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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
 디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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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여신 '디케', 그리스어로 '정의' 또는 '정도'(正道)를 뜻한다. 한 손에는 칼을 또 다른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으며 때로는 천으로 눈을 가린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디케'의 모습에 대한 상징적 해석에서 '저울'은 공정·공평을 상징하며, '칼'은 정의의 엄정한 집행 또는 권위를 의미한다. 그럼 '눈가리개'는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외부의 영향과 편견을 가린 공평함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그 해석에 반전이 있었다.

2016년 5월 19일 서울 중심가에 있는 한 피자 프랜차이즈 본사 앞에서 40, 50대 중년의 남성 몇 명이 피켓을 들고 본사의 부당한 행위를 성토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날은 5월 치고는 꽤 더웠고 마침 시위 시간대는 점심시간과 겹쳐 근처 사무실에 근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 중 일부는 프랜차이즈 편의점으로, 그리고 또 일부는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이미 식사와 용무 마친 사람들 손에는 남은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기며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커피와 생과일 쥬스가 들려 있었다. 물론 '프랜차이즈 브랜드'였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낸다"라고 했던가? 봄볕의 열기와 인근 지역의 일상을 깨는 중년 남성의 낯선 외침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호기심 또는 저가 앰프로 증폭된 거친 목소리에 조건반사적인 불편함이 보였다. 그들의 일부는 피켓과 플랜카드에서 약간 정보를 대충 확인하는 듯했고 또 그중 일부는 그 자리에서서 그 중년 남성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과 무관해 보이는 이 소동에 냉소와 그리고 무관심을 흘렸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시위하면 떠오르는 근로자도 아니고 공공의 정의를 위해 싸우는 시민단체도 아닌, 어찌 보면 사익 추구의 첨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영업자들의 시위가 이들의 삶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타인들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3시간 가까이 이어진 간담회... 성토 그리고 호소

2016년 9월 1일 여의도에서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과 몇몇 프랜차이즈 브랜드 가맹점주들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주제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불공정·부당 행위 및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 그리고 문제점 해결방안 모색으로 각 브랜드들의 가맹점주들이 현안을 발표하고 공정위위원장은 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1시간 30분을 예상으로 진행했다. 그러나 브랜드마다 간절한, 때론 격한 호소로 간담회는 3시간 가까이 연장됐다.

40여 년의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역사에서 인테리어 리뉴얼 강제, 영업지역 침해, 과다한 위약금 등 본사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행위에 견디다 못한 가맹점주들의 시위와 심지어 몇몇 점주들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크고 작은 분쟁을 겪었다. 이후 관련법이 제정되고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마지못해 국가의 통제를 따르는 듯했고 이후 여론도 잠잠해 지면서 언듯 프랜차이즈 업계도 많이 정화되고 안정된 듯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 더군다나 아직은 정교함이 떨어지는 허술한 법 규정과 공정위 같은 집행 기관들의 의지 부족으로 느슨한 통제에 있는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그렇게 쉽게 자신들의 이권을 내놓을 리 없다. 

그 반증으로 기본적인 상식을 가지고 사회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계약 약관과 불공정 행위가 2016년 현재, 프랜차이즈 업계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연중무휴, 하루 12시간 근무'가 어느 기업의 근로계약조건이라면 아마 '인권유린'으로 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할만한 불공정 계약 약관이 버젓이 인정·통용되는 것이 바로 프랜차이즈 업계다.

이 비인권적 약관을 시정해달라고 공정위에 요청하자 공정위 담당자는 "그런 약관이 불편하신가요?"라며 그 약관에 의해 인권이 심각한 침해를 당했을 때, 그때 공정위에 신고해달라고 한다. 덧붙여 프랜차이즈 특성이 그러하니 귀하의 프랜차이즈만 고쳐주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저 쓴웃음만 나왔다. 현장과 탁상의 괴리감…, 한숨만 나왔다.

왜 가맹점주의 자율 휴무를 공식적으로 보장하지 않을까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의 자율휴무는 왜 보장되지 않는 걸까.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의 자율휴무는 왜 보장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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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자가 공정위에 제소한 프랜차이즈조차도 현장에서는 일부지만 가맹점의 주일 1회 휴무를 묵인하고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굳이 최소한의 자율 휴무 권리를 계약서 약관으로 공식화 해달라고 왜 주장할까? 그리고 기업은 어차피 묵인하면서 왜 가맹점주의 자율 휴무를 공식적으로 보장하지 않을까?

그것은 이들이 이런 비인권적 약관을 가맹점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서 본사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가맹점들은 시종 일관 이 약관으로 괴롭힘을 당해야 했고, 여름 한철 가족과 3~4일 휴가를 가고 싶어 휴무 신청한 매장들은 엉뚱하게도 전단지 구입실적에 따라 승인 여부가 결정됐다고 한다.

또한 한달에 광고비란 명목으로 가맹점주들에게 징수하는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 돈에 어떠한 통제와 감시장치 없이 오로지 해당 기업의 양심에만 맡겨진 상태에 있다. 이에 그 사용 내역을 검증할수 있도록 자료를 달라 하니 수년간 광고비 지출내역을 단 한 장의 집계표를 보여주고 그 조차 기업 비밀을 운운하며 카피나 사진 촬영 등 외부반출 불가하다며 고압적인 태도로 가맹점주들를 무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를 합당한 행위로 공정위가 인정을 했다는 것이다.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이 고작 몇백 원짜리 과자의 묶음상품이나 알뜰상품으로 개발된 각종 '리필' 제품의 중량을 줄이는 꼼수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건 물론 전쟁이었다면 '학살'로 표현됐을 '가습기살균제 참사'만 보더라도 허술한 통제와 감시 속에서 기업의 부도덕이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는 온몸으로 충분히 겪고 있는 이 나라에서 공정위의 이런 태도는 기업의 양심을 믿고 의심하지 말라는 것인가?

'폭리' 때문에 매장 운영이 너무도 어렵다며 이런 불공정한 거래 행위를 중지시켜 달라하니 '폭리'의 기준이 뭐냐고 되묻는 담당자에게 일개 자영업자인 우리가 해당 업무에 전문가이며 대기업에 버금가는 고급인력인 현 대한민국 공무원에게 자본주의 시장에서 '독점' 폐해는 '구매자가 합리적인 가격보다 더 높은 돈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과 그 손실이 독점 기업에게 모조리 이윤으로 돌아가는 불합리성'에 있음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가?

현재 공정위는 '프랜차이즈는 3000개가 넘는것에 반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8명에 불과하다'면서 지금의 유명무실한 공정위의 역할에 변명과 하소연을 덧붙인다.

어느 영화에 어린 아이들이 포함된 한 가족이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하던 중 벅찬 상황에 남편이 어쩔줄 몰라 하자 아내는 그의 뺨을 때리며 이렇게 말했다 "가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이지 징징거리는 존재가 아니다."

버거킹의 역사, 우리는 왜 이 역사를 배우지 못할까

현대 프랜차이즈 특히 패스트푸트 업종의 프랜차이즈는 미국의 맥도날드사가 최초로 확립한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따라 제품 제조기술, 매장 운영기술 그리고 브랜드 사용권을 일시불 또는 분할 가맹비(로열티)로 지불하고 본사에서 제시하는 표준 재료를 시중에서 구입해서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이때 가맹본부가 '유통물류'를 프랜차이즈 사업과 겸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 재료 확보, 재료 구매 편의, 대량구매에 의한 비용 절감을 가맹점들에게 제공하기 위함임에도 지금은 그 본질이 훼손된 체 본사의 가장 큰 수익 창출원으로 변질되었고 결국 '프랜차이즈 = 유통' 이라는 의미로 고착화된, 본말이 전도된 상태가 된 것이다.

1991년 미국 버거킹은 가맹점주와 본사의 상생 시스템을 도입했다.
 1991년 미국 버거킹은 가맹점주와 본사의 상생 시스템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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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사업의 원조이며 이제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진 미국은 이미 이런 성장 통을 당연히 겪었다. 1980년부터 '버거킹' 가맹점주들은 본사의 유통 독점과 그로 인한 폭리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다. 그 결과 1991년 결국 버거킹 본사는 점주들의 의견을 전격 수용하고 '구매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모든 재료와 인테리어 업체 선정시 본사는 물론 모든 점주가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관련 비용을 절감했다.

그로 인해 가맹점의 수익 증대는 물론 가맹점 개설 증가로 본사의 로열티 수입 증가로까지 이어지는 놀라운 효과를 경험했다. 이제는 경쟁사인 맥도날드는 물론 던킨 도너츠, KFC 등 대부분의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이런 상생시스템을 도입했다.

사람들이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역사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지난 역사속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고 역사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지금 이 시대의 지혜를 더하여 더욱 발전된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미 누군가 앞서 만들어 놓은 역사 속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그 시행착오를 다시 반복한다면 이보다 우매할 수 있을까?

현재 이런 분쟁 속에서 더 슬픈 것은 그나마 본사에 저항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은 사실 대부분 대중들에게 인지도 높은 유명 브랜드라는 것이다. 브랜드 인지도와 가맹점들의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차상위 이하 브랜드들은 아예 본사에 대한 저항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그런 소규모 가맹점들의 대부분은 가족들과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해야 삶을 유지할 수 있고 본사가 헛기침만 해도 화들짝 놀라는 '생계형'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일대의 공기를 흔드는 한 프랜차이즈 자영업자의 외침을 한손에 '프랜차이즈 커피'를 손에 들고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치는 저 많은 직장인들은 이 순간 저들이 외침이 나의 삶과는 무관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백세 시대에 60세가 넘으면 정년퇴직을 그리고 상당수는 그전에 명예퇴직을 해야 할 확정된 미래에 저들은 지금 본 이 순간이 자신들의 삶과는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그리고 오늘도 행복하지 못한 점주들이 만든 제화와 용역을 자신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용하고 있음을 또한 가장 중요한 이 사회에 공정이 확보되지 못한 정의는 있을 수 없다. 지금 이들의 불공정은 사회에 만연한 다수의 불공정의 한단면임을 깨달았으면 한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간담회 말미 작년에도 이렇게 가맹점주들과 간담회를 진행했지만, 그 당시 참석한 점주들은 별문제 없다고 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사태가 심각해진 것 같다고 했다. 필자는 이와 관련해서 작년에 참석한 가맹점주들은 누구였는지 알아보니 대부분 본사에서 추천한 가맹점주들이 참석했다고 했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여신의 눈을 가린 광대... 한국의 모습일지도

어느 순간 등장한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의 진실은 1494년 알브레히트 뒤러의 '정의의 여신'이라는 목판화에서 유래했다 한다. 그 목판화는 광대가 여신의 눈을 뒤에서 천으로 가리는 모습을 묘사한 했고 그것은 당시 사법기관을 어지럽힌 브로커를 풍자한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정위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프랜차이즈 기업들에 의해 눈이 가려져 저울이 한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졌음에도 그것을 볼 수가 없다.

공정위는 거래상대방들을 저울에 올려 균형을 맞추는 역할이 그들의 본질일 것이다. 가맹점주 단체에 구체적인 협상력을 부여하여 힘의 균형을 맞추면 지금 프랜차이즈 업계에 만연한 불공정·부당 거래는 대부분은 현장에서 저절로 해소된다. 그것이 바로 지금 미국의 프랜차이즈다.

이제 공정위는 그 눈가리개를 벗어던지고 저울이 균형을 이루어 졌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하게 결정된 정책이 바로 사회 정의에 가장 가깝다."- 존 롤스 <정의론-공정으로서의 정의>


태그:#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 #프랜차이즈, #디케, #정의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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