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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고백

신이 난 둘째
▲ 계곡에서의 산들이 신이 난 둘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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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이었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녀석과 함께 마을 앞 버스정류장으로 나갔는데, 이제 막 마을버스가 출발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 달라며 뛰는 폼을 잡았지만 버스는 야속하게 떠났고, 둘째와 난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10분을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회사에 가면 늦지나 않을까 조바심 내고 있는 아빠와 다음 버스가 도대체 언제 오냐고 투정부리는 아이. 그때 둘째가 대뜸 다음과 같은 말을 내게 던졌다.

"아빠, 난 운이 존나리 없어."

귀를 의심했다. 운이 존나리 없다고? 존나리? 어디서 이런 말을 배운 거지? 나와 아내는 이런 말을 쓴 적이 없는데? 물론 내가 욕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는 아직 직접 한 기억이 없는데? 둘째에게 다시 물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운이 어떻게 없다고?"
"운이 존나리 없다고."
"존나리? 너, 존나리가 무슨 뜻인지는 아냐?"
"알지. 좋은 날이 없다는데 왜 그 뜻을 몰라."
"아...운이 좋은 날이 없다고?
"응. 난 왜 이렇게 운이 없지?"

아. '존나리'가 아니라 '좋은 날이'라고.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녀석에게 그럴 리 없다고 설명하는 게 우선이었다. 안 그래도 첫째와 셋째 사이에 껴서 뭘 해도 나만 안 된다며 불만투성이인 둘째인데 어찌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사람이 살면서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다고 설명하는 수밖에.

지겨워
▲ 불만투성 산들이 지겨워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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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날이 없어
▲ 나만 맨날 져 운이 좋은 날이 없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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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회사 가는 길, 헛웃음이 터졌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언어생활을 험하게 했으면 '좋은 날이'를 '존나리'로 들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이야 6살 아이가 그 뜻을 몰라서 그냥 넘어가는 거지만 아이가 그 뜻을 알았더라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은근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아이들의 언어습관 형성에 있어서 부모의 영향이 매우 클 텐데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 거지? 아니, 내가 가르친다고 아이의 언어습관이 달라지기는 하는 걸까?

욕은 카타르시스다

사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언어생활에 있어서 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결국 어렸을 때의 경험 때문이었는데, 나는 욕이 거의 없는 가정에서 자란 탓에 욕을 잘 하지 못했고, 그만큼 자라면서 여러모로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물론 부모님이야 자식들 앞에서 욕을 하지 않기 위해 더더욱 조심하셨을 테지만, 내게는 그 배려가 답답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우선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있어서 마음 한 구석 항상 찝찝함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 당시 또래의 말이라곤 절반이 욕이기 마련인데, 어렸을 때부터 욕을 터부시하고 자랐으니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딘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누르고 있는, 바르고 고운 말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가끔 모범생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더더욱 심하게 욕을 해보지만, 그것은 역시 나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 흉내가 왜 그리 어색하고 내 스스로가 바보 같던지.

게다가 남자들끼리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욕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약점이었다.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세인데, 대부분 그 기세는 상대방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걸쭉한 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소위 '싸움은 선빵'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적절한 욕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싸움을 하는데 있어서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욕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X같은 기분을 상대방에게 분명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욕만큼 자신의 불쾌함을 표시하는데 있어서 가장 간결하고 명확한 수단이 또 있을까. 물론 혹자들은 욕을 추임새처럼 쓰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욕은 상대방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가장 큰 효과를 지닌다.

마지막으로 욕에 대한 터부는 스스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었다. 욕은 혹자들에게 자기표현의 가장 강렬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혹자들은 욕을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욕을 통해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욕은 때때로 자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저항의 수단이기도 하며, 실낱같은 희망에 대한 강렬한 믿음이기도 하다.

곤히 잠든 산들이
▲ 둘째는 피곤한다 곤히 잠든 산들이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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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난 대학 진학 이후 일부러 욕을 사용하고자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에 대한 터부를 깨고 싶었다. 그 맥락으로 이전에는 차마 하지 못했던 쌍욕을 부모님 앞에서 뉴스나 신문을 보면서 툭툭 던지기도 했고, 더 이상 바르고 고운 말을 찾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터부는 깨기 쉽지 않았고, 결국 내가 진심을 담아 찰지게 욕을 시작하게 된 건 군대 훈련소에서부터였다.

개인적으로 이런 성장과정을 거치다 보니, 나의 아이가 나처럼 욕에 대한 터부를 지니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대화의 절반이 욕으로 점철되면 그것도 안 되겠지만, 적재적소에 욕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어쨌든 이 시대는 욕 없이 살 수 없는 시대이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 6살 둘째의 '존나리'에 내가 그만 놀라고 만 것이다. 별 것도 아닌 '존나리'에.

다시 아이의 언어습관을 고민하다

그래도 네가 항상 웃길 바라며
▲ 산들이의 웃음 그래도 네가 항상 웃길 바라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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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가끔 아내와 다퉜던 주제 중 하나는 아이의 언어습관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욕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는데, 아내는 아이가 절대로 욕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였다.

아내가 내게 들려주었던 실화는 다음과 같았다. 말을 전혀 하지 못하던 아이가 어느 날 엄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말문이 터졌는데, 그 첫마디가 '씨발'이라는 것이었다. 항상 엄마가 운전을 하면서 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하필 그것이 아이의 입에서 곧바로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 엄마는 엄청나게 후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나.

아내가 6~7년 전 그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나는 시큰둥했다. 내가 그리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도 아니겠거니와, 아이가 그런 첫 단어를 내뱉는다 하더라도 그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나의 아이 입에서 '존나리'가 나오자 심산이 복잡해졌다. 요즘 유행어라며 아이들이 '헐'을 입에 붙이고 살 때도 내가 어렸을 때 그리 외치고 다녔던 '따봉'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별 제재를 가하지 않았지만, '존나리'라는 단어가 나오자 다시금 아이의 언어습관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욕은 하지 말라고 해야 할까? 어느 정도의 욕은 그냥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제재의 선은 어디까지여야 할까? 아니, 부모가 제어할 수나 있을까? 이미 내가 아이의 언어를 제어하려는 순간부터 스스로 '꼰대'가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으나 뚜렷한 답은 없었다. 단지 아이의 '존나리'가 '좋은 날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 여중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왁자지껄임이 유독 크게 들린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을 텐데, 오늘은 녀석들의 추임새처럼 붙는 욕지거리가 왠지 신경 쓰인다. 우리 까꿍이도 곧 저렇게 되겠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의 고민은 다시 시작된다.

싱긋 웃는 둘째
▲ 산들이의 웃음 싱긋 웃는 둘째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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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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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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