 갔다. 조사관을 비롯한 출입국관리사무소 사람들이 훨씬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김종철이 요구하자 통역이 내게 인터뷰 기록을 확인시켜주었다. 나는 전과 달리 마음 편안하게 기록지에 서명을 했다. 아니, 이런 과정을 왜 전에는 한 번도 거치지 않았단 말인가? 전에는 통역이 잘 되었는지, 기록된 내용에 오류는 없는지 확인시켜 주지도 않고 서명을 하게 했는데... 씁쓸했다. '(P.226∼229)

한국인과 자신을 다르게 대우하는 현실 앞에 눈물이 나지만, 안전이 위협받기에 돌아갈 수 있는 고국조차 없는 욤비. 한국에 머물기 위해 거짓말 하는 '검둥이'라며 그의 진심을 의심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 공무원은 그에게 삼중고 사중고의 아픔을 주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한국을 향해 과녁을 겨누지 않았다.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임병해, 이호택, 김종철, 김성인 등 고마운 사람이 있는 나라라고 받아들였다. 민중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룬 나라, 그 저력을 배워 콩고민주공화국에 돌아가 나라 발전에 힘을 보태고 싶어했다.

현재 그는 국내난민지원단체 '피난터'에서 활동가로 일한 경험을 살려 한국 사회에 국제 난민 문제와 콩고 문제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지 달려간다고. 웃음과 울음이 함께 있기에 사람들은 그의 강의를 좋아한다.

그는 말한다. 난민은 불쌍한 사람도 죄를 저지른 사람도 아니라고. 난민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전 세계 난민현황 등 난민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풍부하게 담은 점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 난민이 있냐"며 반신반의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내 이름은 욤비-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오늘 하루 당신의 귓가를 맴도는 욤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기를. 공장노동자에서 시민단체 연구원으로, 대학원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한국 사회 여러 층위를 경험한 욤비씨가 말하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보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난민을 그저 불쌍한 사람으로만 여기던 우리의 편협한 시각을 깨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난민은 우리보다 더 용기있고 진취적인 사람들이다."(P.11)

덧붙이는 글 | <내이름은 욤비-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욤비토나·박진숙 지음/ 이후/ 값 16500원



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욤비 토나.박진숙 지음, 이후(2013)


태그:#난민, #난민신청, #한국에서난민으로살기, #욤비토나, #이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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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밥 대표이자 구술생애사 작가.호주아이오와콜롬바대학 겸임교수, (사)대전여민회 전 이사 전 여성부 위민넷 웹피디. 전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전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 여성권익상담센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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