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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현재 벌어지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2016년 10월 말 저녁 풍경

10월 말 어느 날이었다.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다가 결국 난 서로 장난을 치느라 밥숟가락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 아이들에게 한 마디 하고 만다.

"얘들아, 빨리 밥 먹어. 아빠 설거지 끝내고 드라마 봐야 해."
"엥? 아빠가 드라마도 봐? 아빤 뉴스 대장이잖아."
"뉴스야. 그런데 뉴스가 드라마 같아. 막장 드라마. 그러니까 빨리 먹어."

영문을 모르겠다며 눈을 굴리는 둘째와 셋째와 달리 첫째 까꿍이가 밥을 다 먹고 일어서면서 한마디 한다.

"난 다 알아. 아빠, 오늘도 최순실 보려고 그러지?"
"응? 너 최순실 알아?"
"알지. TV에서 봤는걸. 그 뚱뚱한 아줌마."

8살도 알고 있는 최순실
▲ "최순실 때문이지?" 8살도 알고 있는 최순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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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다. 이젠 8살짜리 꼬마도 최순실을 알다니. 어느 사람을 두고 '뚱뚱한'이라는 표현을 쓰면 좋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만다. 최순실을 언급한 뒤 의기양양한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할 말을 잃은 탓이다.

드디어 저녁 7시 55분. JTBC 손석희 앵커가 나와 최순실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아이들은 떠들다가 엄마 아빠 눈치를 본다. 부모가 전날과 마찬가지로 TV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아이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조용히 하라고 핀잔을 주기 때문이다. 아빠야 뉴스대장이라고 하지만, 평소에는 뉴스를 챙겨보지 않는 엄마도 TV 앞에 붙어있는 낯선 풍경. 둘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엄마, 아빠는 왜 뉴스 재방송을 봐?"
"응? 재방송?"
"응. 또 저 아줌마 나오잖아. 어제랑 똑같은데?"
"아냐. 사람은 똑같은데 내용은 달라. 조금 더 심각한 내용이야."

둘째는 무언가를 더 물어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보도에 집중해야만 했다. 뉴스 끝나고 질문하라고 하니 혼잣말로 그럼 잘 시간이라며 툴툴대는 둘째.

27일자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 화면.
 27일자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 화면.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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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JTBC 뉴스룸은 1부에서 2부 앵커 브리핑으로 넘어가는 사이, 최순실 게이트가 아닌 다른 뉴스도 보도하는 짬을 내줬다. 그제야 나는 아이들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빨리 물어보고 자라며 이야기했다.   

"근데, 아까 그 아줌마 누구야? 대통령이야?"
"아냐. 대통령 친구야."
"근데, 그 아줌마가 무슨 잘못을 했어?"
"응. 대통령이 봐야하는 문서를 저 아줌마가 봤대."

"그 아줌마가 대통령 친구라면, 보면 안 되는 거야?"
"안 되지. 대통령은 국가의 매우 중대한 결정을 하는 자리거든. 만약 아빠가 우리 가족의 중요한 일을 우리가 결정하기 전에 막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면 되겠어? 그런데 저 아줌마가 대통령만 봐야 하는 문서를 먼저 본 거야."

쓴웃음부터 나왔다. 자신도 연설문을 쓸 때는 친구에게 묻는다는 이 나라의 여당 대표의 수준이 6살 꼬마와 비슷할 줄이야.

그러나 이내 꺼림칙해졌다. 아이들의 질문에 내가 제대로 대답한 건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역시 미덥지 못했다. 그냥 아빠가 그렇다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듯 보였다. 도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별 수 없었다. 이제 늦었으니까 들어가서 자라고 질문을 회피하는 수밖에.

이해불가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박근혜 "최순실 도움 받았다" 시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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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이들이 들여보낸 뒤 곰곰이 생각해본다. 대통령이 진짜 대통령인지 의심되고, 정작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현실성이 떨어지는 작금의 세태 속에서, 날이 갈수록 질문이 날카로워지는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이해시키기 가장 어려운 이유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가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이들에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넘버원(No.1)인데,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낱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의 꼭두각시라는 것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들에게는 이해불가일 수밖에.

도대체 왜 대통령은 최순실에게 국가기밀문서까지 넘겨가며 자문을 받았어야 했을까? 어쨌든 주위에는 배울 만큼 배운 온갖 똑똑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최순실의 조언을 필요로 했던 것일까? 단지 40년 지기 친구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님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최태민 목사로부터 시작해 최순실까지 이어져온 사교의 영향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하건데 그것은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이 젊었을 때부터 가졌던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그의 아버지는 가장 믿었던 부하의 배신으로 인해 죽었던 바, 그녀는 그때부터 자신이 믿는 극소수의 사람들과만 의사소통을 해왔을 것이며 이는 정치계에 입문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박근혜 대통령을 이용했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은 그런 박근혜 대통령의 의사소통 방식을 신비주의로 치장해 무언가 그 뒤에 그럴듯한 철학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국민들을 현혹했다. 그 사이 최태민 목사 일가는 박 대통령의 무한 신뢰와 왜곡된 소통방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나갔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도 이와 같은 상황을 결코 거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행적을 봤을 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신화의 완성인데,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모든 걸 감수했다. 국정이 엉망이 되고, 서민의 삶이 피폐해지고, 남북관계가 파탄 나고, 주위 세력이 사익을 추구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오로지 아버지 명예만 생각했다.

따라서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피해자가 될 수 없다. 혹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최씨 일가에 속아 넘어갔다며 불쌍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핑계일 뿐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생계를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로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면, 그리고 능력이 없다면 애초부터 넘보지 말아야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기껏 아버지에 대한 제사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를 망국의 길로 인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박근혜 대통령은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 박근혜를 만든 책임

미르·K스포츠 재단의 강제 모금과 청와대 문건 유출 등 국정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소환조사에 앞서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최순실, 얼굴 가린 채 검찰 출석 미르·K스포츠 재단의 강제 모금과 청와대 문건 유출 등 국정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지난 10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소환조사에 앞서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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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최순실 게이트'를 설명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그런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연 현재 대한민국의 유권자 중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있어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박근혜 후보를 찍지 않았으니 책임이 없다?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일정부분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안일했으며, 또한 쉽게 포기했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의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부터 상식 이하의 말을 해왔고, 유아적인 행태를 선보였으며, 시대를 거슬러 1970년대 사고방식을 고수해 왔다. 지난 대선 당시 TV토론을 떠올려보자. '그래서 대통령을 하겠다'던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됐다. 우리 부모 세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결코 그의 선전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부모들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며, 박근혜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권력을 향유하고자 했던 세력들을 결국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자. 지지율이 몇 달 전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수치에서 허덕거리고 있다. 언론들은 '콘크리트 지지'라고 표현했지만, 그 역시 허상일 뿐이었다. 제대로 된 정보만 전해지면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또한 최근 <조선일보>의 움직임을 보자. 한 마디로 가관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그들이 언제부터인가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거품을 물며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대선 그런 <조선일보>의 농간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박근혜 후보가 당선했고 <조선일보>는 밤의 대통령으로 권력을 향유해왔다.

요컨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어렵사리 쟁취해 낸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한 채,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 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며 부르짖고, 패배의식에 젖어 쉽게 절망한 우리가 만들어낸 헬조선의 실체가 현재 민낯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우리의 수준이다.

다시금 고민한다.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이 사태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후대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태그:#최순실, #박근혜, #비선실세, #국정농단,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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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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