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번째 스물> 포스터

영화 <두번째 스물> 포스터 ⓒ (주)리틀빅픽쳐스


학회 참석 차 이탈리아를 방문한 안과 의사 민하(이태란 분). 그는 토리노에서 우연찮게 과거 연인이었던 영화감독 민구(김승우 분)와 13년 만에 재회한다. 각각 한국에 가정을 둔 이들은 단둘이 곳곳을 여행하며 추억을 더듬고, 서로를 탐닉하며 일주일 간 일탈적인 로맨스를 이어간다.

영화 <두 번째 스물>은 '19금'이지만 '29금'같은 작품이다. 40대의 로맨스, 그것도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일탈로서의 로맨스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 불타올랐던 두 사람이 당시 자신들의 감정을 복기하는 과정이 영화의 큰 줄기고, 그러다 보니 최소한 '십 수년 전 연인과의 외도'가 가능한 기혼 관객만이 이 작품의 감정선을 오롯이 따라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극중 민하와 민구의 애정 신들은 꽤나 농밀하고, 또한 쿨하다. 둘은 재회한 첫날 한 호텔방에서 와인을 마시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섹스를 한다. "연인 관계의 스킨십에는 하방경직성이 있다"는 민하의 대사처럼, 13년 전까지 나간 진도가 리셋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을 함께 맞는 두 사람은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바깥 나들이를 한다. 유적지와 미술관을 찾고 거리를 함께 거니는데, 그 와중에도 섹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밤새 섹스를 하다가 콘돔이 찢어지고 나서야 그만둔 기억을 떠올리고 서로 네 탓이었네 내 탓이었네 하며 티격태격한다.

 영화 <두번째 스물> 스틸컷

영화 <두번째 스물> 스틸컷 ⓒ (주)리틀빅픽쳐스


대부분의 러닝타임 동안 지극히 차분한 두 사람의 태도는 <두 번째 스물>이 가진 개성이지만, 이는 동시에 영화의 심각한 패착이기도 하다.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 하나 없이 단지 민하와 민구의 대사로만 유추되는 그들의 과거는 딱히 드라마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환경적 요인과 자격지심, 오해가 얼키고설켜 이별에 다다랐던 기억은 마치 암기한 것을 내뱉듯 속사포처럼 들려져 정보로만 남는다. 달리 특별할 것 없는 과거는 영 매력적이지 않고, 현재의 두 사람이 담긴 투 숏이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이들의 교감은 별로 귀엽지도, 로맨틱하지도, 심지어 대단하게 야하지도 않다.

토리노와 제노바, 피렌체, 몬탈치노, 시에나, 만토바까지.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 곳곳을 오가는 로케이션이 그저 배경으로만 소비되는 것 또한 아쉬운 지점이다. 일주일을 함께하는 두 주인공의 여정은 일견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들 사이의 공기는 좀처럼 그들이 선 공간의 분위기와 어우러지지 못한다. 영화가 전적으로 두 캐릭터의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이들의 물리적 이동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마치 연극무대 위 배우를 그대로 둔 채 배경 디자인만 바꾸는 것처럼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공간에 익숙해질 여유를 주지 않고 빠른 템포로 로케이션을 오가는 초중반부 전개는 마치 이탈리아 관광 홍보 영상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 (주)리틀빅픽쳐스


ⓒ (주)리틀빅픽쳐스


민하와 민구의 주된 이야깃거리인 미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두 주인공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를 공통 관심사로 둔 채 이탈리아 곳곳의 갤러리를 방문한다. 나름의 생각으로 작품들을 감상하고 평가하고 토론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작품들의 주제에 빗대어 표현하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이는 지점이지만, 미술사 교양 수업을 듣는 듯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이들 장면은 다분히 작위적이고 현학적이어서 영화의 맥을 끊는다.

주어진 자유를 한껏 누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남이 될 수 있으리라는 냉정함.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이제 어디까지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까지. 결국 <두 번째 스물>이 다루는 건 '어른의 사랑'에 대해서다. 스스로의 무책임함을 상대방의 무책임함으로 정당화하는, 둘 중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놀이' 말이다. 결국 '나도 저런 사랑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로맨스 영화라면, <두 번째 스물>의 사랑이 로맨스가 아닌 것 만큼은 분명하다. 오는 11월 3일 개봉.

두번째스물 이태란 김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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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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