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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들어가기 앞서 저는 중국에 거주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연휴에도 일한 아내, 혼자서 아이를 3일 동안 봐야 하다니...

"바이어 와서 금, 토, 일 다 나가 봐야 해."

지난주는 많은 분들께 행복한 연휴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평일 중에 금요일 하루밖에 못 쉬었지만 그래도 주말까지 생각하면 그래도 3일 정도는 마음 편하게 집에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람이 외국에서 바이어가 와서 금, 토, 일을 다 나가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석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집사람이 안쓰러웠지만 그것도 잠시, 남의 중병이 자신의 고뿔(감기)만 못하다고 삼 일 동안 혼자서 아들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하루도 아니고 무려 3일을 혼자서 잘 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기였을 때는 울면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해서 빨리 말 좀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말을 알아듣는 나이가 되자 이제는 얌체공처럼 어디로 튈지 몰라 더 불안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집사람이 회사에 나가 있는 동안 아들과 같이 보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무작정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아들과 어딘가를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들과 단 둘이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다 아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집 근처 영화관에서 <아이스 에이지 5>가 3D로 상영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들과 둘이 영화를 보러 가자니 이런 저런 걱정이 몰려 왔습니다. 아들이 영화를 끝까지 잘 볼까? 요새는 궁금한 것이 많아졌는지 엄청나게 말이 많아졌는데 공공장소인 영화관에서도 아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면 어쩌지? 이런 걱정들 말입니다.

그리고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열 두 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 시간대면 아이들 영화니 대부분 아들 또래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이 영화를 보러 올 것이라 예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어린 아이들의 특성상 조용히 영화만을 보지 않고 다소 소란할 것이 분명하니 제 아들이 영화를 보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야기를 걸어도 크게 눈치 보지는 않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 말고도 다른 부모들도 아마 자신의 아이들 신경 쓰느라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드디어 영화관으로 출발!

표를 끊고 나니 자석에 이끌리듯 아들이 팝콘을 파는 곳으로 갑니다.

"아빠한테 팝콘 사 달라고 해서 먹으면서 봐."

아마도 아침에 엄마가 한 이야기가 기억이 난 모양입니다. 아직 아기이지만 그래도 어느덧 저랑 같이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을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과 팝콘을 나누어 먹으며 오붓하게 즐기는 영화관 데이트! 제가 그리는 그림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팝콘보다 팝콘 옆에 투명한 유리에 비치는 감자 맛 과자가 더 먹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팝콘 말고 그것을 먹고 싶다는 얘기에 그 과자를 사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사이즈를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사이즈는 아직은 성인에 비해 주의가 부족한 아이들이 들고 먹으면 아무래도 쉽게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큰 사이즈를 달라고 했습니다.

과자가 들어 있는 큰 통을 받더니 아들은 열심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제 자신도 놀랄 만큼 독한 다이어트를 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항상 덩치가 있었던 제 피를 이어받았는지 5살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먹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제가 잠시 딴 곳을 보고 있는 순간 옆에서 들리는 아들의 목소리.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보아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아들이 몇 개 집어 먹지도 않은 과자 통을 엎어 버린 것입니다. 쏟지 말라고 일부러 작은 사이즈가 아니라 큰 사이즈를 사 주었는데... 역시 중요한 것은 사이즈가 아니라 아빠인 제가 얼마나 유심히 아이를 잘 돌보고 있는지였습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 그냥 둘 수 없어 손으로 과자를 집어 다 치우고 나서 화장실에 손을 닦으러 갔습니다.

평소에 제가 먼저 가면 항상 아들이 바로 제 한쪽 손을 잡고 따라오는데 아들이 바로 손을 안 잡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지 하고 뒤를 돌아보니 아들이 따라오면서 과자 통을 소중히 끌어안고 몇 개 안 남은 과자를 열심히 먹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쏟았기 때문에 차마 다시 사 달라는 말은 못하고 몇 개 안 남은 과자만 아껴서 소중히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져 다시 안 사 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것을 다시 살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큰 통을 가지고 가서 점원에게 작은 통만큼의 양만 부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고맙게도 점원이 혹시 쏟았냐면서 그냥 공짜로 다시 퍼 주는 것이었습니다. 점원의 배려 덕분에 아들과 저는 다시 큰 통의 과자를 들고 영화를 보러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영화 시작, 예상대로 아들이 말을 걸기 시작하다

아들을 데리고 영화관 의자에 앉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별일 아니지만 집사람 없이 저 혼자서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왠지 뿌듯하기도 하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아들이랑 같이 다닐 수 있을까 하는 한참 먼 미래의 이야기까지 생각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영화 시작! 예상대로 영화가 시작하자 아들이 제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아빠도 크게 보여?"

3D 영화를 볼 때 쓰는 안경을 쓰고 보니 영화가 크게 보여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아들에게 그렇다고 작게 대답해주었습니다. 제가 작게 말하면 아들도 작게 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계속해서 질문을 많이 하면 어쩌지 하며 생각하는데 다른 아이들도 신기했던지 여기저기서 엄마, 아빠들한테 말을 걸고 물어보는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제 예상대로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제 아들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질문을 해도 조금은 편하게 대답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처음에 그렇게 물어보고 나서는 아들이 도통 질문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옆에서 계속

"쓰읍..쓰읍.."

이러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살이 된 후로 말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데 왜 말은 안 하고 그럴까 했더니 영화관에 들어오기 전에 사 왔던  과자가 많이 매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매운 것을 먹었을 때 내는 소리를 입 밖으로 뱉으며 먹는데 집중하느라 제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있더니 제게 다시 말을 겁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영화에 대해 무언가 질문하려고 하나 했는데, 이번에는

"아빠 물 좀.."

이러더니 다시 말이 없습니다. 과자를 먹으며 맵다며 '쓰읍쓰읍' 거리다 물을 마시고 과자 먹고 물을 마시고 과자를 먹는 행위를 반복하며 비교적 조용히(?)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그러다 한동안 조용하기에 옆을 보니 3D 안경을 벗고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는 것입니다. 3D 안경을 처음 써 봐서 눈이 아파 그런가 하고 다시 씌워 주려 하자 아들이 급하게 제 손을 막으며

"아빠, 00밥 좀 찾아줘."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영화관에 와서 과자를 사기 전에 마트에서 산 과자를 영화관 과자 통에 섞어 놓았는데 그게 잘 안 찾아졌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3D 안경을 벗고 과자 통에 머리를 박고 찾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제 아들이지만 이쯤 되면 영화를 보러 온 것인지, 먹으러 온 것인지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일단 과자를 찾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무래도 우리말이 아닌 중국어만 들려서 그런지 저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켜지는 불! 환한 불빛에 눈을 뜨니 앞에 앉아 있던 관객이 제 옆을 보며 웃으며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들었네."

옆을 보니 제 아들은 조는 것도 아니고 자세를 잡고 아주 열심히 자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온 몸에 과자를 다 묻힌 채로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과자를 털고 아들을 깨웠습니다. 비록 과자가 묻을 정도로 열심히 먹었지만 그래도 저는 제 아들이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과자만 열심히 먹고 잠만 잤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집사람이 아들에게

"재미있었어?"
"응."

이렇게 묻고 대답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대단히 뿌듯했습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빠와의 어떤 추억을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에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집사람이 아들에게 던진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아들의 답을 듣고 무언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내용이었어?" 
"몰라."

그러니까 아들은 정말로 영화를 본다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동안 무언가 먹는다는 것이 중요했고, 다 먹고 나서는 그냥 잤다는 이야기라고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그건 아들이 마치 오늘의 경험이 아빠와 처음 영화를 본 날이라기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과자를 먹은 날이라 기억할 것 같다는 생각에 과자에게 진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들은 또 다른 내 모습 보여주고 있어

아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먹을 것을 좋아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얼마 전에 아들과 병원 놀이를 하며 있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병원 놀이를 할 때였습니다. 그때 의사 역할을 했던 아들이 제 팔에 온도계를 끼운 후에 다시 빼고 나서 온도를 말해주었습니다.

"88도요."
"88도요?"

아직 100까지도 못 세는 아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높은 숫자를 말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음..살이 많이 쪘어요."

아마 집사람과 몸무게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를 듣고 기억했다가 다시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아마도 아들이 먹을 것을 좋아하는 것은 저를 닮아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들과 놀아주고 영화를 같이 보면서 저는 이 모든 것들이 제가 아들을 위해 열심히 놀아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아들은 또 다른 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제가 고쳐야 할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식탐이 많은 제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었다고 할까요. 아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했던 첫 마디도 결국은 평소 제 모습이 반영된 것이었겠죠?

그 말을 듣고 저는 먼저 제 자신을 돌아보고 변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제가 변해야 아들도 변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제 아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했던 첫 마디는 이랬습니다.

"아빠, 우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요."  


태그:#영화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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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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