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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주간 경주 지진으로 온 나라가 들썩입니다. 이웃나라 일인 것만 같더니 이제 남의일 같지 않게 됐습니다. 지축이 흔들리면서 건물이 주저앉는 공포는 정말 당해보지 않고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지진으로 시커먼 바닷물이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는 영상은 아직도 생생한게 공포 그 자체입니다. 경주는 지금도 이어지는 여진이 주민들의 불안을 배가시킵니다. 각종 매체가 앞다투어 소식을 전하면서 의도한 바 아니겠으나 지진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킵니다. 공포는 순식간에 전염이 되지요.

이런 경우 참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정신 바짝 차리고 잊지말아야 할 것은, 지금 지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공포감이 지나가고 있는 중입니다.(살며 사랑하며 두번째, '무엇이 지나가는가' 참조). 그러나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로도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 집이 흔들려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그렇겠지요. 막상 상황이 닥치면 순간 잊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의식하고 있어도 당혹스러우니까요. 그러나 건물이 흔들리는 것보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분명히 공포라는 우리의 감정입니다. 두려움이지요.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자지러지게 울어대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진을 빈번히 경험한 일본인이 그 당시 관광차 경주에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랬다면 그 일본인은 경주시민들의 양상과 달랐을 것입니다. 감정의 진폭이 작았을테니까요.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 시민들이 차분히 대피하는 장면이 여러차례 보도됐지요. 일본에서의 규모 5.8과 한국에서의 5.8이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생소한 경험에서 오는 감정의 요동침이지요.

무슨 소리야.  원전이 지금 가동 중단됐고 만일에 더 큰 지진 와봐. 끔찍해.

가능성이란 언제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고 더 빨리 엄습합니다. 그날 경주에 살면서 지진으로 놀란 분들보다 서울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를 수술해야 하는 사람은 훨씬 더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그런데 수능이 코앞인 저희집 큰녀석은 지진이고 교통사고고 안중에 없습니다.
"진아,  지진났데. 너도 느꼈니?"
"아,  몰라~ 아빠,  나 피곤해."
고3은 지진도 피해가는지 녀석은 고3 그 자체로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중압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여러번 되풀이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일 일상에서 시시각각 평생 부딪치는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그 문제는 이미 풀려있습니다. 인식을 못할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으니까요. 그 시간이 지날 동안 우리 속은 까맣게 타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이미 풀려있다고 생각하면 해답이 형태로 드러날 때까지 걱정과 두려움이 상당히 줄어듭니다. 사실 우리는 그것을 수십년동안 실생활에서 경험해왔는데 모르고 지나쳤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문제를 다음과 같이 겪어왔습니다.

(A)

1. 문제발생 → 2. 문제인식 → 3. 속 뒤집어짐 → 4. 일주일 지나 해결됨 → 5. 휴, 다행이다 안도함 → 6. 또다른 문제발생 → 7. 다시 2~5 과정 반복(평생동안 반복  ㅜㅜㅜ)

그러나 사실은 이런 과정이었어야 합니다.

(B)

1. 문제발생 →  2. 문제인식 동시에 이 문제는 이미 풀려있네라는 진실을 알고 믿음
→ 3. 별 문제로 안 받아들이기에 스트레스 덜 받고 걱정 덜함. → 4. 일주일 지나 정리됨. → 5.  또다른 문제발생 → 6. 다시 2~4까지 반복(평생동안 반복)

A와 B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3번, 속 뒤집어지느냐 아니냐의 차이지요. 매사가 감정이 일으키는 파괴적인 에너지 때문입니다.

실제로 수십년 동안 우리에게 부딪힌 문제들이 하나라도 안 풀렸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 글을 보고 있을 수가 없지요. 천년고도 경주에서 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수천만 명이 살아왔고 거기서 일어난 각자의 모든 문제는 다 풀려왔지요. 그것이 제각각 풀리는 동안 마음의 고통이 몸을 병들게 합니다.

항상 나를 걱정시키는 것이, 저 문제가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풀리지 않는 것에 대한 염려지요. 일단 이 부분을 해결해야 합니다. 세상이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자극하지요. 그러나 두려운 감정을 경험적으로 벗어나보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번 지진처럼 반복적이고 해결책이 안 보이면서 오래가는 일에 이 감정을 경험해 보면 특효약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저것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손 놓고 있으라는 얘기가 아니겠지요. 눈 앞에 닥친 상황에 정상적으로 반응해야 하지요. 신속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정밀 진단을 하고, 내진설계로 안전성을 늘려가고, 만일의 사태에 최선의 대비를 해야지요. 그러나 이미 풀려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그 노력을 기울여도 힘든 느낌이 꽤 줄어듭니다. 우리가 '정말 힘드네'라고 느끼는 건 주로 감정이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진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파도는 저 혼자 밀려오고 저 혼자 물러가지요. 그 파도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파도를 거스르면서 계속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파도 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문제를 인식한 순간 그 문제는 이미 풀려있다'는 '진실'을 의식하고 경험해보는 것입니다.

파도는 지금도 끝없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인접한 지역에서는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불안하겠지요. 더 큰 지진이 일어나 우리나라 원전에 문제가 생겨도 얼마 후면 여전히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것입니다. 역시 걱정스럽겠지요. 그 걱정과 불안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요. 그런데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면서 우리를 위협하는 저 북쪽을 향해 워싱턴에서 큰 우려를 나타내는데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는 서울은 고요합니다. 사진은 경주 지진 여파로 한 대학교 운동장에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여있는 장면.
 후쿠시마 인접한 지역에서는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불안하겠지요. 더 큰 지진이 일어나 우리나라 원전에 문제가 생겨도 얼마 후면 여전히 그 주변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것입니다. 역시 걱정스럽겠지요. 그 걱정과 불안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요. 그런데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면서 우리를 위협하는 저 북쪽을 향해 워싱턴에서 큰 우려를 나타내는데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는 서울은 고요합니다. 사진은 경주 지진 여파로 한 대학교 운동장에 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여있는 장면.
ⓒ 이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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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지진, #감정,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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