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남녀> 속 박하나(박하선 분)는 매사 밝고 긍정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녀가 울 수밖에 없는 일을 계속 만들어 줬다. 사랑도, 일도, 반지하 자취방 배수관마저도, 어느 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박하나.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들이키는 그녀의 맥주 한 캔은, 그래서 더 달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3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배우 박하선(29)를 만났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투윅스> <쓰리 데이즈> 등 여러 작품에서 만난 그녀지만, 어쩐지 실제 성격은 <동이>에서 연기한 인현왕후와 닮지 않았을까 싶었다. 가냘픈 몸매와 청순한 외모는 영락없는 인현왕후였지만, 대화를 나눈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느껴졌다. 유쾌함과 짠내를 오가던 박하나가 곧 박하선이라는 걸.

 tvN월화드라마 <혼술남녀>에서 박하나 역의 배우 박하선이 3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하선과 대화를 나눈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느껴졌다. 유쾌함과 짠내를 오가던 <혼술남녀> 속 박하나는 곧 박하선이라는 걸. ⓒ 이정민


박하선=박하나

박하나는 노량진 학원가에 갓 입성한 국어 강사다. 노량진은 학원가의 메이저리그나 마찬가지. 변두리 입시학원 출신인 박하나에게 노량진은 기회의 땅이자, 반드시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여야만 하는 전쟁터였다. 박하선에게 <혼술남녀>도 다르지 않았다. 2년 공백기 만에 얻은 기회. 그 간절함과 진지함은 박하나 못잖았다. 오죽했으면 작품 시작 전 감독과 작가에게 "살려 달라"고 했다고.

"2년 동안 일이 없었어요. 죄지은 것도 없이 나는 왜 이렇게 쉬고 있나, 슬럼프에 빠져있었죠. 그 시간 동안 제 무엇이 잘못됐는지 계속 생각했어요. 뭘 더 열심히 해야 했을까. 현장에 돌아가면 뭘 더 잘해야 쉬지 않을 수 있을까. 온갖 걸 다 반성했던 것 같아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덕에 자신이 "가장 재미있는 일, 앞으로 가야 할 길도 결국 연기"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새삼 연기에 재미를 느낀 그녀는 "잠을 못 자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전에는 졸려서 연기에 집중하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이번엔 졸리지도 않았어요. 어느 아이돌이 '하루 두 시간 자면 행복하고, 세 시간 자면 힘이 난다'고 말한 인터뷰를 보고 정말 크게 깨달았어요. (졸려서 제대로 못 했다는 건) 다 핑계더라고요."

박하선, 술이 모자라! tvN월화드라마 <혼술남녀>에서 박하나 역의 배우 박하선이 3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하선은 2년 공백기 동안 "죄지은 것도 없이 나는 왜 이렇게 쉬고 있나, 슬럼프에 빠져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공백기 동안 자신의 무엇이 잘못됐는지 계속 생각했다고. ⓒ 이정민


2년 공백... 남다르게 느껴진 대사 '내 까짓 게'

<혼술남녀>를 시작하며 박하선이 바란 것은 그저 "욕만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진정석(하석진 분)-진공명(공명 분)과의 삼각관계나, 노량진에 막 입성한 새내기 강사의 고군분투는 박하나를 얼마든지 '민폐 캐릭터'로 전락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간절하지만 소박했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욕은커녕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자극했고, 박하선의 연기에도 호평이 쏟아졌다.

"원래 우는 연기를 두려워했어요. 잘 못 울었거든요. 진정석에게 차인 하나가 목 늘어난 티 입고 울면서 '내가 뭐라고', '내 까짓 게 어딜' 하면서 자책하고 자괴감 느끼는 장면, 진정석과 진공명이 형제라는 걸 알고 어이없어서 우는 장면 연기할 때는 감정도 잘 잡히더라고요.

2년 동안 힘들었던 시간, 이별하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보잘것없이 느껴졌던 경험... 서러웠던 기억을 다 끌어다 연기했는데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시원했어요. 신 자체는 너무 슬펐지만, 이 연기를 하려고 내가 그만큼 아팠고, 고생했고, 힘들었구나 설움을 쏟아냈죠. '나 같은 게', '내 까짓 게'라는 대사를 할 때는 정말 가슴으로 울었던 것 같아요."

 tvN월화드라마 <혼술남녀>에서 박하나 역의 배우 박하선이 3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하선은 "'나 같은 게', '내 까짓 게'라는 대사를 할 때는 정말 가슴으로 울었던 것 같다"면서 "신 자체는 너무 슬펐지만, 이 연기를 하려고 내가 그만큼 아팠고, 고생했고, 힘들었구나" 싶어 희열이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 이정민


노량진의 청춘들에게

노량진은 <혼술남녀>의 배경이자 촬영지였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스트레스도 많을 공시생들에게, 드라마 촬영한답시고 여기저기 번잡스럽게 구는 <혼술남녀> 팀이 달가웠을 리 없다.

"처음에는 저희를 몰라보시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셨어요. 아무래도 촬영팀이 있으면 이리저리 길도 막히고, 괴롭잖아요. 방송이 시작되고 나니 반응이 달라지더라고요. 본인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셨나 봐요. 협조도 잘 해주시고 좋아해 주시고, 사진 같이 찍자는 요청도 많았죠. 뭉클했어요. (공시생 생활이) 힘드시겠지만, (그분들이) 불쌍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머지않은 미래에 멋진 사람이 되실 분들이잖아요. 진심으로, 모두 잘되셨으면 좋겠어요."

박하선은 강사로서 성장하는 박하나의 모습을 위해, 이선재 강사의 국어 강의를 견학하기도 했단다. 이선재 강사는 <혼술남녀> 1회와 16회에 깜짝 등장했던 실제 노량진 1타 강사(1등 스타강사)다. 극 중 진정석의 강의 모습처럼, 수천 명의 학생이 교실 앞부터 계단, 엘리베이터, 학원 밖까지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열정적인 강사들과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강의 준비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혼술남녀>에서는 강사 박하나의 성장기를 볼 수 없었다. 후반부에 박하나의 수강생이 늘었다는 김원해 원장의 칭찬이 있긴 했지만. 박하선은 '강사 박하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데 아쉬움을 표하며 '시즌 2'를 언급하기도 했다.

"16부작은 너무 짧은 것 같아요. 아직 보여드리지 못한 모습이 많아서 아쉬워요. 진정석과의 연애도, 한 주 사귀고, 한 주 헤어지고, 재회를 암시하며 끝난 셈이잖아요. 마음 같아선 <혼술남녀>가 '평생직장'이어도 좋을 것 같아요."

 tvN월화드라마 <혼술남녀>에서 박하나 역의 배우 박하선이 3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하선은 '강사 박하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데 아쉬움을 표하며 '시즌 2'를 언급하기도 했다. ⓒ 이정민


"살려 달라"던 그녀, 이제는...

"의지가 너무 충만한데, 일하다 끊긴 느낌"이라는 박하선은 연말에도 "소처럼 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송을 앞두고 "살려 달라"고 했다던 그녀에게,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묻자 "살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누가 저더러 '흙수저 전문 배우'라더라고요. 얼마 전 <런드리데이> 나갔을 때도 허지웅, 노홍철씨가 '흔녀(흔한 여자)'인 줄 알았다고 하시고...  제가 바라던 배우상이 옆집에 있을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그런 역을 너무 많이 했나 봐요.(웃음)

한동안 쉬었잖아요. 이제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화려하게 꾸민 악녀 역할도 하고 싶고, <동이> 때처럼 사극도 하고 싶어요. 연기가 너무 재미있어요. 어릴 땐 서른 즈음에 은퇴하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했었는데, 말조심 해야 할 것 같아요. 하하하."

박하선은 "과거에 꿈꾸던 미래 모습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더 멋진 여자가 돼 있을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바로 "죽을 때까지 열심히 해야죠 뭐"라고 당차게 말했다. 딜레마도, 슬럼프도, 매너리즘도 이겨낸 그녀다운 멘트였다.

2년의 공백은 그녀에게 있어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더 큰 도약을 위한 '발 구르기'였던 셈. 한 뼘 더 자란 박하선의 다음 발걸음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었다.

 tvN월화드라마 <혼술남녀>에서 박하나 역의 배우 박하선이 31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년의 공백은 박하선에게 있어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더 큰 도약을 위한 '발 구르기'였다. 한 뼘 더 자란 그녀의 다음 발걸음이 기다려진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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